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를 읽을 때 가장 신기한 점 ⑧ - 마법과 수학
이건 설정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판소의 신기"로 분류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있지만, 한번 재미삼아 화제로 삼아보려 합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의 양판은 마법을 수학과 자꾸 연결시키려고 하는 시도를 종종 합니다. 매우 특이할 정도에요. 말하자면 마법을 물리학화 하자는 겁니다. 고전 수학에서는 세상을 숫자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 왔는데,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건지 자꾸 마법을 물리학의 일종처럼 현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엄청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말이죠.
1. 판타지의 물리법칙이 현실과 다를 가능성
현실의 물리법칙과 판타지의 물리법칙은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수식과 증명만으로는 판타지 세계의 수학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말하자면 현실 세계의 수학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물리학과 마나가 존재함으로써 성립되는 판타지 세계의 물리학은 연관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따라서 수학을 이용한 마법체계는 사실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신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원리를 알 수 없는 마법이나 저주에 비해 설득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2. 과거의 마법은 비효율이 될 가능성
마법이 마치 수학과 물리학처럼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마법은 꾸준하게 발전됩니다. 수로써 의심할 나위없는 완벽한 증명이 가능하다는 건 완벽하게 계량화 시킬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게 발전함으로써 과거의 마법체계는 낡은 학문 내지는 기초학문에 불과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 시대의 마법은 피타고라스 법칙 같은 수준의 마법을 쓰게 되고, 중근세는 미분과 f=ma 수준의 마법을 쓰게 되며, 현실수준이면 엠씨스퀘어 수준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마법사라는 엘리트층이 쓸 수 있는 마법의 수준이 과거에는 엄청 낮고, 시대가 흐를수록 발전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상 무기가 과거에는 돌검이었다가 시간이 흘러 청동검을 쓰고, 더 시간이 흘러 철검, 총포로 발전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사실상 마법이 가지고 있는 신비성 자체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지요. 그냥 발전하는 학문인데요 뭘. 지금 우리 세계에서 물리학, 화학을 신비한 학문이라고 누가 생각합니까...
물론 판타지 세계에 수학이 존재함으로써 스팀펑크 세계관을 짜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세계조차도 "수로써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는 등의 표현이나 수학만능주의를 내세우거나 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편이 창작자나 컨텐츠 소비자 양측에게 모두 이로운 경우가 많을테니까요. 가끔은 현실적이지 않는게 판타지가 기본적으로 충실하고자 하는 "상상"을 자유롭게 둘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봐야 할껍니다. 어쩌면 수학을 내세우는 판타지 치고 양판 아닌 작품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할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