춥다

wndrl 2 49

날씨 춥네요 군생활때 힘들었던 혹한기 훈련이 생각납니다!~

나갔다 들어올 때 택시를 잡으면 거절하기 일쑤였다. 웃돈을 얹어 주어도 빈 차로 나온다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버스도 하루에 몇 차례만 드나들었다. 논을 메워 세운 도시라 비가 오면 아스팔트가 깔린 큰길가를 제외하고는 발이 푹푹 빠졌다.
오죽했으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살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마는 불편함은 동적일 때뿐이고 자연 속에서 사는 정신적 풍요가 삶의 생기를 더했다.
새집으로 이사 오고 몇 달 후, 첫아이의 생일이 되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텅 빈 마당이라 첫 돌 기념으로 나무를 심었다.
가장 종류가 많고 품질이 우수하다는 수유리 장미원에서 흑장미 묘목을 사 왔다.첫돌 기념식수 '장미 1호'가 탄생하였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입학이나 가족의 생일, 집안의 경사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를 심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원의
나무는 무성했고 예쁜 꽃들로 무지갯빛을 더했다. 대문에 아치를 이루고 기어오르는 노란 줄 장미가 탐스럽고 그 아래
사열하듯 줄지어 선 빨간 미니장미가 앙증스럽다. 채송화로 울타리 친 꽃밭에 활년, 봉숭아, 분꽃, 베고니아가 곱고 목련,
라일락, 흰 철쭉, 향나무, 진달래가 있어 우리 집 정원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첫번 피는 장미는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하다. 꽃대를 쭉 올리며 겹겹이 포개진 꽃잎을 조금씩 열어 보일 때 그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은은히 스치는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나 꽃 중의 여왕격인 장미라도
비를 만나면 맥을 못 춘다. 커다란 꽃잎 사이사이로 스며든 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고개를 떨군다.
처음 몇 해는 비를 맞아 축 늘어져 있는 꽃을 보면서 속수무책으로 안타깝기만 했다. 피자마자 비가 온다든지 날씨가 조금만
꾸물거려도 걱정되었다. 고심 끝에 묘안이 떠올랐다. 비가 밤중이나 갑작스럽게 내릴 때는 어쩔 수 없으나 예보가 있을 때는
미리 비닐봉지로 장미꽃을 싸서 묶어 놓는다. 그 일도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는 비를 흠뻑 맞아가며 작업하다가
감기가 들었고 서둘다가 가시에 찔려 고생한 적도 있었다. 또 다 싸 놓고 나니 오후에 해가 쨍쨍해서 푸느라 애썼으나
효과를 본 때가 더 많았다. 나의 장미 싸기는 기쁨의 작업이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부모님께 이런 정성을 들였다면 효녀 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으리라.
가랑비가 내리던 어느 오후,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골목길까지 누나의 음성이 들렸다.'감기들면 어찌하려고 그래,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 오시기 전에 옷 갈아입어야지.'
누나 이야기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큰 아이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체 '누나, 비와.' 하며 우산을 꺼내서 장미꽃을 바쳐주고 있더란다. 온몸이 비에 젖어 덜덜 떨면서도.
아이는 나를 보자 울음보를 터뜨렸다. '엄마같이 할 수 없었단 말이야.비가 올 때마다 곁에서 비닐과 끈을 집어주던 큰아이는 엄마가 하던 일이 생각나는데 혼자서 어쩔 수가 없으니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그날 나는 장미 1호 앞에서 울고 있는 아들의 마음이 예뻐 한동안 말없이 꼭 끌어안아 주었다. 동네 화원 앞을 지날 때면 큰아이는 곧잘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꽃은 참 예뻐 그 치.' 말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린다.'엄마는 우리 아들보다 더 예쁜 꽃을 보지 못했네.' 그럴 때면 잡은 손을 세차게 흔들며 씩씩하게 걷는다. 아들이 무척 귀엽다.
18세기 이후 코번트리 시는 레이디 고다이바의 전설을 상품화했고 말을 탄 여인의 형상을 마을의 로고로 삼았다. “공중의 행복을 위하여(Pro Fonopopul Ico)”라는 문구가 조각되어 있음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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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 Comments
그러게요. 아침에 일어나는것도 싫어질 정도입니다.
한국 꽤 춥다고 들었어요...전 여기도 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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