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를 읽을 때 가장 신기한 점 ⑦ - 정보획득 루트 편

양양 15 2133

오래간만에 재개하는 양판소의 신기입니다. 이번에 한번 다뤄볼 주제는 양판소에서의 정보획득입니다.

D&D 같은 경우는 주인공들이 정보획득을 위해서 보통 주점이나 상점 등, 민간차원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수집하는게 첫번째 단계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정보수집도시와 가까운 지역의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주를 이룹니다. 몬스터가 아니라면 지형이나 최근 마을에서 이슈가 된 사건들(ex: 요즘 비행선이 자주 떠다녀서 사람들이 불안하다)이 화제가 됩니다.

여기에서 모험을 하다보면 각 지역의 지배자들을 만나면서 얻는 정보도 있습니다. 지배자들은 보다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민간에 비해 많으므로 주인공들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은 이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정보비를 지불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부탁(퀘스트)를 수행합니다. 디아블로, 아이스윈드데일, 스카이림과 같은 게임을 떠올리면 대략적으로 얼추 맞는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SF와 고전 판타지에서도 통용되는 사실입니다. "양깽소"(양키가 깽판치는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는 에드가 버로우스("타잔"의 작가)의 작품, "화성의 공주"는 미국인 존 카터가 화성으로 넘어간 다음에 펼쳐지는 깽판물인데 여기에서도 최초로 정보를 얻는 루트를 외계인들과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이 정보의 질 역시 그 접촉한 외계인의 지위(화성에서의 지위)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집니다.

 

헌데 뭐랄까... 양판소는 그런걸 신경 안 쓰니까 양판소인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 제가 적은 저 화성의 공주도 제가 처음 이글루스의 모 님이 강력하게 홍보하시는 걸 보고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 가서 행사기간에 구입해서 본 거였는데 내용이 고전(?) 양판소의 느낌이 나서(현실에서는 남북전쟁에 참가하고 있던 평범한 군인이지만 화성에서는 엘리트이며, 공주를 위기에서 구해준 영웅이되고 화성의 분쟁을 종식시키는 대영웅) "아무리 장르소설의 대국인 미국이지만 100년전에는 양판퀄리티네"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양판은 정보를 얻는 방법이 정말로 LTE급입니다. 정보길드에 요청하면 알아서 정보가 기어들어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돈만 지불하면 사실 얻지 못할 정보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유료 라이코스네요.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겁니다. 어떤 양판에서는 귀족가의 저택 설계도까지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장 여러분이 이건희, 정몽준 등이 살고 있는 저택의 설계도를 손에 넣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못해요(...). 만약 고려시대로 넘어간다손 치면 권문세족의 저택 설계도를 유랑자가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을 겁니다. 이거... 가능합니까?

게다가 정보길드는 지점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건 용병길드와 비슷한데 정보가 서로 교환가능하며, 각 지점은 타 지역의 지점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파악도 가능합니다. 가령 주인공이 적대적인 귀족의 약점을 찾고자 몰래 가택수색을 계획하고 있다치면 정보길드에 찾아가 정보를 요청할 겁니다. 정보를 요구하니 "이 정보는 가격이 XX골드이고, OO일 정도가 걸릴 것 같습니다"라는 상당히 놀라운 수준의 정보판별기간까지 알려줍니다. 이게 휴리스틱 분석이 대단한 게 아니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과 그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위해 해당 의뢰를 받은 지점이 가진 역량을 동원했을 때와 타 지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종류와 그 양을 가늠할 수 있을때나 가능한 답변일 겁니다. 솔직히 CIA도 이렇겐 못할겁니다(...). 아니, CIA가 아니라 그 유명한 먼치킨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도 정보를 이렇게 쉽게 얻진 못했습니다. 어디 정보길드원이 제임스 본드고, 본드걸이 그 귀족집 딸내미라서 잘 후려가지고 얻을 수 있다면 모를까(...). 아니 것보다 이런 수준의 정보력이면 그냥 그 귀족의 약점을 팔면 안 되나(...).

 

이쯤되면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제레처럼 사실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고 조율하는 흑막입니다. 가히 프리메이슨의 현실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정보길드는 어쨌거나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간판까지 달고(!) 운영하는 민간단체라는 점입니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개방과 하오문은 그래도 그 정보력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ex: 마교장로의 정보는 윤곽까지는 알 수 있으나 마교 호법에 대한 정보는 윤곽조차도 알 수 없다) 이놈들은 얻지 못하는 정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냥 정보길드가 대륙통일하는 소설을 쓰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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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omments
함장  
그래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판타지의 정보 획득 수단인 예언이나 점술은 경시되더군요.
양양  
사실 판타지에서 가장 확실한 정보획득은 예언과 점술인데(...). 신화에서도 언제나 예언과 점술로 사가가 시작되고 완성되는 걸 생각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보획득은 차라리 배제시키는게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함장  
뭐랄까. 현대인 적으로는 '예언을 들었다'는건 뭔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작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소위 기술이라는게 예언이나 점술하고 별차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CSI에서 과학수사나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프로파일링은 거의 무당질 수준이죠.
paro1923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달한 기술은 마술과 구분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죠. 물론 요즘의 고도화된 기술을 얘기하는 것이지, 드라마상의 클리셰를 변호하는 말은 아니지만요.
함장  
뭐 다른 이야기로 귀족 가문의 저택 구조를 알려면
- 그 집의 하인, 하녀를 포섭하거나
- 그 집을 건축한 건축가를 포섭하거나
- 손님으로 가장하여 방문하거나
이런게 있겠죠.
양양  
그 정도라면 저도 그럴듯하다고 믿을만한데... 문제는 설계도라는 점이지요. 설계도를 입수해서 무슨 오션스일레븐을 찍는건 이해하기 어렵지요. 함장님이 말씀해주신 부분들은 이미 루팡이나 천사소녀 네티 등에서 자주 나온 사전조사라는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정보길드라는 것들이 무슨 시카리오 뺨치는 마약소탕작전을 위한 사전정보급 물건을 물어오는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시카리오에서도 이 작전을 위해 인공위성을 띄웠을 정도로 세계 최강국이 보유한 현대 과학기술의 총력을 다하는데.... 일개 민간단체가 주인공이 족치거나 돈 몇푼 준걸로 해결 가능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건 도무지 상식 수준이나 세계관의 설정, 또 인문학적인 암묵적 합의(설명되지 않은건 인간의 역사와 사례를 토대로 독자와 작가간에 이루어지는 암묵적 합의)가 있을꺼라곤 믿겨지지 않을 정도지요.
paro1923  
그나마도 요즘은 신하고 어깨동무하며 노는 초월자 주인공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길드를 통한 조사 같은 것도 건너뛰고 주인공 혼자 '스카이넷'스럽게 노는 물건도 늘어나고 있더군요. 하기사, 요즘 세상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정보의 조사 및 전달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부정확하던 전근대의 상황 자체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보 과잉'의 세상을 살다 보니 '정보 빈곤'의 세상을 이해 못하는 거죠.
양양  
정보수집이라는게 사실 엄청 어려운 일이지요. 당장 인터넷 이전의 90년대 초반의 생활상을 잘 더듬어봐도 소위 탐정사무소라는 간판을 단 사설업체들이 하던 일은 발품을 뛰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정보를 캐오는 거였지요. 양판의 정보길드는 무슨 도서관마냥 "이 책 주세요"하면 사서처럼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보면... 이런 사람들은 일단 일제강점기 소설을 쓰면 조선독립군이 흥신소 찾아가서 "일왕이 보낸 조선총독을 살해할 예정이니 어서 총독거처의 건물 설계도면을 달라"고 하면 순순히 주는 소설을 쓸 겁니다. 줄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과연 이런걸 흥신소의 연합체 정도밖에 안 되는 곳에서 이게 가능하다면 얘네들은 조선독립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강자일 겁니다.
집의 구조를 하녀를 끌어들인다던가 하인으로 위장해 그걸 통해 대강 그려낸다면 모를까 설계도면을 통째로 구해온다면... 그조직은 아마 그세계에서 거의 빅브라더수준이란 말인데...;;흠;;
양양  
위에 조선총독암살을 비유로 적었지만, 흥신소가 연합하여 저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다면 흥신소 조합은 세계를 지배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소설 듄에서 나오는 길드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지만 "가늘고 길게간다"라는 식의 존재이유를 나름대로 부여라도 하고 있지, 이건 뭐... 이쯤되면 용병왕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못하는 것보다 더 설득력이 없습니다.
Lester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흔히 얘기하는 장르로서의) 판타지는 아니지만 '정보 획득'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전문적으로 습득하는 매춘부(혹은 로마니) 길드와 도둑 길드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접촉하거나 '엿듣는' 방법을 쓰고 있죠. 말씀하신 대로 무슨 견적 내듯이 '며칠 걸리고 얼마 들고' 이러는 건 무슨 신도 아니고, 말이 안 됩니다.

아마 판타지를 게임으로만 접했기에 실제 과정에 대해선 모르거나, 혹은 귀찮아서 넘겨버리는 게 아닌가 싶네요.
양양  
물론 정말로 뛰어난 정보원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토대로 휴리스틱 분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예전에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10건 받았는데, 건당 소요된 시일은 평균 1주일이었고 비용은 10골드였다...라는 과거의 사례가 있다면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는 대략 그와 비슷한 금액과 소요시간을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양판에서 이런 현장에서 판단 가능한 의뢰가 오냐면 그건 절대 아닌데(...) 진짜 어크급 난이도에 준하는 정보수집의뢰를 그 자리에서 덜컥 계산 끝내고 받는다는건 솔직히 이건 뭐(...). 게다가 미션을 수행하지 못했을 시 돌려줘야 하는 위약금도 그 자리에서 계산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레스터님이 추측하신 전자와 후자 모두 다 합쳐져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만능정보길드"라는 클리셰가 만들어진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Nullify  
왠지 잘 와닿지가 않네요. "금고 비번을 따는 것은 매우 쉬웠습니다" 스런 작품을 많이 안 봐서 그런가...

그런데 전에 쓰신 다국적 용병길드(...) 비판이랑 비슷한 맥락에서, 애초에 높으신 분들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거저거 뚝딱 알아내는 사람들이 길드차리고 모여있으면 연줄은 고사하고 대대적으로 숙청당할 것 같은데 말이죠. 진짜 솜씨좋은 정보원이라면 정보 흘리고 다니지 않도록 아는 사람만 알게 혼자 다니는 게 정상일 것 같고요. 모든 귀족이 D&D의 악마놈들처럼 툭하면 서로가 서로를 음해하려고 온갖 정보유출을 권장하고 다니는 막장 세계관이라면 모를까요 (진짜 이런 세계관이라면 의외로 재밌을 것 같긴 합니다)
양양  
X피아 같은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참 재미있게도 정보수집의 첫 단계는 정보길드를 찾아가는 게 거의 대다숩니다(...). 아니면 도둑길드, 혹은 암살길드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주인공: "훗!"
길드원: "헉!"
주인공: "정보내놔!"
길드원: "XX골드에 OO일 걸립니다!"
주인공: "!"
같은 패턴이 많지요. 물론 출판된 책들도 이런게 너무 많아서(...). 솔직히 이렇게 뚝딱뚝딱 알아내는 능력은 출중한데 지킬 힘이 별로 없으며, 찾아내기 쉽게 간판까지 달고 있는 놈들이라면 높으신 분들이 가만 냅두고 필요할때 족치기만 하면 되니까 안 죽여도 괜찮을꺼 같습니다(...).
함장  
음 비밀결사 종류라면 정보력은 있겠지만
그 만큼 쉽게 접근하기도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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