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NTX...인가?] 소설 속 대사에 관하여.

Loodiny 8 2129
1.
네이버 웹툰 '나이트런'을 연재하는  김성민 작가께선,뭐라는 건지 모를 정도로 꼬인 문장구성,해석을 방해하는 수준의 오타,허세력으로 가득 찬 대사에 대해서,
"그거 혀가 꼬이는 걸 현실적으로 표현한 거에요" 라는 드립을 치신 바 있습니다.

근데,나이트런의 최대 단점이 문장력이라는 거 같은 걸 무시하고 보면,
의외로 저 말은 그럴듯(?)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보겠습니다. 지금 당장,친한 친구 한 명과 한 10분 정도 녹음기를 켜고 대화해보세요.
그 다음,녹음파일을 들으면서, 그 대화내용을 '그대로' 기록해보세요. 발음이 불분명하거나 뭉개진 부분은, 뭐 IPA를 쓰건 가능한 한 한글로 비슷하게 표기하건 절대로 수정하지 말고,
말을 더듬거나 '어','그게','음' 같은 음성적 잉여표현을 사용하거나 어순이 엉망진창으로 도치된 부분도 그대로 기록하는 겁니다.


...장담컨대,결과물은 몬더그린 투성이에 비문이 넘쳐나는,내가 한 말이 맞기는 하나 싶은 글이 될 겝니다.
사람은 친구와 수다를 떨 때 머릿속에서 문장을 퇴고하고 내뱉진 않거든요. 발음 역시,아나운서와 성우들 같은 정확한 발음을 모두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좀 심하게 뭉개질 뿐...~~

즉,어떤 의미에서 소설 속의,발음의 뭉개짐도 문법적 오류도 없는 대사는,터무늬없이 '비현실적'이죠.



2.
하지만,분명 어떠한 독자도 현실성을 위해 가독성을 포기한 대사를 즐겁게 읽어주진 못할 겁니다.

현실성을 위해 배우나 성우들이 일부러 발음을 뭉개지는 않는 거랑 동일한 거죠. ~~지브리 예외~~
일단 매체에서 필요한 건 대화의 내용을 (작중 인물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외부의 독자,시청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거니까요. 독자가 알아먹을 수 없는 대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이는 모든 매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기보다는, 현실을 어떤 '약속된 형식'에 따라 가공하여 전달한다는 뜻이기도 하겠네요.
소설 속 대사는 현실 인물들의 대화를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을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형태로 가공하여 전달하도록 암묵적으로 약속이 되어 있다는 거니까.



3.
좀 다른 부류의 이야기겠습니다만,문예영재 수업을 할 때 선생님께서 우리들의 글을 지적하시던 것 중 하나가
'큰따옴표 안에 아라비아숫자가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큰따옴표는 '등장인물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기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653"이라고 작중 인물의 대사를 적었을 때, 우리는 등장인물이 이것을 "육백오십삼" 이라고 읽었는지, "육백쉰다섯"이라고 읽었는지, "육오삼"이라고 읽었는지, 심지어 "로쿠하치고쥬산" 이라고 읽었는지도 구분할 수 없다는 거죠.
즉 이는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등장인물의 발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실패한 거라는 게 선생님의 주장이셨습니다.

뭐...선생님께선 젊으실 때부터 소설 쓰셔서 이젠 흰머리가 다 벗겨져 가시던 분이셨으니,사실 지금 젊은이들 감각으로는 '그런 거 신경써야 할 필요 있나?' 싶은 거긴 합니다.
말끝에 별을 붙이거나, 방점을 위에 찍거나, 같은 단어를 한자로 히라가나로 카타가나로 다르게 표기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표현법이 남발되는 라이트노블의 애독자인 저에게는 특히 그렇죠.


하지만,이는 분명 소설의 표현론적으로는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제가 위에서 언급한, 심지어 여기서 한술 더 떠서 타이포그라피를 시전하거나 특수문자를 남발하거나 하는 라이트노블 업계에서는 더더욱 그렇겠죠.


...문제는, 이런 잔재주를 종이 낭비라고 보는 여론이 강한데 비해,
저는 이런 '전위적인' 표현에 그야말로 환장한다는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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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Loodiny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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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안샤르베인  
1. 뭐 사실 말이 안 뭉개지는게 이상하긴 하죠.
그래도 짧은 말은 꼭 뭉개지리란 법은 없구요.

3.전 숫자 들어가는건 상관없다고 보는게
어차피 저거도 번역하게 되면 죄다 자기나라 언어로 읽지 않겠습니까(...)
주지스  
2. 사실 현실성의 문제는 소설에서 크게 중요한 사항은 아닙니다.
애당초 현장에 있는 것과 글을 읽는다는 상황 자체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는 상황인데, 어느 한 상황을 무조건 닮아야한다, 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죠.

3. 전 개인적으로 귀여니스러운 문체도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Loodiny  
2.
소설은 그 태생부터 인위적이다,라는 거군요.

3.
그렇죠. 사실 귀여니 작품에서 이모티콘 다 지우고 간결체로 쓴다고 더 재밌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Nullify  
3. 전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는데요?

"아저씨, 이 사탕 하나에 얼마 하나요?"
"650원."

저것도 육백오십원 대신 "육백쉰원" 혹은 "식스 헌드레드 피프티"라고 읽을까봐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봤습니다.
배경을 외국으로 한다 쳐도...가 아니라 애초에 외국이라면 원화는 안 쓸테니 상관없겠죠.

뭐 영어로된 책에서는 반대급부로 아라비아 숫자는 다 풀어쓰긴 합니다만...
Loodiny  
제가 예시로 든 '653' 은 대구의 버스 번호 중 하나인데,
사실 이걸 '육백오십삼'이라고 읽는 존재는 딱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육백 오십 삼번 버스가 전전위치를 출발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육오삼"이라고 읽거든요.


비슷한 원리로, 본디 "52명"은 "쉰 두명" 이라고 읽어야 일반적일 텐데, 사실 저 같은 학생들은 무의식적 귀차니즘의 발로로 "오십이명" 이라고 읽어버리곤 합니다.


물론 작가가 등장인물이 이걸 어떻게 발음했는지를 정확히 알려야 할 의무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일부러 헷갈리게 적어야 할 의무는 더더욱 없을 테죠. 특히 현실감을 위해서 사투리나 비속어를 그대로 적으려 드는 류의 작품이라면.

아마 선생님께서도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거일 테구요.
뭐,근데 요즘 숫자를 풀어쓰는 건 오히려 가독성을 떨구는 감도 있어서리... 일단 저 본인은 몇몇 필요한 경우를 제하면 아라비아 숫자 쓰는 축입니다.
로크네스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위적인 실험은 한계가 명확하다고 봅니다. 일반적인 글 형식에서는 줄 수 없는 효과를 주기 위해 기교를 부리는 건 전 괜찮다고 보지만, 기교를 위한 기교는 에러죠. 사실 기본기가 부족한 연습단계에서 이뤄지는 소위 "실험적인" 표현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생각해놓은 걸 혼자 참신하다고 조잡하게 써먹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Loodiny  
음...확실히 정론입니다만,사실 전위적 표현이라는 게 참신함만이 목적인 것도 아니고,그 경계도 애매합니다.
예컨대,현대 소설에서 이텔릭체의 사용을 금기시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글자 크기를 조절하는 연출은 찬반 양론이 존재하죠. 둘 다 '같은 텍스트의 표현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출'인데도 취급이 꽤나 다릅니다.
제가 위해서 언급한 '글자로 모양 만들기'도, 소설가 입장에서나 전위적이지 시에서는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흔한 방법이거든요.

결국 시각의 차이입니다. 혹자는 카타나가타리에서 천도순례 묘사를 위해 '츠루기'를 진짜 천 번 쓴 걸 종이 낭비라고 생각하겠지만,제 입장에서는 '동일한 칼 천 자루'라는 어처구늬없는 장면을 엄청나게 직관적으로 묘사했다고 보거든요.

결국 전위적이라는 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극대화시키는 방법의 일환이고,
그 점에 대해서라면,작가에게 어떤 윤리적 금제를 걸어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적절히 쓰였냐의 문제가 있을 뿐.
흐린하늘  
1. 저게 희곡이 아니고 만화나 소설인 이상 영 공감이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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