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광무'''(卓光茂)는 [[고려]]의 문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산 탁씨|광산]](光山). 자는 [[겸부(謙夫)]], 호는 [[경렴정(景濂亭)]],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높은 관직에 발탁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5권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역임하였다.[[『세종실록』]] 8년 병오(1426,선덕 1) 1월18일 == 생애 == 평장사 탁영(卓英)의 손자이며, [[집현전대제학(提學)]]을 지낸 [[탁문신(卓文信)]]의 아들이다. [[1331년]]([[고려]] [[충혜왕]] 1년)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였다.『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 [[1340년]]([[충혜왕]]) 문과에 급제하여 사의대부(司議大夫)가 되었다.朴龍雲, 『고려시대(高麗時代) 음서제(蔭敍制)와 과거제(科擧制) 연구(硏究)』, 一志社, 1990년 [[1365년]](공민왕 14) 내서사인(內書舍人)이 되었다. [[1366년]]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제수되었고, 뒤에 우사의대부로 임명되었다. 우사의대부로 있을 때 신돈의 심복인 [[홍영통]](洪永通)이 별군을 시켜 좌사의대부 (申德隣)과 헌납 박진록(朴晉祿) 등의 간관을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홍영통(洪永通)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가산을 적몰하도록 탄핵하였으나, 오히려 [[신돈]]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 뒤 사면되어 중정우사간대부 진현관제학 지제교(中正右司諫大夫進賢館提學知製敎)와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으며 문명이 높았다. 후에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와 광주(光州)에 은거하였다. [[이제현]](李齊賢)·[[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하였다. 겸부(謙夫) 탁광무(卓光茂)는 [[광주]](光州) 별장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흙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날마다 오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그 정자를 경렴(景濂)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이는 대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호의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취하여 그를 경앙(景仰)하고 사모하고자 한 것이다.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저서 == 저서로는 《경렴정집(景濂亭集)》이 있다. 권두에 경렴선생애연도(景濂先生愛蓮圖)·죽정선생탄금도(竹亭先生彈琴圖)·산도(山圖), 경서정미갑계도후(敬書丁未甲稧圖後) 2편, 경제탁씨가장(敬題卓氏家藏) 1편이 있고, 권1에 시 24수, 부록으로 원운(原韻) 31수, 권2는 고적(古蹟)·축문·선세묘갈문(先世墓碣文)·신도비명·상량문 각 1편, 봉안문 2편, 향사축문 1편이 있고, 권3·4는 탁신(卓愼)의 문집인 『죽정집(竹亭集)』으로 시 52수, 부록으로 제현(諸賢)들의 시 44수, 죽정고적(竹亭古蹟)·축문·정미갑계(丁未甲稧)·광산세고구서(光山世稿舊序) 각 1편, 권5는 탁중(卓中)의 문집인 『죽림정집(竹林亭集)』으로 시 24수, 광산탁씨세계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에 있다. == 상훈과 추모 == 시호는 문정(文正)이며, 성균관제학과 동지춘추관사에 추증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에 제향되었다. 안동에 사는 [[광산 탁씨]] 후손들이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안동 세덕사(世德祠)에 탁광무와 아들 [[탁신]]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 가족 관계 == * 할아버지 : 탁영(卓英) - 평장사 ** 아버지 : 탁문신(卓文信) - 집현전대제학 *** 동생 : 탁광손(卓光孫) ** 장인 : 박지연(朴之衍) *** 부인 : [[문의 박씨]](文義朴氏) 박지연(朴之衍)의 딸 **** 아들 : [[탁신]](卓愼) **** 사위 : [[양이시]](楊以時) == 각주 == {{각주}} [[분류:생몰년 미상]][[분류:14세기 사람]][[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광산 탁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