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를 정리하며]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 5 1310
1. "유명한 대목입니다. 아시죠?"

유명한 대목이라 함은, 열다섯살에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공자가,

'내가 스무 살에는 어떻게 되었고, 서른 살에는 어떻게 되었으며, 마흔 살에는 어떻고, ……, 일흔 살에는 마음 내키는대로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라고 말하는 논어의 대목입니다.

"전에 읽어본 적 있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냥 공자가 지 자랑하는 줄만 알고, 대충 읽고 넘어갔죠? 이 문단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면서 그 문단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공자의 생애를 쫙 정리해 말씀해 주시다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공자라는 사람이 참으로 힘들게 산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궂은 일을 마다하지 못했고, 관직을 얻으려 해도 주는 곳도 없었지요. 누가 봐도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을 법한 탁월한 재능이 없었다, 이 말입니다."

실제로 논어에 그렇게 나와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스스로 자랑하는데, 다른 사람한테 배우고 공부하는 것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있다고 말하거든요? 그만큼 공부하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왈.

"그런 사람이 자기 공부를 완성하는 데 55년이 걸렸습니다.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55년이 걸렸다는 말이 아니라, 평생을 다 바쳤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첨언하시길.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죽을 때가 돼야 비로소 그만둘 수 있는 거고요. 여러분도 공부를 그렇게 하세요. 어중간하게 튀는 재능 하나 찾아서 재미 보려 하지 말고."



2. "그럼 공부라는 건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연애를 하세요."


(…)

교수님이 내게 빅엿을 줬어.

"말같지도 않은 엉터리 책들을 대충 훑어보면서 위대한 철학책 읽는답시고 교만해하는 것보다는, 직접 사람과 가까이서 부딪힐 때, 정신이 쑥 자랍니다."

"하지만 연애할 시간에 철학책을 읽을 수도 있잖아요?"

"철학책 읽는 놈 중에는 정신이 어린 엉터리를 많이 봤지만, 한 차례 연애를 마친 사람 중에 정신이 크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연애를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



3. 정작 그런 말씀을 하신 교수님(음, 정확히 말하자면 강사님)은 많이 반사회적인 분이십니다.

(…)

이전에 교수님이 학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모인 학자라는 사람들이 토론은 안 하고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해서 박차고 나와버렸답니다.

"내가 그 이후로는 다시는 학회에 안 갑니다. 그 사람들은 분명히 천벌받을 겁니다. 감히 국민들이 힘들게 모은 돈으로 공부를 안 하고 노는데 써요? 지 돈으로 놀 것이지."

(예산을 국가에서 지원받는 학회였던듯)

그 외에도 사회 전반에 대해서 온갖 디스를 하시는데, 그러면서 정작 학생들에게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연애도 해보라고 하시니(…)

"사람들과 자주 만나라고 했지, 사람들을 까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제 정신이 어려서 그걸 이해를 못하는 걸수도 있으니 몇년간은 더 생각해 보려고요.



4. 생각해 보면 교수님들은 전부 하나같이 자기가 한 말이랑 행동이 노골적으로 어긋나는 분이 많고,

심지어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지간하면 그냥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시피 하는데,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부분에서 자기 행동이나 이전에 했던 말과 어긋나는 분이 많으십니다.



1학기 때 교양 미학 시간에 말입니다. 미학 교수님 왈.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없고, 그 와중에도 무언가 잡히는 것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입니다. 가치있는 삶은 그런 고찰이 있을 때,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때 가능합니다."

"오오─, 그럼 그런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시는 교수님은 어떻게 사시나요?"

"일주일에 몇 번씩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젊을 때에 비하면 줄었답니다.

물론 그 분은 이 학과 교수님들 중에는 아직 가장 젊습니다.

(…)

"이불을 덮으면 제가 내일 아침 일어나지 못한다고 가정하고 삶을 정리해봅니다. 그리고 자살 충동이 일어나죠."

"별로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 삶이네요."



5. 미학 교수님은 한 번은 또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랑(=여러 번의 연애)을 해야 합니다. 결혼을 일찍 하는 건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말고, 아이도 갖지 마세요."

"교수님은 아직도 연애를 하면서 사시나요?"

"여러분 나이만한 자식이 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다들 독신이던 시절을 그리워하나 봅니다.


(…)

"원래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행동과 어긋나게 되어 있고, 전에 한 말과 후에 한 말은 어긋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확실히 사람은 아직 기계와는 다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항상 신경쓰지는 않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도 그러더군요.



6. 세벌식 최종으로 갈아탔습니다.

처음에는 세벌식 390이 편해 보여서 390을 한 달 가까이 썼었는데, 받침으로 쓰는 자음의 수가 모자라서 타이핑을 할 때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받침용 자음(예를 들면 ㄵㅀㄽㄿㄾ)이 많은 세벌식 최종으로 갈아탔는데,

이 자판은 특수문자의 배치가 심하게 쿼티와 차이나서 이것 나름대로 불편합니다.

문제는 두벌식으로 돌아가려 해도 이미 두벌식을 다 잊어버렸을 뿐더러,

세벌식이 가지고 있는 리듬감 때문에 두벌식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겠네요.

문제가 있다면 ㅗ와 ㅜ가 각각 두 개씩이나 달려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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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책에봐라  
생각할 지점이 많은 이야기들이네요.
책에봐라  
ㅗ와 ㅜ의 중복 같은 경우, 단모음 ㅗ, ㅜ와 이중모음 ㅘ, ㅝ에서 쓰이는 ㅗ, ㅜ를 구별해 둔 게 아닌가 합니다. 아.. 아시는 상태에서 그냥 하신 말씀인가..
 스  
아 이제 이해했습니다. 세벌식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모니터와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타자기를 써서 ㅗ와 ㅜ가 각각 두 개씩 있는 거군요.
책에봐라  
네네... 잘은 모릅니다만 사실 세벌식 자체가 자형을 기준으로 했기에 실제 타자기에서는 널리 쓰였더랬지요.

애초에 세벌식에서의 초성 자음~종성 자음 분리 역시
프로그램 차원에서 알아서 초성과 종성을 구별해 주기에 두벌식으로도 그럭저럭 굴러가는 워드프로세서와는 달리(도깨비불 현상 등이 생기긴 합니다만),
글자 생긴 모양에 따라 기계적으로(=물리적으로 or 시각적으로) 구별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타자기였기에 생겨난 분리라고 봅니다.

한편 두벌식 타자기도 있긴 한데...
초성 자음은 그대로 쓰는 한편
종성 자음에 대해서는 (shift 키를 누르는 것마냥) '받침' 키를 눌러 글자가 찍히는 위치를 살짝 아래로 조정한 후에 초성 자음을 눌러서 구현하더라고요.

...뭐 지금이야 다 옛날 얘깁니다만...
paro1923  
1. 태공망은 나이 칠순에 이르기까지 공부만 하며 니트(?)로 살았다가 노년에 크게 이름을 떨쳤고, 끝이 다소 안 좋긴 하지만 역이기도 노년에 이름을 떨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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