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필요|날짜=2012-11-24}} '''최동희'''(崔東曦, [[1890년]] [[1월 4일]] ~ [[1927년]] [[1월 26일]])는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 운동가]]로 [[1926년]] [[고려혁명당]]을 세웠다. 본관은 [[경주 최씨|경주]]로 '''최소수'''라고도 불린다. [[천도교]]의 2대 교주인 [[최시형]]의 아들이다 이후 최제우가 아들이 없어서 의암 손병희가 해월의 아들인 최동희를 최제우의 후계자로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잔치를 열었다 [[서울]] [[종로 (서울)|종로]] 출생이며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 운동을 하다가 [[1922년]] 7월 [[천도교]] 중심인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해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김광희]], [[강도희]]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다. [[1926년]] [[중국]]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1927년]] [[상하이]]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했다. [[1990년]] [[건국훈장|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1890년 태어남]][[분류:1927년 죽음]][[분류:고려혁명당]][[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