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에만 시를 10편을 썼습니다.

作家兩班 2 1196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3주째 정말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제가 올해 스물네 살인데, 정말 단언컨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힘들었던 나날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절 힘들게 한 것이 있다면 대체로 내적 요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를 감당 못 할 정도로 괴롭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외적 요인입니다. 그래서 진짜 지난 3주간 정상적인 생활을 제대로 하지를 못 했습니다. 오늘이면 해결되겠지, 내일이면 해결되겠지 하기가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괴로워 가지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더욱 이 괴로움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상수역 출입 게이트 앞 의자(, 6, 7, 8호선에 있는 팔각형 의자 말하는 겁니다)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괴로움에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제가 육성으로 울음 터진 지가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육성으로 터지곤 합니다. 그렇게 눈물을 펑펑 흘릴 정도로 괴롭다 보니까 소설을 못 쓰고 시를 쓰게 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게 아니라 시를 뿌리는 거죠. 7, 5조 3음보에 맞춰서 짧게는 7줄에서 길게는 20줄 정도로 시를 쓰는 겁니다.

 사실 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를 썼고, 중학교 때는 아예 시 쓰는 것이 취미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가사(노래 가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상춘곡, 관동별곡 이런 거 말하는 겁니다)를 쓰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20대에 접어들면서 쓰는 재미가 있고 또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로 갈아탔죠. 제 고등학교 친구 중에 지금 Y대 물리학과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상당히 자주 시를 써서 저한테 카톡으로 보내곤 하거든요. 저는 그 친구를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시를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지 신기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시를 자주 쓰곤 했지만, 소설로 갈아탄 이후에는 마음 먹고 시를 쓸라 그래도 시가 안 나와요. 시는 한 편 완성하기는 소설에 비해 어렵지 않고 컴퓨터 앞이 아니라 전화기 붙들고도 쓸 수 있으니 얼마든지 많이 쓸 수가 있는데, 시를 쓰고 싶어도 시가 안 나와서 못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 살면서 이렇게 괴로웠던 적이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보니까 저도 시를 쓰게 됩니다. 어제는 세 편의 시를 써서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올렸고, 오늘은 하루에만 무려 10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닉네임을 시인양반으로 교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 닉을 계속해서 쓰기로 약속하기도 했고, 또 제가 소설을 못 쓰고 시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제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너무 괴롭고 힘들기 때문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원래부터 정신 상태가 4차원이긴 했지만) 전철역에 앉아서 육성으로 눈물 펑펑 쏟을 정도로 슬프기 때문에 시가 나오는 건데, 계속해서 시가 나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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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임페리우스  
선생은 여전하시구려. 건필하시오
책에봐라  
그렇게 글과 친숙하시다는 분이 왜 '단언컨대'를 '단언컨데'로 썼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건 문법 나치스러우니 넘어가고요(뭐 이미 얘기한 셈이네요.).

시, 즉 서정 갈래가 '자아의 세계화', 즉 복잡한 내면을 표출하는 일에 제격이긴 하지만, 지금 님을 괴롭게 만드는 '외적 요인'을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아요.
맘이 좀 추스려지는 대로 그 요인을 어떻게든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듣자하니 존경하던 교수님에게마저 실망했다 뭐 이런 글도 있던데, 명색이 신앙인이라면 사람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거기에 기대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상 아닌 우상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시고, 마음 좀 추스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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