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세계관에서 비극의 주된 원인

양양 9 1547

오래간만에 소오강호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소오강호도 신필이 다시 개정판을 내었다고는 하는데 주변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군요.

어쨌든 소오강호를 또 읽고 김용이 왜 신필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김용의 세계관에서는 "고작" 책 한권에 의해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오강호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규화보전 하나 때문에 모든 일이 발생하며, 아예 마이너 버전으로 만들어진 벽사검보와 동방불패가 가진 열화판 규화보전 때문에 강호의 정세가 순식간에 혼돈속으로 빠져듭니다.

사조영웅전에서 무림에 피바람이 처음 분 건 구음진경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음진경 때문에 화산논검이 발생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왕중양 사후에 화산논검의 당사자들이 구음진경을 둘러싼 시비를 일으키게 되지요. 이 와중에 몽고로 피신했던 곽정이 중원으로 돌아오면서 사조영웅전이 본격적으로 시작, 그 갈등이 심화됩니다.

신조협려때는 구음진경으로 인한 갈등 양상이 상당히 누그러진 상태가 되지만, 의천도룡기에 들어서는 또 사조영웅전과 비슷한 양상이 되어버립니다. "무림지존 보도도룡, 호령천하 막강부종, 의천불출 수여쟁봉"이라는 무림의 소문은 물론이거니와 무당파가 생기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구음진경과 관련이 있는 구양진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소림과 아미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강호정세가 달라지게 됨은 물론 나중에 밝혀지는 무림지존 보도도룡(이하생략)의 의미는 도룡도에는 악비의 병법서, 의천검에는 구음진경이 들어가 있었기에 결국은 의천검과 도룡도를 둘러싼 갈등은 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합니다.

천룡팔부에서도 주인공 중 하나인 단예가 무림에 빠져들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비급을 탐하는 모용가 때문에 발생하게 되며, 허죽이 무공을 받게된 원인은 사부의 비급을 노렸던 정춘추의 하극상 때문임을 생각하면...

주인공이 아예 무림과는 일절 관계가 없는 출신인 연성결의 주인공 적운도 그 비극의 원인은 작품의 이름대로 중요한 서적인 연성결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고, 김용의 작품중에서 가장 지옥의 밑바닥까지 갔다오지요.

협객행도 장삼이사가 상선벌악령을 배부하여 협객도로 초대하는 짓거리를 수십년간 반복함은 물론이고 여기에 존재하는 비급(바위벽면에 새겨져 있지만 "책"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을 해석하기 위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석파천도 개고생을 다 합니다.


이렇게 대충 살펴보니 김용소설의 절반가량이 책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이게 비극으로 화 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녹정기 같은 경우가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김용의 소설중에서 "희귀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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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XOBcuzesurio  
~~책이 잘못했네~~
양양  
~~책 쓴 놈 누구야?~~
paro1923  
덕분에 이른바 '신병이기'로 불리는 무기류보다 책에 더 얽메이게 되는 '클리셰'가 정립되어갔죠.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은연중에 '무'보다 '문'(혹은 '글')을 중시한 동양의 정서가 한몫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양양  
덕분인지(?) 한국에서의 판타지는 서양과는 달리 신물에 중점을 둔 고전적인 사가와는 거리가 제법 벌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엑스칼리버 같은 신물을 찾아 악을 멸하는 느낌의 이야기보다는 주인공의 능력 자체를 영원히 올릴 수 있는 "책"이나 이에 준하는 물건을 열쇠로 쓰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하고 생각합니다.
함장  
문>무. 그런 느낌도 있군요.
타이커습니다  
~~본격 비급 만능주의(?)~~
양양  
현실에선 황금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니 무협은 비급만능주의일 수 있겠군요.
함장  
갈등의 중심이 어떤 '정보' 그 자체라는 점에서, 이런 것도 의외로 상당히 현대적인 전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양양  
그럴 수도 있겠군요. 생각해보면 보물섬에서 나오는 보물지도와 같은게 비급일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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