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시작}} {{메달 나라|{{국기나라|대한민국}}}} {{메달 스포츠|남자 [[육상]]}} {{메달 경기|[[아시안 게임]]}} {{금메달|[[1958년 아시안 게임|1958 도쿄]]|남자 마라톤}} {{메달 끝}} '''이창훈'''(李昌薰, [[1935년]] [[3월 21일]] ~ [[2004년]] [[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 였다. 본관은 경산(京山)이며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출신이다. == 경력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동부초등학교와 대구 영남중학교, [[양정고등학교 (서울)|양정고등학교]],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 선남동부초등학교 5학년 때 마라톤을 처음 시작했다. [[손기정]]의 가르침을 받았던 양정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경상북도]] 육상 장거리 대표로 활약했으며 특히 전국 대회에서 중거리 이상의 종목을 거의 석권했다. [[1955년]] [[6월 11일]]부터 [[6월 12일]]까지 [[동대문운동장|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파견 마라톤 예선전에서 2시간 48분 57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한 [[1956년 하계 올림픽|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2시간 28분 45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4위에 올랐고 [[1958년 아시안 게임|1958년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 2시간 32분 55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59년]] [[9월 29일]] [[한국일보]]와 [[대한육상경기연맹]] 주최로 열린 9·28 서울 수복 기념 제1회 서울~인천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4분 7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그가 세웠던 기록은 남자 마라톤 [[대한민국]] 신기록으로 남았으며 1962년 10월 25일 김연범이 2시간 23분 56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깨지게 된다. [[1960년 하계 올림픽|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2시간 32분 55초의 기록을 세우면서 20위를 차지했고 [[1965년]]에 은퇴했다. [[1977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 마라톤 강화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4년]] [[1월 13일]] 향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부인은 [[손기정]]의 딸인 [[손문영]](孫文英)이며, 슬하에 세 아들(이준석(李埈碩), 이준승(李埈承), 이준호(李埈昊))을 두었다. ==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KOR_A1935_1_0032739}} {{아시안 게임 육상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2004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마라톤 선수]][[분류:1956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분류:1960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양정고등학교 (부산) 동문]][[분류:영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성주군 출신 인물]][[분류:아시안 게임 육상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분류:1958년 아시안 게임 육상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