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를 읽을 때 가장 신기한 점 ④ - 종교(무협지) 편
오래간만에 재개하는 양판소의 신기를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그간은 판타지를 중점으로 다뤄봤는데 무협이라고 해서 헛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기실 양판소라고, 양산형 판타지 소설을 까고는 있지만 무협 역시 요지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양판소라고 해도 무협지 역시 포함하는 경우가 있는 경우도 흔해진 만큼 이번엔 무협소설에서 나오는 신기한 모습들을 한번 다뤄볼까 합니다. 이번에 다룰 주제는 제목과 같이 종교에 관한 부분입니다.
* 아래의 글은 종교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현실의 종교와는 무관하며 사회적 이슈와는 더더욱 무관합니다.
1. 무당파의 종교는 불교다?
무량수불은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부처입니다. 그것도 아미타불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길어지니까 요점만 짚자면 무량수불은 아미타불을 부르는 또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무당파의 도사들은 어째 아미타불만 찾습니다. "도호를 왼다"는 표현이 나오면 늘 무량수불을 찾습니다.
소림사에 속한 등장인물들은 말끝마다 "아미타불"을 외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연한 겁니다. 엑소시즘을 다루는 작품에서 신부님이 "God bless you"하는 것만큼 당연하지요. 하지만 한국 양산형 무협지에서 나오는 무당파의 인물들은 소림사 2중대라도 된 양 무량수불만 찾습니다.
...이거 뭐 교황이 미사를 보다가 "알라후 아크바르!"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고...
2. 정체를 알 수 없는 마교
대부분 무협지에 등장하는 거대세력은 삼등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흔히 정/사/마로 축약하여 부릅니다. 이 중에서 정파는 최소한의 명분을 내세우는 단체로 묘사되는 반면 사파와 마교는 그런 것 없이 사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럼 사파와 마교가 섞여도 이상하지 않은데 섞이지 않는 이유는 마교는 "단일문파"이며, 특수한 종교집단이라는 설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마교에서 종교와 관련된 행사는 커녕 무얼 믿는지조차 불명확하다는 사실입니다. 소림사에서 불단에 예를 올리는 장면이 있는 건 아니더라도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생각이나 전설적인 인물인 달마의 예를 들어 불교색이 충실한 반면에 이놈의 마교는 덩치만 큰 사파에 불과합니다. 이럴꺼라면 마"교"가 아니라 마"파"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요?
3. 배알도 없는 마교
마교가 정체불명인 것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마교가 스스로를 마교라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김용의 소오강호나 의천도룡기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의천도룡기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양산형 무협에서의 마교와 같은 위치에 있는데 중국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스스로를 "명교"나 "배화교"라고 부르는 반면, 소림을 비롯한 각파에서는 "마교"라고 부릅니다. 또한 소오강호에서도 동방불패가 이끄는 일월교가 비슷한 취급을 받는데 일월교도들은 스스로를 일월신교 내지는 신교라 부르고 오악검파는 일월마교 혹은 이를 줄여서 마교라고 부릅니다. 소오강호에서는 이 일월"신"교와 일월"마"교의 차이를 통해 주인공 영호충이 사건의 실마리를 알아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인식해도 마교라는 말은 멸칭입니다. 그리고 마교는 스스로를 마교라고 부르는게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인이 한국인을 보고 춍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인이 스스로를 춍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무협작품... 뭔가 좀 많이 이상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