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겸손하다는 사실에 교만해질 수 있을까요?
Null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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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5 22:38
얼핏 보면 옥시모론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타인의 오만한 행동을 보고 "아 난 저렇게 안 하니 난 저 사람보단 겸허하군"이라고 생각하고 그 타인을 까내리는 케이스는 은근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만이라는 건 남을 내리깔아본다는 점 자체에서 문제가 되는 거지, 누가 누굴 얼마나 낮추고 그럴 자격이 얼마나 되는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은 스스로를 "딱히 드높이지 않으니까" 남 앞에서 스스로를 내세워 보이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겸손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은데 애초에 그런 비교 자체가 남을 내려다보기 위한 포석이고, 따라서 거기서 겸손 운운하는 건 본질을 망각한 행위라는 거죠. 게다가 애초에 그런 인식 자체가 자의적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런 평을 내릴 당위성은 더더욱 줄어들죠.
자기가 남보다 잘났다고 믿는다면 남을 깔아보는 것 자체를 교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경우도 은근 많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겸손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원래부터 콧대가 높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남을 보고 얼마든지 거만하다느니 평가하면서 그 평가에 대한 책임은 안 지는 위험한 사태까지 가는 것을 보면 뭔가 섬뜩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