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파이돈>을 읽다가.

야생의주지스 1 1515
1. 지금보다 더 어리고 상처받기 쉽던 시절 사서선생님이 충고를 하나 해 주셨는데, 저는 아직까지도 그걸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만약 네 전공이 아닌 분야를 접하면서, 네가 그 쪽에 소질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거든 떠올려라"

사서선생님 왈.

"원래 자기 전공 아닌 게 제일 재미있다"


(…)

왜 굳이 이런 드립을 치냐면요.



2. 한달쯤인가 전에 한 교수님 강의 하시다가, 방학에 읽을만한 고전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급 빡쳐서 말씀하시길.

"서울대학교 선정 인문고전 50선 이런 거 읽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지금 하이데커, 후설, 비트겐슈타인 읽으면 이해를 할 수나 있습니까. 안 되잖아요."

"어리석은 중생들 같으니라고, 지들도 이해 못 하는 책을 감히 고등학생, 대학교 신입생한테 읽으라고 해요?"

"여러분들이 지금 읽어야 할 책은 바로 <파이돈>입니다. 방학 되면 인문대 앞 벤치에서 책 쌓아 두시고 꼭 읽으시길 바랍니다."

(…)



3. 아무튼 그래서 <파이돈>을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읽는데 말입니다.

3분의 1쯤 읽었는데, 한 페이지 넘기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시점이 지금 찾아왔습니다.

대략 이런 문장이 꽤 많이 있더군요.

「그럼 비가시적인 것인 영혼이 그런 성격을 가지는 다른 장소로, 고귀하고 순수하며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 하데스의 참된 거처로, 훌륭하고 현명한 신의 곁으로, 신이 바라신다면 나의 영혼 역시 가야만 할 그곳으로 가는데, 우리에게 있어서 그러한 성격을 가지며 그러한 본성을 지닌 영혼 자신은, 대중들이 말하듯, 몸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곧바로 흩어져 소멸해 버릴까?」

도대체 왜 이 내용을 이렇게 긴 문장으로 표현해야 하는건가(…).

그나마 이 문장은 이해가 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도 꽤나 있었습니다.

물론 소리를 내서 읽는다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만, 한 시간 가까이 소리를 내서 읽다 보니 목이 쉬더군요.

(…)



4. 그래서 잠시 <파이돈>을 접어두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는데 말입니다.

문장이라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

필사해서 가지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이더군요.

역시 제 전공 아닌 게 제일 재미있습니다.



ps. 며칠 전에 많이 우울해서 밥도 안 먹고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강했을 때쯤이었나.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정보에 해박한 친구가 제게 <킬빌> 2부작을 보라고 추천해줬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래서 <킬빌>을 봤는데 다 보고 나니까 식욕이 막 솟는겁니다.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밥 많이 먹고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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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美製]筋肉馬車  
같은 감독의 펄프픽션의 사뮤앨 잭슨 횽이 햄버거 먹는게 아주 찰진걸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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