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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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FFFFF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 ||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5/Cha_Bum_Kun.jpg ||
||<-2><:> {{{#FFFFFF ''' 이름 ''' }}} ||<:> {{{#FFFFFF {{{+1 '''차범근'''}}}[br]'''車範根 | Cha Bum-kun'''}}} ||
||<-2><:> {{{#FFFFFF ''' 출생 ''' }}} ||<(> [[1953년]] [[5월 22일]] ([age(1953-05-22)]세) [br][[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시]] ||
||<-2><:> {{{#FFFFFF ''' 국적 ''' }}} ||<(> [[대한민국]]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png|width=28]]]] ||
||<-2><:> {{{#FFFFFF ''' 신체 ''' }}} ||<(> [[신장(신체)|키]] 179cm | [[체중]] 78kg[* [[대한축구협회]] 기록. [[http://www.kfa.or.kr/record/playeramatch.asp?Page=1&Query=Gender%3DM%26Name%3D%EC%B0%A8%EB%B2%94%EA%B7%BC|링크]]] ||
||<-2><:> {{{#FFFFFF ''' 직업 ''' }}} ||<(> 축구선수 ([[공격수]]-[[윙어]] / ^^은퇴^^)[br][[코치|축구감독]][br]해설위원 ||
||<|3><:> {{{#FFFFFF ''' 소속 ''' }}} ||<:> {{{#FFFFFF ''' 선수 ''' }}} ||<(> [[서울은행|서울 신탁은행]](1976)[br][[상주 상무|공군 축구단]] (1976~1979 / ^^군 복무^^)[br][[SV 다름슈타트 98|SV 다름슈타트]](1978~1979)[* 리그 1경기만 치루고 병역 문제로 계약 파기][br]'''[[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E. 프랑크푸르트]](1979~1983)'''[br]'''[[TSV 바이어 04 레버쿠젠|바이어 레버쿠젠]](1983~1989)''' ||
||<:> {{{#FFFFFF ''' 감독 ''' }}} ||<(> [[현대 호랑이]](1991~1994)[br][[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대표팀]](1997~1998)[br] [[선전 FC|선전 핑안]](1998~1999)[br]{{{-1 [[수원 삼성 블루윙즈]](2004~2010)}}} ||
||<:> {{{#FFFFFF ''' 기타 ''' }}} ||<(> [[문화방송|MBC]] (2001~2003, 2006 / ^^해설위원^^)[br][[SBS]] (2010~2014 / ^^해설위원^^)[br]{{{-2 [[2017년 FIFA U-20 월드컵|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2016~2017 / ^^부위원장^^)}}} ||
||<-2><:> {{{#FFFFFF ''' 국가대표 ''' }}} ||<(> 130경기 56골^^([[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 1972~198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골 기록[[http://www.kfa.or.kr/record/playeramatch.asp?Page=1&Query=Gender%3DM%26Name%3D%EC%B0%A8%EB%B2%94%EA%B7%BC|#]]. 축구 기록과 통계 를 수집하는 전문 사이트인 RSSSF는 121경기 55골로 기록했으나, 2014년 11월 4일 축협이 [[http://v.media.daum.net/v/20141104060308283|데이터베이스 조사를 통해 누락된 기록들을 포함]]하면서 136경기 58골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FIFA에서 A매치로 인정하지 않는 올림픽 축구 지역 예선 경기 6경기(2골)를 포함한 기록이기 때문에 130경기가 맞다.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20&aid=0003034799|이 기록은 또 한 번 정정될 가능성이 있다..]]] ||
||<-3><:> '''정보 더 보기'''[br]{{{#!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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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FFFFF ''' 학력 ''' }}} ||<(> 화산초등학교(1960~1966)[br][[경신중학교(서울)|경신중학교]](1966~1969)[br][[경신고등학교(서울)|경신고등학교]](1969~1972)[br][[고려대학교]](1972~1976) ||
||<-2><:> {{{#FFFFFF ''' 종교 ''' }}} ||<(> [[개신교]]^^([[장로회|예장통합]] / 충신교회)^^ ||
||<-2><:> {{{#FFFFFF ''' 애칭 ''' }}} ||<(> 차붐(Tscha Bum)[* 한때 "독일에서는 차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으며, 말해봤자 독일인들은 못 알아듣는다"라고 잘못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이 틀 바로 옆에 있는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에서 일하는 독일인 여성이 차범근을 보고서는 "차붐(Tscha Bum)"이라고 호칭한다. [[https://youtu.be/gStcPd2C9L4?t=453|영상(해당 부분)]]] ||
||<-2><:> {{{#FFFFFF ''' 가족 ''' }}} ||<(> {{{-1 배우자}}} 오은미[br]{{{-1 장녀}}} 차하나[br]{{{-1 장남}}} [[차두리]][br]{{{-1 차남}}} [[차세찌]][br]{{{-1 며느리}}} [[한채아]][* 셋째 차세찌와 결혼.]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5/Cha_Bum-Kun_in_2012_Olympics.jpg/220px-Cha_Bum-Kun_in_2012_Olympics.jpg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영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경기에서 해설자로 나온 차범근 (카디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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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개요 ==
'''대한민국과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대한민국 국가대표 최다 A매치 출전, 최다 득점자.][*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필리핀의 [[파울리노 알칸타라]]도 거론되지만 스페인 혼혈에다 스페인 국적으로 뛰었기 때문에 유럽 선수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단 커리어 자체는 축구 올타임 레전드 중 하나인 파울리노가 차범근보다도 위에 있다.]'''
'''[[분데스리가]] 역대 외국인 득점 9위[* 98골. [[https://www.transfermarkt.com/1-bundesliga/torgefaehrlichsteauslaender/wettbewerb/L1|#]]]'''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코치|감독]], 해설자, 행정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을 맡았다. [[차두리]]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대표팀]]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바이어 레버쿠젠]]의 레전드로서 [[1970년대]], [[1980년대]]의 [[분데스리가]]를 휩쓴 세계적인 선수였음에도 정작 모국 [[대한민국]]에선 추앙과 무시가 공존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이는 당시 열악했던 중계사정과 1986년 이전의 한국 축구 자료들이 유실되면서 그의 위상이 [[박지성]] 이후 유럽축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같은 신(神)급 선수들이 매경기 1골 수준의 골폭풍을 몰아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세대여서 상대적으로 차범근이 우스워보이는 탓도 있다고 할 수 있다.]
== 개인 신상 ==
[[본관]]은 연안(延安, 현재 [[황해도]] [[연안군]])이며, 집안에서 삼남(막내)으로 태어났다. [[가족]]은 배우자 오은미와 그 사이에 딸 1명(차하나)과 아들 2명([[차두리]], 차세찌)이 있다. 그 중 장남인 [[차두리]]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미네이터-- 돌격대장으로 활약했었다. 차남 차세찌가 2018년 배우 [[한채아]]와 결혼하여 배우 며느리를 맞이하게 됐다.
== 축구인 경력 ==
국가대표 136경기 출장, 58골 기록, 한국인 선수 최초의 센추리 클럽에 가입, 한국인 선수 중 역대 최다 A매치 출장 및 득점 기록,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24년 139일),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서 12년간 총 308경기 출장(외국인 선수 중 역대 3위), 98골(외국인 선수 중 역대 6위) 기록. 참고로 분데스리가 98골 중 [[페널티 킥]] 득점은 0골이다.[* 페널티 킥을 모두 실축했다는 것이 아니라, 페널티 킥을 아예 차지 않았다는 의미다. 고교 시절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서 프로선수가 된 이후론 한 번도 페널티 킥 키커로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에는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고 경기가 끝나고 중계 아나운서와 현장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 신문을 뒤져보니 1977년 4월 3일에 벌어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조 예선 최종전인 일본과의 2차전이다. 경기 종료 6분을 남기고 차범근이 페널티 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이겼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040400209208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04-04&officeId=00020&pageNo=8&printNo=17077&publishType=00020|기사]]] DFB-포칼이나 UEFA 컵 기록까지 포함하면 372경기 121골. 차범근은 인터뷰에서 멀티골은 20번이나 해 봤지만, "해트트릭은 한 번도 못해봤다."고 말했었다.[* 대신 [[손흥민|후배]][[구자철|들이]] 해트트릭을 성공하면서 그의 한을 풀어줬다.]
1976년, 아시아에서 큰 국제대회이던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박스컵]]에서 [[말레이시아]][* 과거 농구의 필리핀이 그러했듯이 이때의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의 축구 강호였다. 모든 과거의 강호가 그러하듯, [[높으신 분]]들이 망쳐놔서 지금은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이다.]를 상대로 7분 남기고 1:4로 뒤진 상황에 차범근이 혼자 세 골을 몰아치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무승부를 만드는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쉽지만 방송국도 그 경기의 테이프가 없다고 했고[* 당시에 비디오 테이프 가격이 비싸다고 재활용하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라 이런 식으로 방송자료가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인 [[여로]]도 1회분만 남아있을 지경이니 말 다한 셈이다.] 차범근도 두 골은 기억이 나지만, 나머지 한 골은 어떻게 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박스컵도 그렇지만, 이 시기의 국대 축구는 영상이나 문자 매체 등의 상당수가 유실된 상태라서 차범근의 육체적 전성기인 20대 초반의 활약상은 직접 본 사람 외엔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현역 시절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발생한 것이 바로 포지션 논란. [[중앙 공격수]]였는지 아니면 [[윙어]]였는지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http://sports.media.daum.net/sports/newsview?newsId=20100416094801682|차범근 본인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윙어]], [[분데스리가]]에서는 최전방 투톱으로 뛰었다고 한다. --최전방엔 [[최순호]]가 있었을 테니 아마 윙어로 뛰셨을듯-- 윙어로 뛰었던 경험 덕분에 클럽에서는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드리블과 측면 활용 능력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향했다.
||<#BDBDBD><:> ''' 전설이 된 현역 시절의 모습[* 사진은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시절이다. 눈여겨봐야 할 곳은 대퇴 사두가 아니라 대퇴 이두 부분이다. 보통은 운동선수라도 저렇게 대퇴 사두가 튀어나올 정도로 단련하기 힘든 부분이다.] ''' ||<#BDBDBD><:> ''' [[독일]]의 축구 잡지, [[키커#s-6|키커]](Kicker)의 표지 모델 위엄 ''' ||
||<#BDBDBD><:> '''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시절 ''' ||<#BDBDBD><:> ''' 인맥대장, 차붐(Tscha Bum)![* 맨 위 사진은 [[차범근호|1998 프랑스 월드컵]]을 생각하면서 보면 분위기가 좀 묘하다(...).][* 현역 시절 뢰브는 차범근의 백업 선수였다. 하지만 차범근은 그에게 잘 대해줬었고 때문에 뢰브는 지금까지 차범근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 ||
=== [[차범근/선수 경력|선수 경력]]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차범근의 선수 생활, rd1=차범근/선수 경력)]
=== [[차범근/지도자 경력|지도자 경력]] ===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차범근의 감독 생활, rd1=차범근/지도자 경력)]
=== 해설자 경력 ===
1998년의 실패 이후 K리그 감독으로 복귀하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중국 프로축구 선전 핑안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1년 6개월만인 1999년 12월 재계약이 불발되었고 이후로 국내외를 오가며 눈에 띄지 않는 야인 생활을 거듭했다. 하지만 차범근 축구교실만큼은 직접 챙기면서 유소년 육성에 대한 의지만큼은 뜨거웠는데, 2001년 초에 한 어린이 선수가 '''"우리들이 다치는 걸 걱정해 직접 얼음을 깨고 있는 저 분이 바로 전설적인 축구선수 차범근 감독님이다."'''라는 글을 [[Daum]]의 차범근 팬 카페에 올리면서 일부 축구팬들의 심금을 울린 적도 있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이 [[2000 시드니 올림픽]]과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차범근 감독에 대한 동정 여론이 많아지던 시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1998년 내려졌던 자격정지 5년에 대해 사면조치를 취하면서 차범근의 국내 활동이 자유로워졌고 신문선을 SBS에 빼앗긴 MBC가 2000년 12월부터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여담으로 이때 고려대 동기(72학번. 나이는 허구연이 2살 형이다.)인 [[허구연]]이 차범근을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해설가는 선수출신이 잘 보는 거라고.] 2001년 2월 2일 2억원에 MBC 해설위원으로 계약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해 5월 개막된 [[컨페더레이션스컵]]부터 본격적으로 해설을 맡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축구 해설은 여러 분석을 내놓는 [[신문선]]과 이를 재치 있는 입담으로 포장하는 송재익 콤비를 내세운 SBS가 대세였고 차범근 본인이 딱히 말을 잘하는 타입이 아니다보니 '''[[허정무]]를 해설위원으로 내세운 KBS에 오히려 시청률이 뒤지는 상황까지 있었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에 또박또박한 말투, 그리고 '''수십 년간 쌓였던 선수시절 내공 덕에 경기를 한 수 앞 먼저 읽는 해설'''로 차츰 호평이 많아졌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월드컵]] 본선 때는 오히려 SBS의 신문선-송재익 콤비를 누르고 MBC가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정타가 된 것이 2002년 5월 26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와의 평가전. 이 때도 SBS와 동시 중계로 해설을 했는데 당시 [[김남일]]의 태클로 [[지네딘 지단]]이 부상을 당한 뒤 허공으로 손을 돌리자 신문선은 판정불만에 대한 항의하는 거라고 했지만 차범근은 '''표정을 보고 지단이 부상으로 뛸 수 없다고 해설했으며''' 벤치에서 얼음찜질을 받고 알약 먹는 장면이 잡히자 신문선-송재익은 영양제를 먹으며 컨디션을 관리한다고 언급했지만 차범근은 '''"지금 진통제를 먹고 있네요."'''라는 언급을 했다. '''실제로 지단이 이 날 부상으로 인해 본선에서 제대로 뛰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범근의 해설은 저 멀리서 선수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매의 눈을 가진 예언자급 해설.''' 이후 신문선 해설위원의 삽질이 거듭되면서 시청자들도 MBC로 눈길을 돌리고 월드컵 기간 내내 MBC가 일방적인 1위를 달렸고 왕년의 시청률 제조기였던 신문선-송재익 콤비를 야심차게 영입한 SBS는 2위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때 이후 신문선은 다시는 메인스트림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한편 2002년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 감독인 [[루디 푈러]]와 소소하게 티격태격한 적도 있다. 차범근이 독일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을 중계하던 중 '오늘 독일은 지금까지의 경기 중 가장 나쁘고 준비도 덜 된 경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중계 멘트를 그대로 옮겨 적자면 '''"이런 경기는 한강 고수부지 가면 볼 수 있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루디 푈러는 '레버쿠젠에 있을 때 [[아세틸살리실산|아스피린]][* 레버쿠젠의 모기업인 바이엘이 바로 아스피린의 제조사이다.]을 너무 먹은 것 같다?'라고 맞디스를 했다. 말만 들으면 살벌한 [[독설]] 배틀 같지만, 차범근의 선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사적으로도 매우 친한 사이이다. 그냥 친한 친구끼리 틱틱거린 수준. 당시 독일의 국내 여론은 차범근보다 푈러에 대한 비판이 더 강했는데, 그만큼 당시 독일 팀의 경기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푈러와 차범근이 따로 만나서 화해는 했다고.
2003년까지도 계속해서 MBC 해설을 맡았으나 계약기간이 만료된데다 마침 [[수원 삼성]] 감독직 제의가 들어오면서 해설위원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월드컵]] 기간에 한해 [[문화방송|MBC]] 해설을 또 맡기로 이면합의가 되어 있었고 여기에 엔트리에서 탈락한 차두리까지 가세하면서 '''부자(父子) 해설위원'''이라는 진풍경으로 또 다시 MBC가 시청률 1위를 기록. 물론 '우승 경쟁 하는 마당에' 월드컵 해설하러 가신다고 서운해 하는 목소리가 그랑블루 안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을 정도인데 다른 팀 서포터들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나왔는지는 차범근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인지 모 스포츠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 '미안하다'고 답한 바 있다. 다만 후반기 앞두고 이관우와 백지훈을 영입해 반등에 성공, 준우승을 차지했기에 서포터즈의 우려와 달리 책임은 다했다.
2010년과 2014년 [[SBS]] 해설위원으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경기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경기를 해설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그의 인기는 여전했으나 브라질 월드컵에선 나이가 들어서 인지 순발력이 좀 느려지고 말을 버벅대는 부분이 많아지고 다른 방송사의 해설위원들이 선전하면서 그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 해설가가 아니라 방송인으로써도 달변가가 아니기 때문에 해설자로써 한계는 있다. 특히 순발력이 떨어져 머릿속에서 상황은 읽지만 말로 옮겨내지 못해 버퍼링이 걸리기도 한다. 이게 빠른 시간 내에 적당한 말로 옮겨지면 여지없이 명해설이 터지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도 많다. 또한, 특유의 사람 좋은 면 때문에 선수단에게 나쁜 말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하거나[* 옳던 그르건 자기 맘에 안 들면 히딩크부터 시작해 죄다 깠던 조광래와는 성격이 정반대다. 수원 감독시절 굉장히 사이 나쁜 서울에서 뛴, 아스날에서의 부진과 명백히 자신의 잘못인 군문제로 한창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런던 올림픽에서도 일본전 이전까지 계속 부진한 박주영 조차 최대한 감싸고 기운을 북돋아주려 했고, 월드컵 전부터 졸전을 거듭하던 대표 팀에 대해서도 해설이나 칼럼에서 비판하는 것은 자제했다.] 직접 해결책을 지시하지 않는 해설 스타일은[* 본인이 지도자로 오래 재임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게리 네빌이 해설자하며 벵거를 비롯한 감독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니 무리뉴가 현장의 축구는 화면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는 요지로 한 소리 했는데 같은 이치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해설까지 집중할 코어 시청자의 대부분은 공격적이며 직설적인 해설을 더 선호하나 한국에 말주변 좋고 직설적이면서 경기를 읽는 눈까지 갖춘 해설자는 없기 때문에[* 비선수 출신들은 잡다한 상식이 많고 말을 잘하나 경기 보는 눈이 떨어져서 해설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선수 출신들은 아는 건 많은데 말로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허정무나 이상윤처럼 아예 둘 다 안 되는 경우도 있고.--그러나 이젠 선출이면서 언변도 찰진 [[안정환]]이 있다!--] 호불호의 문제다.
축구 중계 시 카메라에 잡힌 축구계 유명 인사들을 잘 소개하지 못하기도 한다. 장지현, 한준희 등이 축구계 인사는 물론 때로는 정재계 인사들마저 귀신 같이 소개하는 반면 차범근은 잘 소개하지 못한다. [[요아힘 뢰프]]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버벅거리거나[* 사실 뢰브를 모를 리가 없다. 선수시절 뢰브는 차범근의 후보선수였기 때문이다.] [[올리버 비어호프]]가 카메라에 몇 차례나 잡혔음에도 캐스터와 함께 침묵을 지켰던 사례가 있다. 물론 축구해설자의 본분은 잡학 자랑이나 선수 프로필 읊어주는 게 아니라 경기를 풀어주는 것인만큼 큰 단점은 아니나[* 이런류의 최악의 해설이 [[이상윤(축구인)|이상윤]]. 선수 프로필 읽고 잡스러운 얘기는 많이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경기 해설을 못한다.] 어쨌든 중계 카메라가 이들을 잡아주는 건 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중계 특성상 '''멘트가 중간에 끊어지는 걸 시청자들은 매우 어색해하기 때문에''' 이 점이 축빠들에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전 [[미네이랑의 비극]]에서 전반에만 [[독일]]이 5:0으로 [[브라질]]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앞서나가자 '''[[차범근호|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셀프디스를 시전했다.[* 그러나 차범근보다는 브라질이 훨씬 더 참혹한 상황이었다. 차범근이 겪은 대패는 그래도 전반 40분 가까이 '''무실점'''이었다가 2골을 허용한 것이었다. --물론 [[김병지]] 덕을 많이 보긴 했다.-- 또한 브라질과 독일보다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실력차가 훨씬 더 컸다. 차범근이 잘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여론이 현실을 인정할 줄 몰랐다.]
독일 대표 팀의 중계를 맡으면 중립을 지키다가도 은연중에 독일 쪽으로 편파해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전 독일vs아르헨티나 경기 해설 중 연장전에 접어들자, 우스갯소리로 본인 스스로가 해설자로서 그러면 안 되는데 마음이 자꾸 독일 쪽으로 기운다고 인증한 적도 있다. 당시 옆에 있던 캐스터는 김성주.] 하지만 프로야구의 편파중계 정도의 완전하게 치우친 모습은 당연히 아니고 잘 들어봐야 알아차릴 그런 정도다.[* 독일이 골을 넣으면 목소리 톤이 미묘하게 다르다거나 상대방이 완벽한 찬스를 맞이했을 때 '위험해요!'라고 외친다던가.] 그랬다면 공중파 해설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차범근 본인의 독일에 대한 애정에 비하면 꽤 중립을 잘 지키는 편이라고 봐야 한다.[* 고국 축구협회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 차붐이 독일에서는 유명 인사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베켄바워라든가 마테우스, 클린스만, 뢰브 등...또 차붐은 한국 프로축구에서 뛴 적이 없어서 어느 클럽의 전설로 남진 못했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는 레전드로 대우해 준다. 거기다가 차붐은 독일어를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정도로 (말하기가 [[차두리]]만큼은 유창하게는 아니어도) 독일어 회화가 상당한 편이다.] 단, 독일이 브라질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가장 고전한 16강전 [[알제리]]와의 경기에서는 외질이 두 번째 골을 넣자 기쁨을 감추진 못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마친 후 [[SBS]]와 계약이 만료됐고, 재계약하지 않았다. 다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때 SBS의 객원 해설로 마이크를 잡은 적은 있다.[* 2018년 현재 SBS 의 해설위원은 '''[[박지성]]''' 에게 넘어갔다.]
=== 행정가 경력 ===
[[2016년]] [[4월]]에 [[2017년 FIFA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지금껏 축구인 생활을 하면서) 감투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는 감독이나 해설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로서 한국 축구에 기여하겠다."는 꿈을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413&aid=0000032653|#]]
=== 차범근 축구교실 ===
축구인 차범근 최대의 업적을 꼽는다면 '''차범근 유·소년 축구 교실'''로 대표되는 한국의 축구 유·소년 인재 발굴·육성의 토대를 잡은 것이다. 1990년 독일 생활을 마무리 하고 나서 국내에서 시작한 이 차범근 축구 교실은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서, 아니 대한민국 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학원 스포츠 밖에서 유·소년 양성을 시도한 최초의 사례이다. 오래 전부터 학원 축구의 폐해를 지적하고 유·소년 축구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많았으나, 이를 실천에 옮긴 이는 차범근이 처음이었다(그것도 '''사재를 털어가며'''). 2002년 월드컵을 성공리에 마치고 토토 수익금으로 자금력을 확보한 대한축구협회가 비로소 유·소년 육성 정책을 시작했고, 이들 2002 키즈가 바로 훗날 [[2012 런던 올림픽/축구|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 되었으니 차범근의 선구자적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차범근축구상]]'''을 제정해 이동국,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77&aid=0002544246|'''박지성''']], 기성용 등 축구 꿈나무를 지원하기도 했다.
유·소년 육성과 지도자 교육이라는 부분에, 유럽 축구를 먼저 경험한 차범근이 그 터를 닦았고 이는 한국 축구계의 크나큰 자산이 되었다.
=== 평가 ===
선수로서 유럽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점과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미적지근했다는 점은 제쳐두고서도, '''축구인'''으로서 한국 축구에 기여한 바는 실로 엄청나다.
차범근은 독일에서 은퇴한 후 체계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고 코치 자격증을 따 왔는데, 이는 당시 한국 축구계에서 몹시 희귀한 케이스였다. 물론 외국에서도 얼렁뚱땅 자격증만 따서 감독하는 야메들은 얼마든지 있다. 핵심은 제도권 '''스쿨'''을 거쳤느냐 하는 점이다. 차범근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라이선스를 따오면서 지도자가 되기 위한 '''선진적인 모델'''을 보여줬고, 차범근 이후 코치 방법을 몰라 외국 감독이 하는 걸 어깨 너머로 훔쳐 배우고, 그저 가오 잡기만 하던 기존의 지도 관행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업적은 공과가 크게 갈린다.
가장 먼저 지적할 부분은 세계 축구의 유행과 발전상에 뒤처졌다는 점이다. 차범근의 축구철학이 '''1970년대 분데스리가 스타일'''을 숭상하기 때문에, 감독을 맡았던 수원도 이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재임기간 동안 꼬박꼬박 트로피는 따줬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사실 이 시기 수원 팀 자체는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차범근 해임 이후 K리그의 빅5 추세를 본다면 [[세뇰 귀네슈|귀네슈]]-빙가다-[[최용수]]로 이어지는 '''북서천왕 [[FC 서울|서울]]''', [[김정남(축구인)|김정남]]-[[김호곤]]으로 이어지는 '''철퇴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최강희(축구인)|최강희]]가 구축한 '''닥공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세르지오 파리아스|파리아스]]-[[황선홍]]으로 이어지는 '''스틸타카 [[포항 스틸러스|포항]]'''은 모두 '''고유한 팀 컬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원은 '''[[뻥축구]]'''라는 조롱을 길게 받았다.[* 최용수 이후 FC 서울도 욕먹고 있기 때문에 수원은 유일한 구단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김호곤이 사퇴한 후 조민국-윤정환으로 이어지는 울산도 이제... 2016년 들어서 포항도 스틸타카 같은건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과거 [[김호]] 감독 시절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이 [[발레리 니폼니시]]의 [[제주 유나이티드|부천SK]]와 더불어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를 운용하며 포백 시스템과 존 디펜스 도입 등 선진축구로 팬들의 찬사를 샀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명백한 퇴보다.
또한 [[프런트]]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사주면 그만큼 성적을 내줬기 때문에 정작 팀의 근간이 되는 유스가 황폐화 되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그렇게 성적내면 좋은거 아닌가?~~. ~~짧게 성적 내고 축구 그만둘 생각이면 좋겠지~~ 서울과 포항 두 팀에서 유스 출신들이 하나 둘 주전을 꿰차며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고, 2012~13년 포항의 유스 출신 영건들이 패스축구로 수원을 털어버리며 '승점자판기'라 조롱하는 광경을 거듭 목격한 수원 팬들 입장에선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
때문에 'K리그 수원 감독 맡지 말고 유소년 축구만 몰입하셨더라면 두고두고 존경받으며 욕 먹을 일이 없으실텐데' 하고 탄식하는 축구 팬들이 많다. --차범근과 앙숙인 [[허정무]]도 감독이나 해설 말고 스카우트를 했으면 좋았을 거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프로팀, 대표팀 감독으로 상당히 앞서가는 면모를 보인 것도 있다.
* 첫째, '''국가대표팀에서 처음으로 4백 수비를 시도했다.''' 다만 이 부분은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차범근의 대표팀 감독 부임 이전에 이미 K리그에서는 김호와 니폼니시 감독을 선두로 4백이 점차 주류가 되가고 있었다. 차범근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4백을 도입한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럼에도 대표 팀에서 줄곧 3백을 썼던 이유는 '[[홍명보]]' 때문이다. 홍명보는 3백에 최적화된 선수로, 4백 시스템의 센터백으론 대단히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때문에 [[히딩크]]도 부임 초기 4백을 실험하다가 결국 3백으로 돌아갔으며, 결국 한국 국대에 4백이 정착된 건 홍명보가 은퇴한 이후이다.[* 과거 독일도 마찬가지였는데, '[[로타어 마테우스|마테우스]]'라는 걸출한 수비수 때문에 4백 전환이 굉장히 늦었다.]
* 둘째, '''일찌감치 체력 집중 트레이닝을 강조했다.'''
* 셋째, 선·후배 관계는 중요하지만 경기장에서는 형&선배 호칭을 빼라 했고, 기자회견 시간을 정해놓고 언론의 무차별 인터뷰를 차단하는 등 여러모로 서구형에 가까운 팀 운영을 보였다.
* 넷째, 대표팀 감독으로 지원파트를 중요시해서 '''비디오감독관'''을 포함한 대규모 지원스탭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잘 살펴보면 위의 4가지 모두 차범근 이전부터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감독들이 일찌감치 지적한 문제들이다. 다만 국내 축구인들이 한국 실정을 모르는 외국인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K리그 대우의 비츠케이나 올림픽 팀 [[아나톨리 비쇼베츠|비쇼베츠]]는 항상 피지컬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체력에서 기술과 정신력이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비디오감독관을 포함한 대규모 지원스탭도 모두 대한축구협회에서 예산낭비라는 이유로 거부해버렸다. 즉 비디오 감독관, 피지컬 트레이닝, 평등한 선·후배 관계 등 '''히딩크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던 요소들 대부분이 차범근이 먼저 이야기한 것'''이다. 다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 2002년 이전까지 한국 축구계가 그만큼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이야기다.
== 사건사고/논란 ==
=== 차범근 축구교실 [[비리]] 논란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7&aid=0000993461|차범근 축구교실의 비리에 대한 전 직원의 폭로로 논란이 생겼다.]]
2016년 7월 17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의 보도에 따르면 차범근 축구교실은 서울시로부터 한강 부지를 싼값에 임대하여 운영 중임에도 서울시에서 정한 기준보다 높은 수강료를 받아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으며, 적발 이후에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유소년 선수 후원용으로 무료로 제공받은 축구용품을 수강생들에게 유료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7월 19일 사단법인 차범근 축구교실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대호(담당변호사 박동균)는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 보도한 것이다. 제보자(노 코치)와 방송국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2739184|보도자료 전문을 올린 기사]]
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 직원은 '''공금횡령으로 인해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폭로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고 한다.
이후 여론은 '차범근이 그럴리 없다. 횡령하고 잘린 사람말을 믿을 수 없다' 쪽으로 흘러갔다. MBC에 대한 비난도 상당했다.
다른 언론사들이 제보자의 진술을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그냥 무시한걸 MBC 혼자 덥석 문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질 때 언론사들이 앗싸 월척이다 싶어서 관련소식을 우수수 보도한 것에 비해 이쪽은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걸로 봐서 허세맨한테 낚인 것이 아냐냐는 의견도 나왔다.
2016년 7월 기준 이명박 - 박근혜 정부에 휘둘리던 MBC가 친 민주당 - 친 문재인 성향의 차범근을 조사도 제대로 안하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방송을 만들어 망신주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 노 코치의 퇴직금 청구 소송 승소 ====
'''본인의 명예에 먹칠한 사건'''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21&aid=0003704043|법원 "차범근축구교실, 미지급 퇴직금 3300만원 줘야"]]
2018년 11월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박종택)는 차범근 축구교실 전 코치 노모씨가 축구교실과 차범근 등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노씨에게 33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또 축구교실 측이 노씨에 대해 "수강료 3억원을 횡령했다"며 제기한 맞소송에 대해선 "횡령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노씨가 차범근 가족이 소유한 건물 3곳의 관리를 맡은 것에 대한 보수 1억원을 청구한 것에 대해선 "월 30만원씩 상가관리비 명목으로 지급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여론과는 달리 차범근측은 퇴직금을 지급해야 했으며 노코치의 횡령도 인정되지 않아 횡령범으로 몰고 간것도 실패했다.
== 여담 ==
* 현역 때도 유명했지만, 차범근의 허벅지 둘레는 무려 '''31인치'''.[* 전성기 시절이 지난 지금은 조금 줄어들어서 '''27인치'''이다.] 웬만한 남자 허리둘레 수준으로 차범근의 엄청난 주력과 힘은 여기서 나왔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 축구계에서 역대급 피지컬을 자랑하는 [[차두리|아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국가대표 선수가 될 때까지도 '''어떤 신체능력으로도 차범근을 이길 수 없었다고 한다.'''[* 보통 운동선수의 신체 능력은 20대 초중반이 전성기인데, 현역 운동선수인 20대의 차두리가 40대인 아버지에게 뒤졌다는 충격적인 말이다. 게다가 차두리가 한국 국가대표 역사상 톱 클래스에 속하는 신체 스펙과 체력을 자랑하는 선수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심히 [[흠좀무]]스럽다. --도대체 뭔 괴물이신 거지--] 심지어 2014년에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4060|매일 2시간씩 러닝과 웨이트를 거르지 않고 소화 중]]이며, 한 번은 차두리가 같이 운동하다가 '''먼저 손들고 올라온 일이 있었다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twas0227&logNo=60059222676|현역 당시 그의 허벅지 모음]] 그야말로 [[말벅지|펄떡거리는 역동적이고 생생한 허벅지 근육]]을 볼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차범근은 2018년 기준으로 만 65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손자 손녀들 재롱 보며 환갑잔치할 연세인데 실로 후덜덜하지 않을 수 없다.
[[파일:NgSramnr.jpg]]
2014년 현재 허벅지 상태를 보면 차두리의 말이 진담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제는 차두리가 나보다 더 허벅지 굵음'이라고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차범근에게 물어 보세요'에 대한 대답으로 하신 바 있다.
* 여타 운동선수와는 달리 일찌감치 광고 출연이 많았다. 이미 독일 진출 전이었던 1970년대 후반 [[남양유업]]의 요구르트 광고에 나왔던 것을 비롯해, 1980년대에는 레버쿠젠의 모기업인 바이엘 제약의 광고에도 자주 나왔다. 2000년대 들어 SK텔링크 00700 CF에 고정 출연하며 김선아와 함께 포스를 뿜어내었다. 원래 파트너였던 [[싸이]]는 [[병역비리]]에 걸려서 하차. 명언은 "국제전화 비싼 줄 알았지? 아니야!!"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한창일 땐 [[신문선]]과 나란히 해설계의 거성으로 활동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직전에 수원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지네딘 지단]]이 교체되는 것을 보고 그가 부상당했다고 해설했는데, 그 말이 정확했다.][* 또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미하엘 발락]]이 결승골을 넣기 불과 몇 분 전에 "지금 상황은 절대로 조심해야 합니다. '''단 한 방으로 경기가 끝날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했을 정도.] [[2006 FIFA 월드컵 독일]] 때는 차두리도 같이 해설을 하면서 부자가 같이 해설을 하기도 했다. 이때 대한민국과 [[스위스]]의 조별 예선에서 스위스가 2번째 골을 넣자 차두리가 "이건 사기입니다."라고 말하자 차범근이 차두리를 노려보면서 입단속을 시킨 것이 밝혀져 잔잔한 웃음을 주기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 감독이라고 비난받을 무렵, 그를 지지한 몇 안 되는 축구인이기도 하다. 다만, 수원의 성적이 부진할 땐 감독 때려치우고 해설이나 하라고 욕을 먹었다.
*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차하나(1978년~). 그리고...
'''1970년대 후반 찍었던 공익광고. 그때는 삼천리금수강산 초만원 하던 시절이니...'''
그리고 아들 둘을 더 낳았다. --이것이 애국이다-- 장남 [[차두리]](1980년~), 차남 [[차세찌]](1985년~). 장녀는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막내아들은 해병대를 전역 후(2009년 입대. 병1103기로 1사단 7연대 3대대에 입대했으며 7연대 1대대 현관에도 차범근의 싸인볼이 있었다.) 형과 아버지와 함께 [[간때문이야]] 광고에 출연 중. 딸은 결혼해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이[* 태어났을 때, 뉴스 제목은 '차붐 할아버지 되다'였는데, 제목만 보고 상당수가 '차두리(당시 미혼)가 사고친 줄 알았다.'고 댓글을 남겼다.]가 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차범근으로선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차두리]]가 결혼할 때 기자회견에서 손자가 태어나면 자신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축구선수로 키워보고 싶다고 밝혔다. 자신이 바빠서 아들 두리를 제대로 봐주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고. 2010년 11월 29일 차범근의 소셜 네트워크에 내년 5월에 태어날 차두리의 둘째가 아들이라는 소식이 올라왔다. [[http://news.nate.com/view/20101129n18472?mid=s0404|링크]] 네티즌들이 예상하는 아이 이름은 차바인, 차쯔바(독일어로 2는 zwei(쯔바이)) 등등이었는데, 정작 한 달 늦은 6월 말에 태어난 둘째 아이의 실제 이름은 '차아일(Ail)'. 독일어가 아닌 [[웨일즈]]어로 '2'라는 뜻의 이름으로, 많은 네티즌들의 허를 찔렀다.[* 여자아이인 첫째의 이름은 '아인'이다. 독일어(Ein)로 1.] 어쨌거나 많은 이들은 벌써부터 "2030년 월드컵 국대 원톱"으로 단정짓는 중. 자녀 이름을 하나, 둘(두리), 셋(세찌)으로 짓는 비범함을 보였다.
* [[베타맥스]] [[VCR]]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LYHgiZf20|영상(51~55초 부분)]]을 보면 차범근이 화질이 정말 좋다는 것을 알리는 명대사("화질이 정말 깨끗하군요")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 [[여담]]으로, [[기자(직업)|기자]]~~기레기~~들과 악연이 많다. 1980년대 초반에는 ~~기레기~~ 기자들이 독일까지 가서 "양주를 내놓으라, 대접 잘해라." 이딴 무개념 쓰레기 짓거리를 해서 정나미가 떨어진 차범근은 문전박대를 해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한국에서 신문으로 "차범근 독일에서 무개념으로 군다." 이렇게 왜곡을 하는 기사를 써재꼈다. 이런 일로 아버지가 속상해하던 걸 보던 아들 차두리도 커서 ~~기레기~~기자들을 꺼리며 갈등이 많았다. (원래 차두리는 축구 전문 언론인을 꿈꾸었었다.) 덕분에 [[김병현]]을 옹호하다가 그런 기자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다.
* 동년배의 다른 스타들과 비교했을 때 참 자기 자랑이 없는 겸손한 사람이다. 인터뷰를 해도 옛날 얘기를 한두 문장 이상으로 이어서 하는 일이 없고, 해설할 때도 그 흔한 현역 시절 에피소드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이런 자기 자랑을 자제하는 것에는 아쉬운 측면도 있는데 당장 [[차범근/선수 경력|선수 경력]]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의 분데스리가 커리어에 대한 문서화 작업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에서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구술사도 전무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축구팬들이 그의 과거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축구팬들도 차붐, 차붐하고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유명했다더라 하는 정도만 알지, 어떤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어떤 선수인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니 젊은 축구팬들에게도 해외에 나가 있는 수많은 현역 축구선수들의 선조뻘로만 다가오지, 예컨대 [[박찬호]]나 [[박지성]]처럼 차범근을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통 이쯤 되면 야구의 [[선동열]] 같은 사례처럼 전성기 시절의 커리어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나올 법도 하지만, 잊을만 하면 무시무시한 에피소드들이 자랑할 의도도 없었는데 튀어 나오는 통에 다들 경악만 할 뿐이다. [[차두리|아들]]의 리그 활동에 관련한 행정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친구한테 추천서를 부탁했는데 그 친구란 분이 무려 '''[[프란츠 베켄바워]]'''였다. [[아르센 벵거]]가 차범근 쳐다보며 엄지손가락 치켜든다. [[무리뉴]]가 와서 악수하고 허리숙여 인사를 한다 [[프란츠 베켄바워]]를 걔라고 해도 주변 독일인들이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 프랑크푸르트 100년 역사의 레전드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루디 푈러와 서로 약 먹었냐며 시시덕거리는데, 아무도 이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특히 1970년대 독일의 선수 출신 축구인들이 전 세계의 주요 축구 지도자로 나선 이후,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 대회에 해설자로 한번 나갔다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과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사실관계 뿐이다. 대단한 과거가 있다고 짐작만 할 뿐, 디테일을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주전 수비수로 출전 중인 아들 차두리에 대해서 해설 중에는 말을 아꼈지만 경기 종료 뒤에는 '''우리 두리 잘하잖아~~'''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셨다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77&aid=0002392614|링크]]
또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자, [[K리그]] 구단들에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선수들을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감사 코멘트를 했다고 한다.
* 독실한 [[개신교]] [[장로회]] 신자이고[* [[이촌동]] 충신교회 [[집사#s-2|안수집사]]이다. 차범근의 신앙생활은 국내 개신교계 내에서는 워낙 유명한 사실.], 여러 번 자신의 신앙에 대해 간증을 했는데, 종교 문제 때문에 구설이 오른 적이 있다. 1997년 월드컵 예선 때 한국 국가대표팀이 골을 넣으면 기도를 드려 자주 카메라에 잡혔다. [[김용옥|도올 김용옥]]이 신문 기고로 이를 비판했고, 이후에 차범근도 반박 기고를 하여 키배가 벌어진 적이 있다. 그리고 부적을 사용하는 [[고정운]]을 잘 기용하지 않는 것도 이런 종교 문제 때문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원수라 할 수 있는 통일교 계열의 K리그 구단 [[천안 일화 천마]]가 [[성남 일화 천마|성남]]으로 연고를 옮기려 할때 성남 기독교계가 항의를 하자 차범근은 신문기고로 "축구와 종교는 상관없다."고 한 적이 있다.
* 2010년에 나온 차두리 로봇설과 관련하여, 차두리 로봇 설계도를 알려달라는 팬들의 장난스런 요청에 '''로보트...그거 일급비밀이야. 많이 알면 다친다고!!! 로보트 아빠는 상관없지만 로보트 엄마는 비밀로 부치고 싶어해. 이해해줘. 로보트 가족 중에는 엄마 힘이 젤 세다고!!!'''라고 답하며 '''축구 실력뿐 아니라 유머감각도 레전드급'''임을 과시했다. 그보다 며칠 전, 차두리가 로봇설에 대해 한 말을 보면 부자가 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듯하다.
* 감독직 사임 후, SBS에서 국가대표 축구 경기 해설자로 활동 중이며, 평가는 굉장히 좋다. 선수 출신답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기 내적인 내용들을 잘 짚어주며, 감정적인 애국 해설을 자제하고, 경기의 흐름과 풀어나갈 방향을 거론하는 방식. 보다 보면 후배이며, 제자들인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게 보인다. 2011년 2월 1일, [[박지성]]이 은퇴한 것에 대해, 축구 유망주들이 유년기에 훈련을 너무 많이 하는 관행을 고치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며 인터넷 상에 글을 올린 게 화제가 되었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9&aid=0002222125|기사]]
* 선수로서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 선수들 중 가장 명예로운 커리어를 보냈지만, 지도자로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대회 도중 경질된 사건과 그 이후 [[승부조작]] 드립을 쳤다가 5년간 자격정지 (이후 3년으로 하향)를 먹은 뒤 중국 리그를 전전했던 아픔이 있는 사람이다. 참고로 차범근이 경질당하게 된 네덜란드 전에서 상대팀의 수장은 다름 아닌 그 [[거스 히딩크]]였다. 그러나 차범근은 오히려 히딩크를 개인적으로 매우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차범근이 불명예스럽게 경질되고 자격정지까지 먹으면서 축협 및 언론 등과의 갈등이 정점에 다다른 시점 무렵이라 그 아들인 [[차두리]]를 향한 시선 역시 곱지 못해서 아들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이 많던 차에, 히딩크가 차두리를 주저없이 발탁하고 신경도 많이 써줬기 때문이라고. 2014 브라질 월드컵 무렵에는 차범근이 다큐 촬영 당시 히딩크를 찾아갔고,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던 중 '''"너님이 나 경질시켰잖아요 ㅋㅋㅋ"'''라고 둘이서 만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 말을 들은 히딩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감독에게 '''"이거 편집해주세요."'''라고 했다(...).]
* 반면 국가대표 커리어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FIFA 월드컵]]은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하나뿐인데 그조차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등 유례없는 초강력한 팀들[* 이탈리아는 전기 대회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전전기 대회 챔피언이다. 그리고 이 대회 우승도 아르헨티나가 차지했다. 이쯤되면 세계 올스타와 맞붙은 셈이다.]을 연달아 만난 탓에 그렇게 된 것이고 당시의 대한민국팀이나 차범근 개인이나 이 커리어에 걸맞을 정도로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들 잊기 쉽지만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 [[소중한 날의 꿈]]에 캐스팅 되신 듯하다. 직접 보면 안다.
* 일본 만화 [[캡틴 츠바사]]의 한국 팀 선수로 나오는 [[차인천]]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설정이 상당히 흡사하다.
* [[피파 시리즈]]에서 전설의 팀(팀명은 '클래식 XI') 멤버 중 한명인데, 유일한 아시아인이기도 하다. [[흠좀무]]. [[https://pbs.twimg.com/media/Ba727Y-CQAAgOL8.png|#]] 스탯은 전설의 선수 아니랄까봐 [[메시]]와 거의 동급인 90.
* [[피파 온라인 3]]에도 등장했다. 유럽리그 레전드(팀명은 'EL') 멤버 중 한 명이다. 다른 선수들은 [[울리 슈틸리케]], [[히바우두]] 같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초기 오픈빨을 빼고 거품이라고 가격이 폭락한 선수들이 많음에도 차범근은 만인이 인정받는 성능으로 초기 고가격대를 그대로 유지[* 60억 [[야프 스탐]]의 뒤를 잇는 50억대의 가격대로 2위를 유지 중이다. 월드 레전드 선수를 포함하더라도 엄청난 상위권. 참고로 다른 유럽리그 전설 선수들은 스탐을 제외하고 20~30억대, 심하면 10억 이하로 폭락했다.]하며 우뚝 서고있다. 일명 '''개떡같이 줘도 찰떡같이 골을 넣는다'''고 할 정도로 성능이 아주 출중하다.
* 2013년 10월 17일부터 다음에서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독자들의 평도 상당히 좋은 칼럼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chabum/|링크]]
* 한때 딸 차하나의 독일인 친구 아버지를 마중하러 김포공항에 나갔다가 당시 김포공항 경찰대의 불심검문을 받게 되었는데,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와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차범근이 1997~1998년 중 날짜 미상의 '전경'지에 기고한 글 중에서) 당시 국민적 스타인 차범근을 그 전경대원이 몰랐을 리는 없고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 한국 선수로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레전드라는 점에서 현 시대의 레전드인 [[박지성]]과 같이 언급되거나 비교되는 일이 잦은 편이다. 물론 둘 다 월드클래스의 실력을 지닌 선수였지만, 현역 시절 남긴 실적과 역량을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차범근이 우위. 유럽 정상급 리그에서 중위권 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로 통산 98골을 넣으며 UEFA컵 우승을 이끈 차범근과, 세계 정상권 명문 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긴 했지만 에이스라기에는 다소 모자란 주전급 선수 박지성은 약간의 클래스 차이가 있다. 굳이 말하면 팀을 이끄는 '''에이스'''와 팀에 기여하는 '''좋은 선수'''의 차이.[* 물론 후자가 꼭 전자보다 못한 것은 아니며 박지성도 월드클래스의 선수들이 우글거리는 맨유가 아니라 국대에서처럼 자기가 팀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팀의 주역이자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였다.] 또한 박지성은 '차범근 유소년 교실' 세대의 첫 주자이자 '차범근 축구상'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 1998년 국가대표 감독일 때는 [[서정원]]의 벤피카 진출에 대해서도 불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경향신문에는 "입단을 구걸하러 가서 무엇 하겠습니까?"고 서정원이 속고 있다고 인터뷰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래서 축구협회에 이적동의서를 발급하지 않아서 벤피카로 가서 연습경기까지 뛰던 서정원은 해외 진출이 무산되었다. 이외 수원 시절 국내로 유턴했던 안정환, 이천수와 불화가 있었는데 이 둘은 본인들 탓이 더 컸던지라 차범근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다. 선수 시절 얽힌 일 때문에 최강희 감독과는 지금도 사이가 별로 안 좋다.[* 이 건에 대해선 자기관리 개판으로 유명했던 최강희 잘못이라는 게 축구계 중론.] 하지만 서정원의 경우에는 차범근 감독과 같이 월드컵 본선에 갔으며 수원 삼성 시절에도 2004년에 함께 리그 우승을 일궈냈으며 서정원이 감독되고 처음으로 우승컵을 얻었던 2016년 FA컵 우승 시상식에서도 서정원을 꼬옥 안아주었다. 거기다 서정원은 차두리와도 웃으면서 잘 지낸다. 아마 서정원이 아니라 다른 선수에게 벤피카 오퍼가 왔더라도 똑같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더군다나 서정원은 프로 의식이 높은 선수. --세 명 모두 고려대 축구부의 선후배다.-- 결론은 아주 잠깐 있었던 헤프닝. 실제로 서로 사이도 좋다.
* 이임생은 김호 감독 시절 대표팀에 소집돼서 훈련 중에 [[연고전]]/[[고연전]]이 열려서 무단이탈한 탓에 그 후 국가대표에 소집되지 않았는데 차범근이 국가대표 감독일 때 다시 발탁했다. 이때 같은 고려대 선, 후배라서 다시 기용한 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는데 이임생은 부천 르네상스의 핵심 수비수였으며 벨기에전 붕대 투혼과 수원 삼성에서의 수석코치로 우승까지 함께 한 실적이 있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쓸 만해서 썼다. 그리고 차범근은 국가대표 감독일 때 장대일도 발탁해 홍명보 대타라는 중임까지 맡겼는데 장대일은 고려대 출신이 아니다.
* 부자가 함께 대표팀에 발탁되어서 유명한데, 가장 유명한 사례인 것은 맞지만 최초는 아니다. 최초의 부자 국가대표는 김찬기 - 김석원 부자로 김찬기는 1960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던 멤버 중 한 명이었고 김석원은 1979년과 1981년에 [[U-20 월드컵]]에 출전했고 이후에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던 인물. 다만 워낙 옛날 일이고 차범근 - 차두리 부자의 무게감이 엄청난지라 현재의 젊은 세대는 차범근 부자가 최초의 사례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 당대를 같이 보낸 선수들 중에서 차붐이 존경을 표했던 선수는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파울 브라이트너. 2013년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 '''선수 생활을 결산하면서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
> 분데스리가 베스트 11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한 단계, 즉 [[칼 하인츠 루메니게|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브라이트너]] 등이 서있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욱이 처음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정열과 패기였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던 곳에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오해와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라는 이름만 듣고 감이 안 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둘 모두 뮌헨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전드다. 루메니게는 발롱도르 2회에 빛나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였고 브라이트너는 수비수의 위치로 발롱도르 2위까지 오른 최고의 사이드백. 현 시대의 선수로 따지면 각각 호날두와 람 정도가 비견될 만 하다. 참고로 이 중 루메니게는 현 뮌헨 CEO를 맡고 있기도 하다.]
* 여담으로 상당한 공처가이기도 하다. 늘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아내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 다만 이렇게 공처가가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독일 진출 당시 차범근은 도착 직후 제대로 된 환대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프랑크푸르트의 슐테 조 감독은 상당히 냉담한 반응만을 보였었고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전까지 대우가 형편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아내인 오은미씨는 상당히 곱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억척같이 뒷바라지하면서 차범근의 영양 관리를 도왔기 때문.[* 연세대학교 종교음악과 출신으로, 차범근과는 미팅으로 처음 만나 결혼했다. 70년대에 여성이 대학을 다녔다는 건 상당히 좋은 집안이 아니었다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실제로 차범근 또한 곱게 자랐던 아내가 이 시기에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또한 아내인 오은미는 남편인 차범근이 축구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도록 축구 이외의 모든 것을 전담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차범근이 버는 모든 수입의 관리 뿐만 아니라 대외 활동의 매니지먼트, 심지어는 차범근이 쓰는 글 대부분의 대필까지도 해주고 있다는 건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해서 유명한 이야기로는 차범근은 자동차를 상당히 좋아해서 만약 오은미 여사가 돈 관리 안 했으면 자긴 진작에 집안에다가 각종 차를 종류별로 모아놨을 거라고 한 이야기. 차범근이 오은미 여사랑 차를 사러갔다가 축구장 만들어준다는 이야기에 포기했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경기도 연천의 축구장이다.]
* [[하리보]]를 굉장히 좋아한다. 독일 시절 접한 뒤로 계속해서 좋아한다고. 선수들 사이에서는 차범근 감독에게 하리보를 얻어먹는 게 이쁨받는 상징이라고.[* 대표적으로 [[마인츠]]에서 뛸 당시의 [[박주호]]. 2014 브라질 월드컵 특집 다큐에서 차범근이 마인츠에서 뛰고있는 [[구자철]]과 박주호를 찾아갔는데 박주호가 발가락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있자 들고 간 것이 하리보. 병실에서 나가기 전 "꼭 먹어"하며 챙겨주는 부분에서 하리보 사랑을 엿볼 수(?) 있다.]
*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었다. 당시 결승 상대가 [[북한]]이었는데 120분의 혈투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해 공동 금메달을 받았다.[* 당시 [[승부차기]] 제도가 국제 축구 대회에 적용한 게 2년밖에 안된 상태고 그때 당시에 [[UEFA 유로]], [[FIFA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국제 축구에서 시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36년 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결승 당시 남북전이 다시 성사되었는데 이번에는 대한민국이 120분간의 혈전 끝에 [[임창우]] 선수의 극적인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서 28년 만에 금메달을 얻었다.]
* [[차두리]]와 재미난 언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디에고 마라도나]]와 [[지네딘 지단]] 둘 중 누가 더 축구를 잘하냐는 것. 마지막에 서로 주고 받는 말이 압권이다. ~~"아버지, 지단이랑 뛰어봤어요?" "너 마라도나랑 뛰어봤어?" ㅎㄷㄷ~~
> '''누구도 막지 못한 단 한명의 공격수에게'''
*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소유 중인데 현재는 단종된 숏바디 모델이다. GE230 모델로 무려 '''구형 초록번호판'''[* '''[[1973년]]''' 제정되어 '''[[1995년]]'''까지 쓰인 번호판으로, 이런 번호판이 달린 차는 못해도 20년이 넘른 차이다.]이다! 최근 벤츠사에서 리스토어를 해주었다. [[https://youtu.be/avPamaxb_kA|영상]] 차범근 감독은 해당 차량을 받지 않고 기증했다.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이 한 해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한축구협회]]의 협회장이 바뀌고 내부 임원이 대대적으로 갈리면서 그동안 [[대한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었던 차범근이 한 자리 맡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어떤 구체적인 자리에 선임된 것은 없었지만, 브라질 월드컵 예선 [[바레인]]전에 신임 축협회장 [[정몽규]]와 나란히 경기를 관전하는 것이 TV에 잡혔다. 축구협회 임원진을 태운 전용기에 같이 동석하여 관람을 하고 왔다고 한다. 이로서 소문은 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에서 그에게 어떤 직책을 내릴지 주목된다. 하지만 2014년 10월이 지나도록 차범근에게 어떤 직책이 주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그냥 축구협회가 그간 껄끄러웠던 차범근과 화해만 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중.
* [[2014년]] 중 [[런닝맨]] 촬영을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109&aid=0002793713|마쳤다.]] 그리고 박지성 자선경기에 교체 출전하여 25년 만의 경기 출전을 했다! 그의 라이브 경기를 본 올드팬들도, 라이브 경기를 보지 못한 현 세대의 팬들, 그리고 수많은 축빠들이 한 마음이 되어 차붐의 활약을 기대하며 동점골을 넣기를 바랐으나 --눈치 없는(...)-- 인도네시아 올스타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어서 그다지 많은 기회를 받지는 못했다. 애당초 뛴 시간이 10여 분 남짓이었고 기대한 슈팅은 나오지 못했지만, 좌우 사이드를 가리지 않고 뛰고 중앙에서 킬 패스도 뿌리는 등 현역 시절 말기의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며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클래스는 영원한 것을]] 보여주었다. 중간에 백 힐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해서 웃음을 주기도 하였다.
* 차두리의 은퇴식에서 전반 42분 차두리가 교체되어 나올 때 라커룸에서 차두리를 맞이하며 "이제 차범근 아들로 태어난 거 후회 안 하지?"라는 말을 했다. '차붐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에 평생을 짓눌려 살아온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껴지는 말이다.
* 유럽에서 뛰면서 골대 바로 앞에서의 결정력 문제로 고생하셨다고 말했고 --네?? 그래서 98골????--, 어릴 때부터 축구를 경험해야 이러한 유럽과의 차이를 극복할수 있다며 이 때문에 차범근 축구교실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의 종특이였던 골대 앞에서 걷어내던 슈팅이 국대나 K리그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 '''차붐'''은 별명을 넘어 칭호처럼 불리웠는데, 일단은 그의 이름 때문이다. 차범근의 로마자 표기는 'BUM KUN CHA'인데, 독일 사람들이 CHA가 성씨인 것은 알았지만 BUM KUN을 이어서 이름이라 생각하지는 못하고 KUN 을 middle name으로 생각해서 생략해 버렸다. 한국처럼 성씨를 앞에 두니 CHA BUM이기에 독일식으로 읽으면 '차붐'이 된다.[* 사실 독일어에서 ch가 단어 첫 음절로 오면 보통 ㅅ이나 ㅎ발음으로 읽기 때문에 "샤붐"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bum이 엉덩이를 뜻하는 속어라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독일어의 bum은 영어로 boom과 같은 의미이다. 골을 뻥뻥 터트리면서 활약을 하자 널리 쓰이게 되었다.
* 화성시에서 서부로 일부 구간을 차범근로로 명명하려 했으나 논란이 일자 차범근 본인이 사양해 마무리되었다. 상세 내용은 [[화성시 차범근로 명명 및 취소 논란]] 참고.
* 2017년 8월 7일 분데스리가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 원투펀치 282회 3부 마지막에 Q: 차범근과 비교 대상이 될 현역 선수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받고 왠지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했다. 계속 포지션이 달라서 누구를 특정할 수 없다며 말을 피하다가, 현역 시절 같은 포지션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케빈 키건]]을 비교하면서 당시 분데스리가에서는 세손가락에 들어가는 공격수라는 점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루메니게만큼은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장지현 해설위원의 의견으로 종합하면 "득점력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화려한 플레이를 하면서도 팬들을 즐겁게 해준 최고 레벨의 선수"라고 평가했고 한준희 해설위원은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루메니게, 케빈 키건에 비견되는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 여담으로 차범근의 별명인 차붐이라는 랩네임을 가진 래퍼가 있다. 똑같이 성이 차 씨인데 중학생 시절 별명이라서 차붐이라고 지었다고.
* 카스 맥주 광고에 나와서 질 거라는 생각을 뒤집어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카잔의 기적|진짜로 뒤집어버렸다!]]'''
* 자신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을 때, 월드컵 중도 경질에, 두고두고 가족 전체의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비난을 받은 경력 때문인지, 신태용 감독 및 일부 선수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평소에 화를 잘 안내는 성격임에도 언론사에서 분노라고 표현할 정도.[* 얼마나 격하게 반응했냐면, 칼럼이나 발언을 통해 축구팬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는데, 차범근이 누군가를 그것도 축구팬에 대해 이정도로 격하게 반응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한국 대표팀이 [[카잔의 기적|독일을 꺾는 기적]]을 이뤄내자, 경기 후 라커룸으로 달려가 선수들과 펑펑 울었다고 한다. 경기 후 슛포러브 팀의 영상에 출연했는데,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있었고, 차범근 본인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평소 점잖은 이미지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손석희 사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고, 착잡해하면서 [[신태용]] 감독의 유임에 대한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 2018년 9월에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에 문화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다.
* 2018년 11월 3일 전 소속팀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해외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함께 임명된 5명의 레전드들 중에는 [[제이 제이 오코차]]도 있는데, 이 다섯 명이 함께 셀카를 찍은 사진 또한 공개되었다 (중국의 첸양은 먼저 잡힌 일정 때문에 불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