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thumb-phinf.pstatic.net/?src=%22https%3A%2F%2Fdbscthumb-phinf.pstatic.net%2F4090_000_1%2F20150831181254384_O3K88FVP8.jpg%2FA53002316904.jpg%3Ftype%3Dm4500_4500_fst_n%26wm%3DY%22&twidth=372&theight=480&opts=17 '''이쾌대'''(李快大, [[1913년]] [[1월 15일]] ~ [[1965년]] 2월 20일)는 [[한국]]의 [[화가]]이다. == 생애 == [[경상북도]] [[칠곡군|칠곡]]의 대지주 집안 출생으로, 미술 및 복식사, 민속사에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던 맏형 [[이여성]]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1928년 대구 수창보통학교를 졸업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화가 [[장발 (화가)|장발]]에게 미술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에 데뷔하였고, 그 해 가을에 제3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 회화부 2등상을 수상했다. 1934년 [[일본]]으로 유학,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 졸업했다. [[1941년]] 도쿄에서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였는데 이때 협회 구성원들은 [[이중섭]], [[최재덕 (화가)|최재덕]], [[문학수]], [[김종찬 (화가)|김종찬]], [[김학준 (화가)|김학준]], [[진환]]이었다.{{서적 인용 |저자=지명문, 김복기 |제목=신세계창립29주년기념 월북화가 이쾌대전 |날짜=1991-10-08 |출판사=신세계미술관 |출판위치=서울 |id= |페이지=}} 광복 후 [[1946년]] 조선조형예술동맹 회화부 위원에 선임되었다. 같은 해 조선미술동맹의 서양화부 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연말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다. [[1947년]] 8월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했고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48년 서울지검에서 운영하던 좌익 인사 사상전향기구 [[보도연맹]]에 가담하여 전향하였다.{{서적 인용 |저자=편집부 |제목=한국현대 예술사대계 1 (해방과 분단 고착 시기) |날짜=1999-12-22 |출판사=시공사 |출판위치=서울 |id={{ISBN|895270522X}} |페이지=255쪽}} 이후 [[홍익대학교]] 강사로 일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조선미술동맹에서 활약했다. 이후 9·28 수복 직전 서울을 탈출했으나 [[대한민국 국군]]에 체포되어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구금되었다. [[1953년]] 남북 포로 교환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택했다. 월북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미술계에서 꾸준한 활동을 하다가 [[1965년]] [[위장]] 계통의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것 외에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1950년대 후반경 숙청되어 말년이 불행했다는 설이 있다.《연합뉴스》 (2000.7.18)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8/2000/009100008200007181610602.html 월북 이쾌대 화백, 1965년에 사망 ] (《한겨레신문》 재인용) 알려진 마지막 작품은 [[1958년]] [[김진항]]과 공동 제작한 중국군의 한국 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우의탑]]의 대형 벽화이며, 북조선에서 발행하는 미술가사전에도 누락되어 있다.{{저널 인용 |제목=분단 50년, 월북 미술인 68인의 행적 |저자=이구열 |저널=월간미술 |연도=1998 |작성월=8}} 대한민국에 남은 유족으로는 부인 유갑봉(1980년 사망)과 3남 1녀(막내아들 [[이한우]])를 두었다. 서사적이고 장엄한 화풍으로 '한국의 [[미켈란젤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대표작으로 〈군상〉시리즈와 , 〈걸인〉, 〈조난〉, 〈운명〉 등이 있다. == 기타 == * 남북 포로 교환 당시 북한행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063250 이쾌대 선생 월북은 이념 아닌 생존이었다], [[한겨레신문]]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조영복 |제목=월북 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날짜=2002-09-10 |출판사=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71991503}} |장=이쾌대 - 장엄한 역사의 서막을 알려준 화가의 손}} * 조영복, [http://nk.chosun.com/news/news.html?ACT=detail&res_id=3970&page=1 월북지식인들의 행로 (2) 이쾌대] 《조선일보》 (2001.1.7) == 각주 == [[분류:1913년 태어남]][[분류:196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가]][[분류:칠곡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