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오만하다고 까내리려면 스스로도 오만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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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자기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남들 앞에서 고개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 오만하다느니 거만하다느니 합니다만, 실상은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이 대개 더 쓸데없이 자존심 높고 남을 깔아보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사회과학적인 거창한 이론이 있는 건 아니고, 거만함(arrogance)의 언어적 정의만 가지고도 내릴 수 있습니다. 


도 여기서 잘난체라는 말을 쓰려면 보통 대상에게 실질적으로 우월한 게 없다는 전제를 깔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잘났다"는 게 맞는 거라서 그걸 인정하면 되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거만하다는 표현 자체도 마이너스 워드지만) 실질적으로 이 말을 하는 이는 그 대상이 잘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확실히 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단순히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흔히들 오만하다고 까이는 사람들을 보면 주 이유는 "아는 척하는 게 보기 괴롭다"던가 이런 식인데, 그 사람들의 지식 수준을 자기가 직접 상대해봐서 파악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입에서도 곧잘 나오는 말입니다. 그냥 기분나쁘니까. 혹은 재수가 없으니까. 결국 정말 지식수준이 딸린다거나 책 읽은 권수가 딸린다거나 짬밥이 덜하다던가 이런 식의 그나마 "이성적인" 척도가 아니라 그냥 자기 감정에 휘둘리면 그만인 외적 인상이 기준이 되더라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말미에 다시 적겠지만 책 읽은 권수가 딸리거나 지식수준이 딸리더라도 그걸 강조하지 않는 건 인격자를 자처하려면 가져야 할 기본소양입니다.)

이걸 한 마디로 줄이면 "나보다 낮게 보이면 깔본다."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남에게 거만하다는 코멘트를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저걸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은 충분히 영리해서, 아무도 "나는 지고의 영역에 있으니까 네놈따위 깔봐도 상관없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저기 트롤링하는게 취미가 아닌 이상 이렇게 하면 비웃음당한다는 걸 알긴 알거든요. "너는 이러이러해서 못났는데 잘났음을 자처하니까 너는 까여야 마땅하다. 그게 너의 오만함이다."식인 말이 자주 쓰이죠.

하지만 이건 벌레먹은 사과를 흙묻은 사과로 대체한 정도의 변화입니다. 애초에 "내가 내려다보는 남의 수준"을 정하는 데 앞서 적었듯이 딱히 절대적인 기준같은 건 없고, 그냥 낮춰보면 그만인 일인데 마치 절대적으로 남이 열등한 것인마냥 코멘트하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결국 최후에 남는 건 내가 다른 누군가에 위에 올라서서 업신여긴다는 것이죠. 그야말로 위에 적었던 사전적 정의와 거의 일치합니다. 

정말로 자신이 인격적으로 우수하다면 자기를 높이긴 할지언정 남과 대놓고 비교하거나 아예 남을 깔아보는 행동을 경계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남의 면전이든 배후든 갖다 대고 "오만함"을 논할 때부터 이미 인격의 일부분을 필연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말 자체에 이미 상대의 내실이 열등하다는 전제가 어떤 형태로든 깔려있다는 이야깁니다. 

실제로 콧대높은 사람을 혼내주는 걸 자부심으로 삼는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치만 결국 자만심에 찌든 건 자기가 혐오하는 대상과 다를 바 없어지지요.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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