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정보 |이름 = 최영이 아가타 |출생일 = [[1818년]] |사망일 = [[1840년]] [[2월 1일]] |축일 = [[9월 20일]]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출생지 = [[서울]]http://newsaints.faithweb.com/martyrs/Korea1.htm |사망지 = [[서울]] [[당고개역|당고개]] |직업 = 순교자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상징 = |수호 = |매장지 = |성당 = |기도 = }} '''최영이'''(崔榮伊, [[1818년]] ~ [[1840년]] [[2월 1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바르바라'''(Barbara)이다. 그녀는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한국의 103위 성인]]에 속한 [[순교자]] [[최창흡 베드로]]와 [[손소벽 막달레나]] 부부의 딸이다. == 생애 == 최영이는 [[한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반]]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최영이는 남편과 함께 피신했지만, [[6월]]에 그녀의 친정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될 때,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감옥은 혼탁한 공기에 어둡고 음식도 부족했으므로, 유아가 지내기에는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 때문에 확고한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음을 염려하였으므로, 최영이는 아들을 밖의 한 친척에게 맡겼다. 포장은 그녀가 배교하고 동료 [[천주교]]인들과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종교]] 물품들의 주인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였다. 최영이는 배교치 않았고, 교우들과 알고 지내기에 자신은 너무 젊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녀는 2 차례의 [[주뢰형]]을 260 여대의 [[태형]]을 받았다. 그녀는 [[형조]]에서도 3 차례의 [[형벌]]과 [[고문]]을 견뎌내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한 편지에다가 이렇게 기록했다. {{인용문2|[[순교]]로 제 부모를 잃었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하지만, 제가 [[천국]]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위로가 되며 [[순교]]의 특권을 주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840년]] [[2월 1일]], 최영이는 [[한양]] 근교의 [[당고개역|당고개]]로 압송되어 [[이문우 요한]]과 [[홍영주 바오로]]와 함께 [[참수형]]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23세였다. 그 전날에는 최영이의 어머니가 처형 받아 순교하였는데, 모녀가 같이 순교하지 못한 까닭은 당시 [[조선]]의 [[형법]]에 따르면 친족을 같은 날에 처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시복 · 시성 == 최영이 바르바라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백과사전 인용 |url =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mtt_id=8 |제목 = 103위 성인 (百三位聖人) |백과사전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확인월일 = 2014-12-21 |인용문 = }}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뉴스 인용 | 제목 =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 url = http://www.pbc.co.kr/CMS/news/view_body.php?cid=520930&path=201407 | 출판사 = 평화방송 | 저자 = 이상도 | 날짜 = 2014-07-24 | 확인날짜 = 2014-12-21 }}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참고 문헌== *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3510&keyword=%C3%D6%BF%B5%C0%CC&gubun=01 가톨릭 사전: 최영이] * [http://english.cbck.or.kr/Saints103/345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03 Martryr Saints: 최영이 바르바라 Barbara Choe Yong-i] == 각주 == {{각주}} [[분류:1818년 태어남]][[분류:18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