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전투의 경과에 대해 다른 시각이 있네요.

역설페인 0 3152

 

우선 우리가 아는 코소보전투는 무라트 1세가 라자르의 세르비아를 정벌하러 갔고 라자르와 브란코비치가 이끄는 세르비아 영주 연합군이 무라트에 맞섰습니다. 세르비아는 무라트에게 크게 대패했고, 이후 무라트는 세르비아 기사 밀로쉬 오빌리치에게 살해당하고, 바예지드 1세가 이에 동생 야쿠브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것까지입니다. 그런데 두샨 바타코비치의 '세르비아 역사'에선 조금 다르게 나오더군요.

 

'1389년 봄에 술탄 무라트 1세는 두 아들 야쿠브와 바야지트(바예지드 1세-필자)를 데리고 라자르 공의 세르비아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는데, 그의 군대에는 그의 기독교 가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민중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속에는 밀로쉬 오빌리치라고 불리는 세르비아의 한 기사가 등장한다. 그는 술탄의 막사까지 쳐들어가는데 성공했으며, 어떤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에서 그는 세르비아 군대에서 도망쳐 온 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무라트에게 다가가서는 도끼로 그를 내려쳤다. 또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용감한 12명의 귀족을 이끌고 술탄의 근위대를 돌파해서는 무라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바예지드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야쿠브를 살해하도록 명령하고는 '지쳐 쓰러질때까지' 대세르비아 전쟁을 계속했다. 세르비아 진영의 라자르 공도 '수치스러운 삶보다는 영광된 죽음이 우리에게 낫다!'라고 말하면서 절대 후퇴하지 않았다...라자르와 함께 그의 조카들인 무시치가의 형제들도 죽었으며 세르비아 군대의 대부분도 죽은것이 사실이다. 부란 브란코비치와 블라트코 부코비치 장군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이책에 나온걸 정리하자면 세르비아군이 전투에서 대다수가 사망하고 사령관인 라자르와 그외 브란코비치와 블라트코 장군을 제외한 지휘관들 대다수가 전사한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라트는 전투전 밀로쉬에게 죽었고, 전투를 지휘한것도 바예지드란겁니다. 이것말고도 이런 구절이 이책에 있더군요.

 

'군사적 측면에서 승부가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의 낭보가 유럽의 기독교 국가에 날아들었다... 피렌체에 보내는 서한에서 다시 세르비아의 승리를 알렸고...파리의 센 데니(성 데니스) 수도원 종은 기독교국의 대승을 알렸다...비잔틴의 유명한 웅변가 디미트리예 카돈은 추방당해 있던 비잔틴의 황제 마노일로 2세 팔레올로그(마누엘 2세. 당시 요안네스 5세와 공동황제였었죠?)에게 보낸 자신의 서한에서, 코소보 전투와 술탄 무라트의 죽음에 대해 적으면서, 비잔틴이 세르비아와 함께 대터키 전쟁에 나서지 않은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터키가 패배했다는 소문은...오스만이 공격이 멈춰지기를 바라는 기독교국 동시대인들의 바람과 소원에 부합된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큰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터키의 진격이 저지당했다는 사실과, 터키 군대가 세르비아의 저항 앞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환경이다.'

 

여기서 나오듯 당시 서방에선 코소보에서 투르크군이 패배했다는 소문까지 퍼졌고, 최종적으로 투르크군의 진격은 코소보에서의 전투로 저지당했다는겁니다. 

 

뭐, 제가 말하고 싶은건 이 책가지고 '코소보 전투의 진실은 이렇다!'라고 말하려는게 아니라, '저런 시각도 있네, 신기하다.'정도로 소개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책의 시각은 재밌어 보이긴 하는데(쫌...많이 세르비아뽕이 차있지만요.) 이 책 시각이랑 반대되는 얘기가 어지간한 책에 다 소개되어있어서 믿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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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6 기스카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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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웃으면서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잉여!....크킹이랑 유로파 좋아하고 시공이랑 시계도 가끔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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