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명'''(車相明, [[1895년]] [[8월 2일]] [[부산광역시]] ~ [[1945년]] [[4월 7일]])은 [[일제 강점기]]의 [[승려]]이다. 법명은 운호(雲湖). == 생애 == [[부산광역시|부산]] 출신으로 부산의 소속 승려였다. [[경성부]]에서 [[3·1 운동]]이 계획되던 [[1919년]] 2월 하순 경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한용운]]이 범어사에 내려와 만세시위에 대해 의논하고 돌아간 일이 있었다. [[3월 1일]]에 독립 선언과 [[탑골 공원]] 시위가 결행된 뒤, [[불교중앙학림]]의 학승 [[김상헌(1893년)|김상헌]]과 [[김법린]]이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범어사로 잠입하여 동래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종용했다. 이때 범어사의 청년 승려였던 차상명은 동래읍 장날인 [[3월 18일]]을 거사일로 계획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시위를 준비했다. [[3월 13일]]에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나 분위기는 고양되었고, 차상명은 [[3월 17일]]에 열린 졸업생 송별회를 틈타 범어사 부속 학교의 학생들에게 이튿날로 계획된 시위에 참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차상명은 약 4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새벽에 이동하던 중 밀고를 받고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30년대에 [[경상남도]] [[김해군]] 재직하다가, [[1936년]]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범어사 주지로 취임했다. 이듬해인 [[1397년]]에 [[중일 전쟁]]이 발발했다. 범어사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국위선양 무운장구 기원제라는 시국 행사를 개최하였고, 국방헌금과 위문금을 걷어 납부했다. [[1938년]] [[4월 1일]]까지의 집계에 따르면, 범어사 본·말사가 헌납한 국방헌금은 888원 50전, 위문금은 832원 14전으로 전국 31대본산 가운데 [[경기도]]의 [[용주사]] 다음으로 많았다. [[1990년]]에 3·1 운동 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받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도 선정되어 있다. == 상훈 == * [[건국훈장]] 애족장 - 1990년 서훈, 2010년 취소 == 같이 보기 == * [[범어사]]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임혜봉 |제목=친일 승려 108인 |날짜=2005-03-01 |출판사=청년사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72783848}} |장=차상명 : 3·1 운동 참여 후 친일로 변절한 범어사 주지 |페이지=245~247쪽 }} * {{독립유공자|7790|차상명}} [[분류:1895년 태어남]][[분류:194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승려]][[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