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黑魄 1 1609

사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저도 과거의 기억을 약간의 미화와 함께 짜깁기하고 있긴 하지만...

 

넷상 혹은 그 비슷한 환경에서 예의라는 키워드가 튀어나왔을 때 그 예의라는 물건이 자신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경우를 본 적이 많이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상대가 예절 운운하는 상황에서 자기가 비난한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점을 지적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는, 일반상식으로 보면 벙찌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이 놀라웠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별 문제가 없어요. 똑같이 더럽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어차피 사소한 걸로도 열 뻗치면 얼마든지 X망나니가 될 수 있는 게 사람이라 그러려니 할 수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라는 부분이 참 미묘하더라 이 말입니다. 의외로 흔해빠진 케이스인데 저같은 경우는 아무리 겪어도 그 모순성에 적응을 못 하겠더군요.

 

"너는 지켜야 하지만 내가 어기는 건 상관없음" 식의 단순무식한 억지지만 여기에 대항할 수단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애초에 그 억지를 시정하면 꼼짝없이 자기 약점을 드러내놓는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상당히 많은데 이 지경까지 가서 말로 해결되는 상황을 바라는 게 무리일 겁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자존심이든지 뭐든지 때문에 평범하게 다들 이중잣대 부리고 그러다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흔한 스토리긴 한데...

 

그럼 대체 그 예절의 실체가 뭐인지 참 궁금했던 적이 있지요. 사실은 그냥 서로 "이 정도 당연한 예절은 기대해도 될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그 기대가 배신당하니까 기분이 안좋아져서 마음에 없는 소리를 막 하는, 그러니까 "이 녀석도 사실은 기분이 안 좋을 뿐이야"라고 이해하려고 해본 적도 있어요. 그 편이 조금 더 훈훈(...)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거기까지 보면 남에게 기대하는 대로 자신이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느냐는 면에서 또 어이없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제 스스로 가장 신빙성있다고 생각하는 가설은 그냥 남을 매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예의"일 뿐이고 이 예의는 쌍방이 지켜야 될 도리가 아닌 그냥 핑계이자 폄하의 수단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뭔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상대에게 품은 감정과 상대에 대한 외적인상에 좌지우지되는 엿가락 같은 것이기에 형평성 그딴 거 없는, 예절이 아닌 다른 뭔가로서 봐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보통 도리를 어겼을 때 드는 양심의 가책같은 것도 없다는 게 설명됩니다. 어쨌든 자신이 그 대상에서 이미 제외되어 있는데 영향이 있다면 그게 이상하겠죠. 애초에 양심이 있다면 저런 불합리한 짓 대신 이 과정에서 자기가 어긴 게 뭔가 재고해보는 행동이 당연히 앞에 올테니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고요.

그런데 그럼 그 태생적인 불합리함이나 이걸 알아도 딱히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점은 그렇다 치고, 이런 인간들 중에는 정말로 예절에 철저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소한 것까지 조목조목 짚어대서 얼핏 보면 그야말로 "자기가 예의범절에 철저해서 그걸 어긴 남을 합당하게 깎아내리는 마냥" 보이게 하는 부류도 있기 마련인데, 속을 까보면 진정한 예절과는 하등 상관도 없는 뻘소리인데도 마치 정말로 도리이자 예절에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은 받는 건 대체 뭣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암울하단 말입니다 (알면서도 사기당하는 사람 심정이 이런 걸까요). 

 

게다가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저렇게 결론내고 인정해버리면 저도 남에게 예절이니 뭐니 지적할 일이 없었던 건 아닌지라 꼰대질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남을 폄하하는 일을 함부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 되는 거기도 하고요. 아무리 정말로 저도 제 행동을 늘 반성하고 재고한다고 해봐야 이미 그 대상이 된 사람은 믿지도 않을거고, 제가 평소때 정말로 예의바른지에는 관심도 없을 테니 그냥 저도 제가 지탄하는 부류와 하등 다를 바 없게 비쳐질 텐데 뭐하러 이런 일 갖고 점잖은 척 하느냐는 거죠. 많이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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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黑魄  2
653 (65.3%)

응?

1 Comments
박정달씨  
어쩌면 자기에게도 엄격한 사람은 그렇게 남 지적할 일이 없거나, 아니면 당연한 것으로 넘겼거나 일 수도 있는거죠.
어쩌면 넷상에서 그런 사이트만 다니신 걸수도 있고...
어쩌면 예의라는게 어떤 그룹의 '룰'로서 기능하는 부분이 있는데 애초에 그 그룹과 본질적으로 맞지 않으셨던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예의팔아서 자기 체면차리는 인간은 가능한데로 무시하시면 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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