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를 읽을 때 가장 신기한 점 ③ - 귀족사회 편
지난번에 용병을 주제로 이야기 했을 때 용병사회의 이상하리만큼 높은 신뢰성에 대한 부분을 다뤘습니다. 얼마나 국가가 막장(...)이면 용병패가 신분증을 대신하는 사회로 묘사가 가능한지(...).
그래서 한번 양판소의 주요 지배계층인 이 "귀족"이란 놈들의 행태를 한번 볼까 합니다.
1. 근본없는 작위체제
분명 배경은 중세 유럽으로 보이는데 작위는 고대 중국사에서 접할 수 있는 오등작을 수여합니다. 서양식 오등작이 아니라 중국식 오등작이라는게 중요합니다.
벌써부터 뽕빨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컨셉인데, 여기에 한술 더 떠 작위를 수여하는 원칙이 대항해시대2 마냥 국왕의 퀘스트(!)를 수행하면 주는 걸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허...
중세 유럽의 작위체제는 신성로마제국이 성립되기 전, 국왕이 함부로 작위를 변경하는게 어려웠습니다. 이는 주군과 가신간의 종속관계를 "쌍무적 계약"으로 맺으면서 서로의 권한과 책임이 명백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 계약만 상호 충실히 이행하면 변경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껏해봐야 결혼으로 인한 작위 하락이 좀 작위의 변경에 영향을 줬지 무슨 대항해시대마냥 퀘스트 하나 처리하고 보상으로 막 뿌리는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2. 알 수 없는 행정체제
행정체제는 많은 시대를 거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행정도 따지고보면 당나라 시대의 삼성육부에서 많은 부분을 받아들였던 신라와 고려, 그리고 이것을 발전시킨 조선의 육조체제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본 따 왔습니다. 일본도 딱히 다를건 없어서 견당사를 통해 얻은 선진문물을 바탕으로 개편한 관료체제가 지금의 일본행정부 전체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양이라고 별로 다를 것이 없는게, 로마시대의 유산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살리카 법 등, 로마 이외의 관습과 결합한 통치체제가 나옵니다.
...헌데 양판에서는 이런 걸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냥 A공작에게 "재상하시오~" 혹은 "B남작을 백작으로 올리고 행정을 맡긴다"라든가, "집사 C를 총관에 임명한다" 등등 두리뭉실한 인사와 행정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고대 중국사를 살펴볼 때, 진(晉)나라의 문헌을 보면 "A를 상경, 중군원수에 봉한다"라고 하면 A라고 하는 인물은 "평시에는 재상직을 맡고, 전시에는 도원수를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진(秦)나라의 경우 "B를 좌서장에, C를 우서장에 명한다"라고 하면 시대에 따라 역할이 조금 다를 수 있으나 좌서장은 미국의 부통령과 국무부장관을 겸하는 위치고, 우서장은 국방부장관과 최고사령관을 겸하는 위치입니다. 이렇듯 고대시대에서조차 신분계급과는 별도로 역할을 위한 직책이 명확했는데 양판소에서는 이런게 없습니다. 그냥 작위를 주고 적당한 자리를 주면 땡~이라는 거지요.
...이런 모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사실 중세 유럽의 봉건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선거가 끝나고 나면 각종 낙하산으로 들어오는 높으신 분들에게 그냥 막 던저주는 것과 비슷합니다.~~고대부터 현대까지 고루고루 짬뽕~~
여기까지 살표보니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지난 2편에서 용병"길드"에서 발급하는 서류가 어째서 공신력이 그렇게 높을 수 있는지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무지 효율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효과적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관료제에 효율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최소한의 선이라는 건 있지 않겠습니까? 작위만 던저주고 제대로 된 역할을 주지 않은 채 매일매일 환락의 노예가 되기 딱 좋은 환경에서 국가와 영주를 믿느니 차라리 용병을 믿는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