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를 읽을 때 가장 신기한 점 ⑦ - 정보획득 루트 편
오래간만에 재개하는 양판소의 신기입니다. 이번에 한번 다뤄볼 주제는 양판소에서의 정보획득입니다.
D&D 같은 경우는 주인공들이 정보획득을 위해서 보통 주점이나 상점 등, 민간차원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수집하는게 첫번째 단계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당 정보수집도시와 가까운 지역의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주를 이룹니다. 몬스터가 아니라면 지형이나 최근 마을에서 이슈가 된 사건들(ex: 요즘 비행선이 자주 떠다녀서 사람들이 불안하다)이 화제가 됩니다.
여기에서 모험을 하다보면 각 지역의 지배자들을 만나면서 얻는 정보도 있습니다. 지배자들은 보다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민간에 비해 많으므로 주인공들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은 이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정보비를 지불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부탁(퀘스트)를 수행합니다. 디아블로, 아이스윈드데일, 스카이림과 같은 게임을 떠올리면 대략적으로 얼추 맞는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SF와 고전 판타지에서도 통용되는 사실입니다. "양깽소"(양키가 깽판치는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는 에드가 버로우스("타잔"의 작가)의 작품, "화성의 공주"는 미국인 존 카터가 화성으로 넘어간 다음에 펼쳐지는 깽판물인데 여기에서도 최초로 정보를 얻는 루트를 외계인들과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이 정보의 질 역시 그 접촉한 외계인의 지위(화성에서의 지위)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집니다.
헌데 뭐랄까... 양판소는 그런걸 신경 안 쓰니까 양판소인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 제가 적은 저 화성의 공주도 제가 처음 이글루스의 모 님이 강력하게 홍보하시는 걸 보고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 가서 행사기간에 구입해서 본 거였는데 내용이 고전(?) 양판소의 느낌이 나서(현실에서는 남북전쟁에 참가하고 있던 평범한 군인이지만 화성에서는 엘리트이며, 공주를 위기에서 구해준 영웅이되고 화성의 분쟁을 종식시키는 대영웅) "아무리 장르소설의 대국인 미국이지만 100년전에는 양판퀄리티네"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양판은 정보를 얻는 방법이 정말로 LTE급입니다. 정보길드에 요청하면 알아서 정보가 기어들어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돈만 지불하면 사실 얻지 못할 정보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유료 라이코스네요.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겁니다. 어떤 양판에서는 귀족가의 저택 설계도까지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장 여러분이 이건희, 정몽준 등이 살고 있는 저택의 설계도를 손에 넣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못해요(...). 만약 고려시대로 넘어간다손 치면 권문세족의 저택 설계도를 유랑자가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을 겁니다. 이거... 가능합니까?
게다가 정보길드는 지점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건 용병길드와 비슷한데 정보가 서로 교환가능하며, 각 지점은 타 지역의 지점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파악도 가능합니다. 가령 주인공이 적대적인 귀족의 약점을 찾고자 몰래 가택수색을 계획하고 있다치면 정보길드에 찾아가 정보를 요청할 겁니다. 정보를 요구하니 "이 정보는 가격이 XX골드이고, OO일 정도가 걸릴 것 같습니다"라는 상당히 놀라운 수준의 정보판별기간까지 알려줍니다. 이게 휴리스틱 분석이 대단한 게 아니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과 그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위해 해당 의뢰를 받은 지점이 가진 역량을 동원했을 때와 타 지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종류와 그 양을 가늠할 수 있을때나 가능한 답변일 겁니다. 솔직히 CIA도 이렇겐 못할겁니다(...). 아니, CIA가 아니라 그 유명한 먼치킨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도 정보를 이렇게 쉽게 얻진 못했습니다. 어디 정보길드원이 제임스 본드고, 본드걸이 그 귀족집 딸내미라서 잘 후려가지고 얻을 수 있다면 모를까(...). 아니 것보다 이런 수준의 정보력이면 그냥 그 귀족의 약점을 팔면 안 되나(...).
이쯤되면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제레처럼 사실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고 조율하는 흑막입니다. 가히 프리메이슨의 현실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정보길드는 어쨌거나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간판까지 달고(!) 운영하는 민간단체라는 점입니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개방과 하오문은 그래도 그 정보력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ex: 마교장로의 정보는 윤곽까지는 알 수 있으나 마교 호법에 대한 정보는 윤곽조차도 알 수 없다) 이놈들은 얻지 못하는 정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냥 정보길드가 대륙통일하는 소설을 쓰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글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