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를 읽을 때 가장 신기한 점 ① - 도량형 편

양양 8 1579

양판소를 읽다보면 참 신기한 부분 중 하나가 도량형이 지구와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미터법에 근간을 둔 도량형 덕택에 신기합니다.

아시다시피 미터법에서 출발한 mks도량이나 현재의 SI단위는 지구를 기준으로 하여 출발한 도량형인데 판타지 세계도 미터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무협소설의 경우는 시대와 배경이 명백하게 정해져 있거나, "뭔가 좀 달라보여도 중국처럼 생각해 달라"는 암묵적인 룰에 따라 시간은 천간지지를, 길이나 무게는 척관법을 기준으로 사용하며 여기에서는 크게 위화감을 느낄 게 없습니다. 물론 척관이 중국 "어딜 가도 똑같다"는 사실은 좀 신기하긴 하지만 don't mind~ 하며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이지요.

헌데 판타지 세계에서 미터법은 사실 좀... 이해하긴 힘듭니다. 아니 mks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합니다. 물론 행성이 지구와 똑같다면 mks가 성립할 법도 한데, 판타지 세계의 대부분은 "세상은 둥글다"라는 법칙이 성립하기도, 성립하지 않기도 합니다. 혹은 세상은 둥근데 사람들이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지요.

미터법은 기본적으로 원기를 확정지었을 때 "지구둘레의 1/4000만"이라는 기준으로 정해졌는데 이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반대편 대륙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지구보다 월등히 크다는 설정이 있음에도 mks가 그대로 적용되는 책들도 있었습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온 세상 어린이들을 다 만나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세계에서 mks는 무슨...

ps. 물론 양판소에 이런 걸 바라는 거 자체가 과한 욕심이라는 걸 잘 알지만 재미삼아 한번 시리즈로 적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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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paro1923  
아무래도 양판소 만드는 사람들의 지식이 고만하니까... '인치'나 '피트' 같은 걸 잘 알진 못할테니까요.
양양  
저도 크게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애초에 양판소의 생산자들 대부분이 이런 배경지식을 모른 채로 쓰는 경우가 많지요.
차라리 야드파운드법처럼 무언가 권위있는 인물(왕이라든가)의 신체라든가 제사용품을 이용한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도량형이니까요. 일례로 야드파운드의 페덤이나 동양권의 길 같은 단위는 근소한 차이는 있으나 용례나 길이는 거의 비슷하지요.
planetarian  
뭐 근데 사실 인치나 피트같은건 국내 독자들도 숫자를 딱 듣고 알기 어렵지않을까요. 아무리 국제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마일, 인치, 피트 이런거 보고 살았지만 미터가 편하긴 합니다.
양양  
저도 미터가 편합니다. 사실 미국 말고 거의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아마 미터가 더 익숙하니까 그렇게 쓸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이런 세세한 설정들을 그래도 조금만 신경쓰면 쉽게 피할 수 있는 오류라는 점이 좀 아쉽긴 합니다.
타이커습니다  
사실 이런 비판은 양판소에서만 나올 수 있는게 아니죠. 예를 들자면 '~를 마시는 새'시리즈는 양판소도 아닌데다가 배경도 한국과 비슷한 어딘가지만 미터법을 잘쓰니까요.
양양  
양판소에서 볼 확률이 너무나도 높다보니 아무래도 좀 신기하긴 합니다.
INTERRUPT  
가상세계에서 통용되는 도량형을 새로 만드는 것 따위는 전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뭐 예외도 있는데, 예컨대 열역학 관련 기반지식이 없는 세계관에서 온도 단위를 정의하기는 꽤 힘들거에요.) 진짜 어려운 건 독자들이 그 단위계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거죠.

별로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한국에 사는 저희는 기온 20도가 어느 정도 날씨인지, 기온이 영하권에 들어섰다는 게 얼마나 추워졌다는 건지 거의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죠. 미국에라도 나갔다가 외부 기온 화씨 70도니 80도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 단순한 단위변환을 암산으로 할 수 있건 없건간에 일단 바로 안 와닿습니다. 미국 생활이 좀 길어져야 어느 정도 감이 잡히겠죠.

사람 키가 160cm이니 170cm이니 180cm이니 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웬만하면 줄자 안 꺼내보고도 대강 어느 정도 키인지 감이 옵니다. 몇 자 몇 척이니 하는 식으로 나타내면 반면에 얼마나 키가 큰 사람인지 안 와닿죠.

가상세계에서 쓰는 가상 도량형 역시 독자 입장에서 잘 안 와닿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독자더러 일일히 MKS로 단위 변환해가며 읽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주석으로 일일히 달아주는 것도 괜히 우습고요. 소설 퀄리티가 톨킨 작가님의 가운데땅 역사서 수준의 대서사시라면 설정덕후들이 좋아할 건덕지를 제공해 줄 수야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거라면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직관적으로 익숙한 MKS를 굳이 버릴 이유는 없는 겁니다.

... 사실 저는 그런 것보다는 넓디넓은 우주공간을 다루는 SF 작품에서 마치 지구에서처럼 시간 개념을 쓰는 게 참 흥미로운데, 유감스럽게도 상대성이론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널리 통용될 만한 시간 개념을 만드는 건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작품은 별로 본 적이 없네요. 일반상대성이론이 좀 버거운 토픽이긴 하죠.
양양  
단순히 "편의"라는 경우로 본다면 판타지 세계에서 쓰이는 화폐도 그럼 "원"이나 "달러"로 표기해도 상관없어야 하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판타지 소설 작가들은 대개 "1골드면 평민의 한달 생활비"라는 식으로 화폐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씁니다. 마찬가지로 보통의 mks는 충분히 다른 판타지 세계에서 단위환산로도 대체가 가능합니다. 길이단위를 아예 1미터와의 대비를 1:1로 만들어도 여기에 큰 태클을 걸 만한 이유가 없을 겁니다. 1미터 = 1판타지단위라고 해도 개연성을 해칠 이유는 거의 없을 겁니다. 톨킨 수준의 설정을 원하는게 아니라 최소한의 개연성이 존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ps. 시간은 은하영웅전설에서 "각 행성이 다 다른 자전과 공전을 하기 때문"에 공통시간은 지구로 잡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도 70년대 SF소설들의 경우도 "지구"가 중요한 경우에는 지구가 그리니치와 비슷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SI단위가 원래 지구에서 기원하고 있었으니 우주표준시도 지구에 둔다는 설정을 가진 경우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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