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양반은 교수 따원 안 한다네.

作家兩班 0 1593

 그저께 K모씨하고 대판 싸웠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내가 어쩌다가 K씨 같은 위인을 좋다고 띄워 주면서 근처에서 측근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가 다 후회가 될 정도로 K씨에게 제대로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막상 뜯어보니 아니었던 겁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그 K씨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던 거예요. 진짜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는 억울하고 또 괴로운 일을 당했는데, 네가 잘못한 거라면서 되도 않는 훈수나 두고 앉아 있고,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 되라 그랬더니 뭐 하는 짓이냐며 한심하다는 투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 대는 K씨와는 더 이상 상종도 하기 싫었습니다. K씨의 실상은 자기가 그 많은 저서를 통해서 떠들어 댄 바와는 정반대였던 거예요.

 일단 K씨가 쓰는 독방에서는 싸움을 피하고 상황을 잘 수습해서 나오긴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정말 앞으로 K씨하곤 교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자도 전화도 다 수신거부로 해 놓고 카톡도 차단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K씨가 직접 정성껏 사인까지 해서 준 K씨의 저서는 오늘 아침에 문자 그대로 발기발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습니다. 원래는 불에 태워 버리려 했는데 불이 안 붙더라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K씨가 만날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던 이야기가 이젠 진절머리가 납니다. 넌 꼭 공부 열심히 해서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해외에 유학 가서 박사과정 마치고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그거 말입니다. 기승전넌교수가되어야한다. 그래서 오늘 문자를 보냈습니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교수 따윈 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솔직히 말해서 K씨가 절 너무 과대평가한 거 맞습니다. K씨가 절 향해서 넌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계기는, 아마도 제가 K씨와 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약간씩 전공 관련 떡밥을 끼워넣은 이후인 것 같은데, 그 정도 이야기는 전공 수업 집중해서 들으면 도그나 카우나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K씨는 절 무슨 대단한 지식인인 줄 알고서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너는 꼭 학점 4.0 이상 유지하도록 공부 열심히 해서 교환학생 다녀오고 여기서 석사 마치고 해외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가지고 꼭 이 학교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진짜 만날 때마다 질리도록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슬슬 착각을 하기 시작한 거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던가?

 그런데 솔직히 생각을 해 보니까, K씨가 절 무슨 쿠로카미 메다카 같은 완벽초인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저는 그냥 히토요시 젠키치 같은, 아니 어쩌면 젠키치만도 못한 그저 평범한 청년일 뿐입니다. 다만 다른 청년들에게는 없는, K씨의 입맛에 맞는 그런 요소가 있다 보니까 K씨 눈에는 무슨 쿠로카미 메다카 같은 완벽초인인 줄 알았던 거죠. 교환학생 다녀오려면 스포츠도 잘 해야 하는데 너 운동 잘 하냐고도 물었습니다. 완전 찹쌀떡이 락 부르는 개소리죠. 전 체육 9등급도 맞아 본 사람이고, 애초에 운동 관련된 쪽으로는 뇌 발달이 미숙하다는 진단까지 받았고, 무릎 나가서 신검 4급 받음으로써 아예 스포츠 쪽과는 담을 쌓아도 제대로 쌓은 사람입니다. 무슨 대단한 천재도 아니라서 학점도 4.0은 개뿔 3점대 중후반이나 겨우 받는 정도입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라면 정말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그런 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무슨 쿠로카미 메다카급의 대단한 천재라서 편차치는 상식을 벗어난 90을 기록(일본 점수로 편차지 70이면 우리나라 백분위 97점입니다)하고 각종 상장과 트로피는 헤아릴 수 없다거나 이런 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K씨는 저에게 만나기만 하면 넌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닥달을 했습니다. 그러니 전 자연스럽게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석사과정에 진학한 다음 석사를 마치고 방산에 가서 3년 동안 근무하며 병역 이행+유학 자금 마련을 한 다음 기회를 봐서 해외 유학을 가거나 아니면 국내에서 박사를 마치고 해외에서 포닥을 거쳐서 교수 임용에 도전한다는 큰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다니는 대학에 있는 랩들은 제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공부할 만한 랩이 하나도 없습니다. 죄다 미생물 전공 아니면 동물 전공이고 식물 전공 랩은 전무합니다. 그나마도 규모가 작아서 진짜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랩이죠.

 단지 K씨가 그렇게 닥달을 하는 대로, 지금 다니는 대학의 교수가 되기 위해서, 별로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는 랩실에 들어가서 2년 날려 먹고, 유학 자금 하나 벌어 먹겠다고 3년 동안 어디 이상한 데 들어가서 블랙홀에 나오는 김청일 같은 악덕 사장 밑에서 갑질에 시달리며 방산 3년 마치고 나면 벌써 제 나이는 30입니다. 그러고는 기약 없는 해외 유학길에 올라서 어찌저찌 박사과정 마치고 돌아오면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인데 그 때 가서 자리가 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자리가 나더라도 또 거기에 제가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습니다. 물론 K씨가 말하는 걸 들어 보면 마치 자리가 거의 확실히 보장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 K씨가 학계 현실을 진짜 쥐뿔도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결심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교수 따원 하지 않겠다고 말이죠. K씨는 그 동안 저한테 약을 팔고 있었던 겁니다. 그 동안 K씨의 약장사에 넘어가서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런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으려고요. 게다가 교환학생이든 해외유학이든 우리 가정 형편에는 언감생심일 뿐입니다. K씨는 우리 가정이 무슨 쿠로카미 메다카의 가정마냥 세계 경제를 짊어진 거짓말 같은 갑부인 줄 알고서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상경하여 완전 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자수성가하신 분들로써, 진짜 교환학생이고 해외유학이고 지원해 줄 만한 형편이 전혀 안 됩니다.

 그냥 제가 관심과 열정을 다해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다른 대학의 식물 전공 랩실에 들어가 가지고 제가 좋아하는 식물 전공을 열심히 해서 석, 박사 마치고 전문 연구원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병역은 방산에서 근무하는 대신 박사과정 3년으로 대체하려고요. 혹시 더 일찍 박사를 따면 포닥으로 채우고. 교수는 무슨 얼어뒤질 개뿔 같은 교수람. 전 교수가 될 만한 역량도 안 되고,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 그런데 K씨가 제대로 착각을 하고선 저한테 약을 팔고 있었던 거죠.

 아무튼 그래서 오늘부로 표리부동에 회색분자 그 자체인 K씨하고는 일체 상종하지 않기로 했으며, 교수 따원 안 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K씨가 개인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B단체는 K씨 같은 위인이 있을 곳이 아니니, 어서 빨리 B단체에서 K씨가 발을 뺐으면 합니다. 낮은 데로 내려가서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새빨간 타인을 정성들여 섬기라고 가르치기는커녕, 공부 열심히 해서 빵빵한 스펙을 쌓아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오르라고 가르치는 K씨가 B단체 이사직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에요. 이번 일요일엔 B단체 이사장님 찾아가서 K씨는 B단체의 노선과 맞지 않다고 일러 바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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