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韓德銖, [[1907년]] [[2월 18일]] ~ [[2001년]] [[2월 21일]])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의 초대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 생애 ==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1927년]] 성악가가 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니혼 대학]] 중퇴후 노동운동에 참가했다. [[1934년]] 조선인 노동자의 파업을 이끌었다가 체포됐다. [[1945년]] [[10월 15일]]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에 참가해 총무부 담당 위원에 선출됐다. [[1955년]] [[5월 25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결성후 의장단 6명에 포함됐다. [[1958년]] 5월 제4회 전체대회에서 의장단이 해체되고 단일 의장, 부의장제가 도입되자 의장에 선출됐다.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있었다. [[196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됐다. [[1972년]]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당시 기준으로 서열 4위였다. == 같이 보기 == *[[서만술]] *[[허종만]] {{전임후임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서만술]] |대수 = |직책 = 초대 {{국기그림|PRK}}[[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임기 = [[1958년]] [[5월]] - [[2001년]] [[2월 21일]] }}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분류:재일 한국인]][[분류:최고인민회의 의장]][[분류:조선로동당]][[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