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 귀하
靑天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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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4 11:26
현재진행형 귀하에게 드리는 글 / 도박은 게임의 하위 분류인가에 대해서.
전일 채팅방에서 있었던 일의 연장선상에서 드릴 말씀이 있기에 몇 자 적습니다. 사과는 안 받으시겠다니 생략하겠습니다. 모바일이기도 하였고 채팅 로그를 보존하지도 못하였으나, 또한 만의 하나라도 귀하 혹은 혹자가 채팅방 로그를 보존하였다면 더욱이 좋을 것이나, 전일 정도의 대화내용은 명백하게 기억하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하고 진행하겠습니다. 기억에 의존하는 점은 일단 양해 바랍니다.
본인은 도박이 게임의 하위 분류로 생각할 수 있다 주장하였고 귀하께서는 다양한 근거를 들어 도박은 게임의 하위 분류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분명한 기억에는, 귀하는 도박은 게임의 교집합 정도는 될 수 있어도 부분집합은 될 수 없다고 표현하신 것이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데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저는 도박이 게임의 하위 분류라고 주장했지 게임이 도박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의견을 왜곡하지 않길 바랍니다. 한편 귀하께서는 도박의 핵심 요소는 베팅이며, 단순한 운의 요소가 있다고 해서 도박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저 역시 동의하는 바이며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것을 왜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시려 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생략하겠습니다.
1. 법적 정의
귀하께서 애달프게 외치신 법적 정의에 대해서 먼저 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귀하께서는 ‘도박은 법적으로 정의되는 것이고, 법적인 정의에 의하면 도박은 게임이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만, 실제 현행법은 ‘베팅이나 배당을 내용으로 하는 게임물’ 은 ‘사행성게임물’이라는 분류, 즉 게임의 하위 분류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본인은 귀하가 법에 대하여 교육이나 학습이 미진한 상태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닌가 강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만, 본인 역시 법에 대한 전공을 한 것이 아니므로 그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조문과 이론, 내지는 판례를 간단히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귀하의 설명과는 너무나도 배치되는 것이 많아 단순 설명만으로도 반박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1) 「도박과 복표에 관한 죄」에서 논하는 도박의 정의에 대하여
제246조(도박, 상습도박) ① 도박을 한 사람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사실 위 조문에는 도박의 정의가 없습니다. 좀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무엇을 보고 ‘도박의 법적 정의’ 운운하신 건가요? 도박이란 너무 일반적인 단어로, 일일이 정의내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재철 교수의 형법이론강의를 보면 ‘도박죄는 간단히 정리하면 족하다’ 고 쓰여 있더군요. 형법해석학이나 형법이론에서는 도박의 정의가 간단히 논해지기는 하는데 다수설과 소수설을 막론하고 형법이론에서 정의내린 도박의 정의에서도 도박이 게임임을 부정하는 근거나 반례 등은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법적 정의를 새로 만드셨다고밖에 생각이 되질 않는군요.
2)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논하는 사행성게임물의 정의에 대하여
그래서 제가 찾아왔습니다. 국내 실정법상 도박에 대한 정의를 간접적으로나마 하고 있는 법률은 몇 조문이 있는데, 이 중 주요 키워드인 ‘게임’과 ‘도박’을 동시에 논하고 있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예시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의2. "사행성게임물"이라 함은 다음 각 목에 해당하는 게임물로서, 그 결과에 따라 재산상 이익 또는 손실을 주는 것을 말한다.
가. 베팅이나 배당을 내용으로 하는 게임물
나. 우연적인 방법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게임물
다. 「한국마사회법」에서 규율하는 경마와 이를 모사한 게임물
라. 「경륜·경정법」에서 규율하는 경륜·경정과 이를 모사한 게임물
마. 「관광진흥법」에서 규율하는 카지노와 이를 모사한 게임물
바.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물
보시다시피 현행 법전에서는 명백히 도박의 일종인 경마나 카지노를 「게임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팅이나 배당에 대하여서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도박이 게임물의 하위 분류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도박은 사행성게임물이며, 사행성게임물은 게임물의 하위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 법에서 말하는 게임물에서는 사행성게임물을 제외한다’ 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해당 법률이 논의하고자 하는 게임물에 대한 범위를 설정하기 위하는 것이지, 사행성게임물이 게임물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3) 판례
“…피고인 등이 게임을 한 시간은 저녁 9시경부터 9시 20분경까지였는데…”
“…왜 항상 피고인만 밥값을 내느냐며 게임을 하여 밥값을 내자고 하여 네 사람이 한 판에 1,000원씩을 내고 게임을 하여 이기는 사람이 1,000원을 식사비로 내기로 하여…” - 2003노1540
“…인터넷 도박게임 사이트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경우…”
“…게임이용자가 위 도박게임 사이트에 접속하여…” - 2008도5282
유감스럽게도 게임과 도박의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판시한 판례는 찾을 수 없었지만, 위 예시 이외의 많은 판례에서도 도박을 게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2. 일반적인 정의
이제 일반적인 정의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볼까 합니다. 그런데 도박이 게임의 하위분류가 아님을 논증하거나 그 반대의 논증을 하려면 게임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합니다. 법적인 정의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현실과의 괴리가 클 뿐더러 법에서 논하는 게임의 범위를 한정할 뿐 게임 자체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고, 전자오락만을 게임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보다 일반적인 정의를 가져오고자 합니다. 그러한 일반적인 정의에 의하면 게임이란 것은 매우 폭넓은 범위를 가진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유희를 위한 활동은 대부분이 게임에 해당합니다.
게임 [명사] 1. 규칙을 정해 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 2. 운동 경기. - 교학 한국어사전 발췌
게임(Game) 1.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놀이 - 보리 새국어사전 발췌
게임 [명사] 1. 일정한 규칙에 따라 승부를 겨루거나 즐기는 놀이. 2. 운동 경기나, 시합 - 민중에센스사전 발췌
자 그런데 게임의 정의에서 도박을 부정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없네요. 도박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승부를 겨루며, 또한 즐기는 놀이입니다. 도박은 수인(상대)가 필요하므로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놀이에도 해당하겠군요. 어떤 사전을 참조해도 도박이 게임이 아님을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베팅이 있다고 해서 도박은 게임이 아니다? 어불성설이죠. 애초에 베팅 자체도 게임입니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승부를 겨루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일반적인’ 정의입니다. 일반적으로 통한다는 정의죠. 도박은 게임이 아니라거나 하는 건 의미를 재해석하든지 해야만 통하는 새 정의구요. 일반적으로, 경마공원에서는 매 경기의 단위를 게임으로 세고 있습니다, 1게임, 2게임 … 하는 식이죠. 한편 복표 중 대표적인 로또 역시 복표의 단위를 게임으로 세고 있습니다. 1게임, 2게임, 3게임 ……. 게임당 1000원입니다.
귀하께서는 뭔가 계속 '그럼 포커나 화투 등을 게임으로 정의한다고 해도 … 배팅이 있다면 도박이며, 도박이면 게임이 아니다' 라는 식의 아전인수격 주장을 내세웠습니다만, 실상 이 논리 자체도 엄청나게 문제가 있습니다. 포커나 화투는 베팅 없이는 아예 성립되지 않습니다. 가령 화투의 경우, 배팅이 없다면 こいこい 선언 ─ 소위 고(Go) 사인 ─이 전략적인 실효를 잃게 되며, 포커는 승부만이 겨우 성립할 뿐 카드를 감추는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배팅이 있다면 포커는 카드를 감추는 것이나, 감추지 않는 것이나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여담인데 형법이론에서는, 승부의 기량이 어찌 관여하든지 운의 요소가 약간이라도 있다면 도박이 성립한다고 봅니다. 이게 다수설입니다. 그런데 또한 많은 사람들이 도박은 일반적으로 '운의 요소'가 승부 기량의 요소보다 클 때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운의 요소가 큰 것이 일반적으로 도박성이 크다고 받아들여지죠. 재미있는 것은 포커는 베팅을 해야 비로소 기량의 요소가 생기며 베팅을 없애면 오로지 운에 의해서만 승부가 결정됩니다. 위 주장만 보더라도 애초에 귀하께서 도박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근거밖에 되지 않습니다. 운의 요소가 있어야 도박인데, 베팅을 없애니 운의 요소가 극단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죠. 뭐 이 사례는 도박이 게임이냐 아니냐와는 크게 관계없기에 '여담'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3. 소결론
이쯤되면 도박이 왜 게임의 하위 분류인지를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법적으로도 도박은 비록 게임산업진흥법의 관리는 받지 못하나 일단 게임물로써 취급되고 있으며, 많은 경우 법조인들도 도박을 게임으로 인지하고 있고, 굳이 학술적인 정의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많은 경우에서 도박은 게임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어적인 정의에서 게임과 도박을 분리할 만한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게임의 사전적인 정의로 미루어 판단하면, 게임은 도박을 포함하는 것이 이미 명백합니다. 법적인 정의나 일반적인 정의 어느 쪽을 살펴보아도 귀하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반박이 있다면 좋은 답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