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필요|날짜=2014-05-13}} '''정진'''(鄭津, [[1361년]] ~ [[1427년]])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으로 시호는 희절공(僖節公)이며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관직에 올라 사재감령, 전농감령 등을 거쳐 [[조선]] 건국 후 [[개국공신|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398년]](태조 7년) 아버지 [[정도전]]이 [[요동 정벌]] 계획 중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에게 피살되자 수군 병력으로 충군되었으나 [[조준]], [[권근]] 등의 건의로 복직하여 [[자헌대부]]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사후 [[대구광역시|대구시]][[우찬성]]에 [[증직]]되었으며, 아버지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을 최초로 간행하였다. [[경상북도]] 출신으로 본관은 [[봉화 정씨|봉화]]. == 생애 == === 생애 초기 === 정진은 [[1361년]] [[정도전]]과 경숙택주 경주최씨의 네 아들 중 첫째 아들로 개경(현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에서 태어났다. 관직에 올라 [[1382년]] 낭장(郞將)이 되고 이후 [[사재감|사재감령]], [[전농감|전농감령]] 등을 지냈다. [[고려 공양왕|공양왕]] 즉위 후 1391년 [[정몽주]](鄭夢周) 등 온건파가 역성혁명파를 탄핵할때 탄핵을 받고 아버지 [[정도전]]과 함께 파직당하고 유배되었다. === 조선 건국 === {{참고|조선 건국|역성 혁명|개국공신|원종공신}} [[1392년]] [[7월]] 조선왕조가 건국 [[개국공신|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고 공신의 적자로 외직을 자청하여 [[연안군|연안]]부사(延安府使)가 되었다. 연안부사 재직 시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1393년]] 판사재감사를 지내고, [[1396년]](태조 5년) [[승정원]][[도승지]]로 승진했다. 이후 외직인 [[경흥시|경흥]]부윤(慶興府尹)·영[[원주시|원주목]]사 등으로 나갔다가 [[공조]][[판서|전서]]와 [[형조]]의 전서를 역임하였다. [[원주]]목사로 재직 중 아버지 [[정도전]]의 [[삼봉집]] 초본을 간행하였다. === 제1차 왕자의 난과 충군 === {{참고|제1차 왕자의 난}} [[1398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事)로 있을 때, [[이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아버지 정도전이 [[남은]], [[심효생]]과 함께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동생 두 명도 살해당하였으나, 그는 [[조선 태조|태조]]를 수행하여 삼성재(三聖齋) 방문 길을 수행하여 [[안변군]] [[석왕사]]에 체류 중이라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였다. 정도전의 네 아들 중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으나 정진은 병력으로 충군(充軍)되어 [[전라도]]수군으로 충군 징용되었다. 이후 [[조준]]과 [[권근]] 등이 그의 복직을 주청하였고, 이후 [[1407년]] 다시 복직하였다. 그 해 [[성석린]](成石璘)의 천거로 판[[나주시|나주]]목판사(判羅州牧事)로 부임했다. === 생애 후반 === [[1416년]](태종 16년) 인령부윤(仁寧府尹)이 되고, [[1417년]] 판[[안동대도호부]]사가 되었다. 그 뒤 관찰사를 거쳐 [[조선 세종|세종]] 즉위후 [[1419년]](세종 1년) [[충청북도|충청도]]도관찰사로 부임했다. 이후 [[자헌대부]]로 승진, [[1419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에 제수되었고, [[1420년]]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 연경에 다녀오기도 했다. [[1421년]] 판한성부사로 부임하였고, [[1422년]]까지 판한성부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423년]]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개성부의 유후(留後)로 부임했다. [[1425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형조]][[판서]] 재임 중 [[1427년]](세종 9년)에 병사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67세였다. === 사후 === 당시 [[세종대왕]]은 각별히 애도의 뜻을 표하여 3일간 조회를 정지하였고, 친히 제문을 지어 내렸다. 바로 [[증직|증]](贈) [[의정부]][[우찬성]](議政府右讚成)에 [[추증]]되고 [[희절]](僖節)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사후 [[경상북도|경북]] [[영주시|영주]]의 [[모현사]](慕賢祠)에 배향되었으며, [[평택]]의 [[희절사]](僖節祠)에 제향되었다. == 가족 관계 == '''본가 [[봉화 정씨]](奉化 鄭氏)''' * 조부 : 형부상서 [[정운경]](刑部尙書 鄭云敬, 1305 ~ 1366) * 조모 : 산원(散員) 우연(禹淵)의 딸 증 정경부인 [[영주 우씨]](贈 貞敬夫人 榮州 禹氏) ** 고모 : 봉화 정씨 ** 고모부 : 공조판서 [[황유정]](工曹判書 黃有定 , 1343 ~ ?) ** 숙부 : 정도존(鄭道尊) ** 숙부 : [[정도복 (고려)|정도복]](鄭道復, 1351 ~ 1435, 호는 일봉(逸峯)) 한성판윤(漢城判尹) *** 사촌동생 : 정담(鄭澹) *** 사촌동생 : 정기(鄭淇) ** '''아버지''' : [[정도전]](鄭道傳, [[1337년]] ~ [[1398년]]) * 외조부 : 찬성(贊城) 최습(崔濕) ** '''어머니''' : 경숙택주 [[경주 최씨]](慶淑宅主 慶州 崔氏) *** 동생 : 정영(鄭泳) *** 동생 : 정유(鄭遊) *** '''부인''' : 정부인 [[연일 성씨]](正夫人 延日 成氏) **** 아들 : 정래(鄭來) **** 아들 : 정속(鄭束, 稷山縣監 역임, 사후 [[증직|증]] [[의정부시|의정부]]에 [[추증]]) ***** 손자 : 정문형(鄭文炯, (1427∼1501)] ) 의정부 우의정,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叟), 시호는 양경(良敬), 세조대 청백리(淸白吏) == 정진이 등장한 작품 == * 《[[정도전 (드라마)|정도전]]》([[KBS]], [[2014년]]~[[2014년]], 배우:[[김정민]]) * 《[[육룡이 나르샤]]》([[SBS]], [[2015년]]~[[2016년]], 배우:[[김현빈]]) == 평가 == 평소 겸양과 치덕으로 일관하였으며, 겸손하여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한다. == 같이 보기 == {{Col-begin}} {{Col-2}} * [[개국공신]] * [[원종공신]] * [[정도전]] * [[정몽주]] * [[조선 태종|태종]] * [[제1차 왕자의 난]] * [[위화도 회군]] {{Col-2}} * [[요동 정벌]] * [[권근]] * [[길재]] * [[정숙침]] {{Col-end}} [[분류:1361년 태어남]][[분류:1427년 죽음]][[분류:음서]][[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고려의 군인]][[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군인]][[분류:해군 군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봉화 정씨]][[분류:조선의 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