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영'''(李忠榮, [[1908년]]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법조인이다. == 생애 == [[경상북도]] [[칠곡군|칠곡]] 출생이다.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였고, 일본제5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1932년]] 졸업했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대구광역시|대구부]], [[함흥부]], [[광주광역시|광주부]], [[평양부]]의 복심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다가, 1940년대 초반 [[변호사]]로 전직했다. 평양복심법원을 끝으로 판사직에서 사임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가족들은 이충영이 [[창씨개명]]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변호사 개업 허가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포함돼 있다. 광복 후 [[서울]]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서울이 [[조선인민군]] 점령 하에 있던 [[1950년]] 8월 납북되었다. [[서울대학교]] 총장 및 [[대한민국의 총리|국무총리]]를 지낸 장남 [[이수성]]이 [[199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상대 후보였던 [[이회창]]은 이충영이 [[좌익]] 인사였으며,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공격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공 검사로 유명했던 [[선우종원]]이 사실무근이라 증언한 바 있다. ==가족== 장남은 제29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 (1939년)|이수성]]이고, 차남 [[이수인]]은 영남대 교수 및 민주당 의원을 지냈으며, 셋째 이수윤은 [[한국교원대]] 교수였고, 넷째 이수억은 아서 앤더슨 대표를 지냈다. == 참고자료 == * {{뉴스 인용 |url=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2/10/11/200210110500042/200210110500042_1.html |저자=김시관 기자 |제목=대권주자들 “사랑해요 이수성” - 구애공세에 주가 쑥쑥 … 자서전 내며 느긋한 시간, 파트너 선택은 일단 뒤로 |날짜=2002-10-17 |확인날짜=2007-12-12 |출판사=주간동아 }} * {{뉴스 인용 |url=http://www.stimes.co.kr/article/190 |저자=박지순 기자 |제목=대권 도전 선언, 이수성 누구인가 |날짜=2007-10-12 |확인날짜=2007-12-12 |출판사=서울타임스 }}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광주 이씨]][[분류:칠곡군 출신 인물]][[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일제 강점기의 판사]][[분류:일제 강점기의 변호사]][[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납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