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분나쁜 것에 대해 감성적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나쁘다면

Nullify 8 1721
내가 확실히 상처입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이유를 제기한다면 마음껏 비하하고 모욕하는 건 괜찮을까요?

첫눈에는 당연히 아니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는 비판과 비난의 경계를 정의하는 것에서조차 쩔쩔매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사실상 타인이 "뭘 잘못했는지" 이성적으로 구구절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아무리 상대에게 상처가 된들 자신은 그저 비판할 뿐이라고 믿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이건 보는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제로 감정적으로 나가다가 비극이 탄생하는 일이 많다 보니 대개의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만 대응하면 그 명분이나 과정이 어찌되었건 정당하다고 믿어버리기가 대단히 쉽습니다.

어쨌든 첫째 줄의 질문에 대해서 계속하자면, 평소때야 우리는 비하와 모욕의 의미를 잘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거부감을 드러내겠지만, 내가 남을 갖가지 이유를 들어 "비판"할 때 이게 상처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상대를 비판할 당위성을 가진다고 믿게 되며 그 이유에 따라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기까지는 다른 건 일절 신경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이야 뭐라 생각하던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목적이 순수히 남의 문제를 수정한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무슨 감정이 일어나건 그걸 따지는 건 애초에 목적이 아니니 눈길을 주지 않는대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 일단은요. 왜냐하면 그 말의 강도가 얼마든, 공격성을 얼마나 띄고 있든 간에, 자신의 눈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 비판" 그 이상이하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타인에 의해 부정당하거나 하는 계기가 있지 않은 한 자기가 결의한 일에 스스로 태클을 거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재고하는 일이야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일은 일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뒤에 벌어집니다. 쉽게 말해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거지요.

그럴듯한지 아닌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맞기겠습니다만, 전 명분이나 이유에 상관없이 이걸 반박할 괜찮은 수단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자신이 상대방에게 똑같은 수준의 "비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됩니다. 자신이 남에게 수정을 가하려 할 때만큼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정할 여지가 생기겠지만, 저 혼자의 경험으로만 이야기하자면 그런 이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 신고

Author

Lv.1 黑魄  2
653 (65.3%)

응?

8 Comments
Loodiny  
공감합니다. 옳고 그른 건 옳고 그른 거고,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건데, 어째 '옳은 지적을 했는데 왜 기분 나빠하냐. 그건 잘못된 거야' 라는 관점이 도처에 퍼져 있죠.
히츠가야 토시로  
좋은 비판 감사드립니다. 잠이 확 깨었네요. 잘 읽고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박정달씨  
가끔 이런 정당한 의견에도 "그럼 귀막고 눈감고 살겠다는 거냐"라는 생각부터 드는걸 보면 저도 꼰대라인을 잘 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반대쪽에서는 정말로 귀막고 눈가린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상처만 부각해서 저러는걸 하도 봐서 좀 아리까리하네요.

소통이란 쌍방의 문제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잘못을 고치고 같이 일해야하는 사람에게 아무말도 안하는건 좀 그렇구요.

예를 들면 이런겁니다. 조별과제를 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조사해오기로 한 조원이 계속 미룹니다. 집에 제사가 있다느니 어쩌니하면서요. 그리고 발표날짜가 임박했음에도 해오지를 않습니다. 알고보니 미룬 이유들도 다 거짓말이었고, 조장은 머리가 화 끝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도 욕은 안할라고 목소리 높여가면서 "과제 하실 생각은 있으신겁니까?" 정도로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조원은 목소리를 높인 것만 가지고 조장의 뒷담화를 깝니다. 대충 조별과제에서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케이스입니다.

솔직한 꼰대마인드로 말하면 남한테 상처를 주니마니 판단하는 것 보다 일의 진행도를 올리는 일이 더 중요한 경우는 허다하다고 봅니다. 오지랖떠는 부분에서야 글쓴분 말씀이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무언가를 진행해야 할때 목소리조차 높이지않고 사람을 유도해내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리더라는걸 타고난 사람이 아닌이상에야 남의 위에 올라서면 어떤방향으로든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죠. 소위 중간관리직이 되버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런글이 그닥 설득력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하는 지적질은 대부분 오지랖이므로 이글이 주장하는 바가 맞다고 봅니다. 요즘 한창화재가 되는 여초사이트에서 써먹기 좋은 논리군요.
Nullify  
설령 제가 하는 말이 맞다고 해도 진지하게 따를 사람이 많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습니다. 뭣보다 비판이란 거 자체는 기분은 나쁜데 없어서는 안될, 한마디로 골치아픈 존재고, 이에 따라 남을 정당하게 비판한다는 의식 자체는 허구헌날 많은 사람들이 품는 의외로 유서깊은 정신이라 사실상 인격적 결함 때문이라기보단 현실적인 한계에 가깝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걸 극복하는 방식이 그냥 닥치고 남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주변의 시선따위 아무 생각 안 들 정도로 면갑을 두껍게 하는 게 대부분이고 (뭐 "나는 정당하고 넌 알게뭐야"로 대표되는 나이트 템플러 정신이랄까요) 그게 옳은 길이라고 믿는 난폭한 이들이 많다는 거지요.
박정달씨  
반대로 저는 "아몰랑 상처준 너희가 나쁘단말이야"하고 비브라늄가죽을 가지고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듣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그러다 험악한 분위기 연출하면 투덜대면서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았구요.

사람들이 새디스트라서 난폭해진다는건 굉장히 잘못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Nullify  
극과 극은 통한다고, 방향만 다를 뿐이지 똑같이 말귀가 안 통하는 경우네요. 그렇다면 어딜가나 말 못알아먹는다는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할 겁니다. 본문 막줄에도 언급했지만 자기가 남에게 따지는 잘못을 똑같이 인지한다면 문제삼을 사람은 적습니다. 저는 비판"하는" 사람들을 다뤘는데 "받는"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니 좀 난감하군요.

그리고 밑의 코멘트는...난폭까진 아니더라도 과격하다는 말까지는 다 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실제로 그 과격함에서 오는 효과 자체를 노리는 경우도 있고, 뭣보다 진짜로 면갑을 충실히 깐 사람이라면 자기가 난폭하든 과격하든 신경을 안 쓰겠죠. 애초에 두번째 문단이 그런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카멜  
이성적으론 그렇지만 마음으론 아닌 사람 많겠죠.

이 말을 피해자? 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사람이 했다면 이건 대인배. 가해자가 했으면 무진장 뻔뻔한 놈이죠 뭐(...)
시몬바즈  
글쎄요...상황에 따라 다를지도?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