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는 어떤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는가? - 김재규와 나세르

함장 7 12287

김재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사상이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간단한 도식으로는 풀이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습니다. 김재규의 이념은 일종의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혁명주의(나세르주의)'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김재규의 이념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도 있지만. 이집트 나세르를 모델로 하여 나세르주의에 영향을 받은 군사혁명주의도 있습니다. 이는 당시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민간사회와 정부가 지닌 한계 때문에, 사회적으로 선도적이며 질적으로 우수한 집단이던 군이 정치에 개입하여 사회개혁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김재규는 5.16이 혁명이라면 10.26도 혁명이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이처럼 단지 유신의 타도와 군사정권을 거친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김재규 자신이 주도하는 무력을 이용한 '적폐청산' 그리고 이를 '최종적으로' 민정으로 이양하는 형식의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재규의 사상은 사실 그가 살해한 박정희의 초기 사상과 매우 유사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김재규가 과연 순순히 민정으로 이양하고 '정치인'이나 '야인'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독재자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점은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만. 그러나 그의 사고방식은 순수하게 '민주주의'라고 하기에는 군사혁명을 정당화하는 결점(민주주의적 관점에서)을 가진 사상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이것은 당시 어느 정도 '매력'이 있는 사상이기는 했으나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당시 제3세계 국가(이집트, 이라크, 인도네시아 등 신생국, 남미 여러나라)에서는 흔히 있는 것이었으며, 5.16 쿠데타 역시 이러한 사상적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 것이지요. 오랫동안 군의 정치개입이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자리잡은 나라로는 터키가 있고, 나세르주의의 원조 이집트는 현재도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나세르주의'의 영향을 받은 군사혁명에 대한 열광은 1950년대에는 상당히 크게 번졌습니다. 부패왕정을 타파하고, 대영제국을 몰아낸 나세르에 대한 열광은 당시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지 사례로서 4.19 혁명 시기 시민대표들이 경무대에서 면담을 할 때, 고려대 정치학과 학생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집트의 나세르"를 사례로 들며, 군사혁명주의적 제안(2년간 군정 이후 민정이양)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는 단지 '제안'에 그쳤습니다.

 

이승만은 이것이 "(군정은) 말도 안된다.","우리나라와 이집트는 상황이 다르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러나, 곧 우리나라도 5.16 쿠데타를 겪게 되고, 마치 이집트와 같은 장기군사정권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5.16으로 이것이 현실화 되었다는 점, 5.16 당초에는 이러한 군사혁명을 반기는 시각이 상당히 적지 않게 있었다는 점에서 군사혁명주의가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옹호 시민들은 군인들이 기존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정으로 이양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군사혁명주의는 한계가 있었는데, 군국주의적 비효율성을 극복하지 못하여 개혁을 내세운 군사정권들은 부패에 빠지게 되었고,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이러한 정권들을 '용납'하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는 문민적 통제를 갖추지 못한 군사정권들을 한단계 아래로 보고 '멸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들 내부적으로는 민족주의, 군국주의에 갇혀서 서로 배타적이었으며 국제적인 연대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식인이 아닌 군인들이 주도하는 정권의 한계로서 이러한 군사혁명주의를 명확하게 '이론화'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이후로 군사혁명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류가 되었고, 1980년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흔적도 없이 소멸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군사정권은 그들이 타파하려 했던 구체제 이상으로 부패-무능을 겪게 되었고, 폭압정권으로 전락했습니다.

 

현대에는 여기에 군사혁명주의가 이론적 근거로 삼았던 군의 민간사회에 대한 우위성이, 민간사회의 지적발전과 기업, 시민단체 등 비군사조직의 외부조직의 발전으로 상실하게 되었다는 배경도 있습니다. 군대는 어지간한 제3세계에서도 민간시민사회에 대해서 '실력'면에서 우위성을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집트의 엘시시, 시리아의 아사드(세습계승자이며, 본인은 군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방계'지도자입니다만) 정도만 여기에 부합하는 정치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나세르적인 군사혁명주의는 더 이상 우리 세대에는 익숙한 사상이 아닙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터키군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러한 군사혁명주의의 원조격인 '케말리즘'이 무너지기도 했지요.

 

김재규의 행동은 오늘날의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매우 낯설고, 현재는 잊어버린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가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10.26에서 그의 행동과 사고를 이해하려면 이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최종변론발언으로 본다면, 그는 아마 민주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였을 것입니다.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미래의 희망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실현된 세상에서 "살았던 인간"은 아닙니다. 그는 군사혁명주의와 군국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분명 군사혁명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를 근거로 자신의 10.26 사건을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에 익숙하고 쿠데타와 군사정부의 부정적인 측면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김재규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김재규 재평가를 보고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네이버밴드에 공유 신고
7 Comments
그런데 그가 그의 이상을 져버린 박정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1026때 그의 행동은 계획적이라 보기엔 허술하고, 우발적이라 하기엔 조금 애매해서...
그리고 다른곳에 퍼가도 되겠나요?
함장  
괜찮습니다
함장  
제 생각에는 아마 유사한 사상을 내세워 5.16 쿠데타를 저지른
박정희에게 '동지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아마 김재규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숙청'이라는 씁쓸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장흥  
김재규장군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장준하선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장준하선생은 시민항쟁으로 쫓아낸 이승만과는 달리 박정희를 몰아내는데는 시민항쟁과 군을 동원한 무력항쟁이 필수라고 했습니다.

김재규장군도 법정에서 박정희는 무력을 쓰지 않으면 하야시킬수 없는 사람이어서 할수없이 죽였다고 했는데 장준하선생의 평소 지론과 같습니다.  김재규장군은 민주정부를 원했고 또 자신도 군출신이기 때문에 10.26 이후에 자기가 집권하면 자기도 독재한다고 말하며자기자신도 경계했습니다.  장준하선생도 김재규장군도 나세르주의자는 아닙니다.
함장  
음 설득력 있네요. 장준하 선생님에 대한 점도 고려해야겠군요.
나세르주의자라면 역시 실각후 무언가의 추가조치가 있었어야 했지요.
현실은 자신의 수족이었던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본으로 가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군사혁명주의라는 사상안에서 김재규를 해석하려면 역시 저런부분이 걸린다고 봅니다.
김재규가 왜 그런 오판을 했는지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죠. 걔중에는 '박정희'만 죽이면 알아서 잘 해결될 꺼란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는 관점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 볼때는 김재규가 역으로 반 군사혁명주의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고 볼만한 부분도 많죠.

이런 부분은 5.16당시에 동조하지 않은 혐의로 감근된 대서도 드러납니다. 애초에 카미카제를 경험할뻔한 인물이고 군인의 본분에만 충실해야한다 생각한 이종찬 계열의 군인인 만큼, 김재규가 나세르주의자일 가능성은 더더욱 줄어듭니다.

박정희가 나세르주의자라는건 일리가 있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김재규를 중심으로 나세르주의를 전개하고 소개하시는건 지나친 무리수라고 봅니다. 어떠한 후속 계획도 없었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어떠한 계획이 없어도 잘 되겠지란 생각을 하는겁니다. 민주주의를 누리라는 진술을 남긴건, 군사정권 자체에 반대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없어진 사상이라고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기록과 진술과 역사에 의존하는 생물입니다.
전 함장님의 이 글이 굉장히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