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요호 사건에 대해서 이런 자료도 있네요.

비잔뽕이부족합니다 2 2401
1875년 9월 21일에 일어난 운요호사건은 일본이 조선에 대해 무력 강압을 취할 수 있는 계제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발행위였다... 운요호 함장의 1차 보고서에 따르면...운요호는 초지진 포대와의 교전에서도 불리함을 면치 못하여 제2일에 아침부터 총력을 기울여 초지진 포대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하룻밤을 보낸뒤 제 3일에 영종도를 기습하고 노획물을 챙겨 나가사키로 귀항한것으로 밝혀져 있다... 1876년 1월에 강화도에 온 구로다 기요타카 사절단은 처음에는 포격사건에 대해 문책하려고 들었다... 강화도 조약 협상에서 조선측은 일본 측이 준비해온 안에 대해 최혜국 조관을 뺄것을 요구하고 나머지 12개 조관 중 9개 조관에 대한 자구 수정을 요구할 정도로 능동적으로 임하였다.(후략)

왜 대한제국의 역사를 폄하하는가-이태진,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전의 황제국

운요호 사건은 오히려 일본이  선빵쳤다가 이빨이 제대로 안박혀서 튄거에 가깝고(...)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강조하는등 전체적으로 여러모로 새로운 시각이던데, 어떻게 평하는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 신고

Author

Lv.6 기스카르  3
6,484 (32.3%)

언제나 웃으면서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잉여!....크킹이랑 유로파 좋아하고 시공이랑 시계도 가끔씩 합니다.

2 Comments
paro1923  
사건 자체는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 뒤 조선 및 대한제국 측의 후속 자구책이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되다 보니 좀 미묘한 평가를 받은 거라고 볼 수 있겠군요.
전위대  
강화도 조약 자체는 신헌이 자주적으로 나온 거 맞는데 운요호에겐 발린 게 맞는 걸로... 일단 좀 더 알아봐야겠군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