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보
| 이름 = 이숭인
| 그림 =
| 그림설명 = 조선 후기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이숭인 초상
| 출생일 = 1347년
| 출생지 = 경상북도
| 사망일 = 1392년
| 사망지 =
| 국적 =
| 필명 = 자 자안(子安)<br />호 도은(陶隱)
| 경력 =
| 장르 = 한시, 시조
| 직업 = 학자, 시인, 문신
| 종교 =
| 배우자 =
| 상훈 =
| 웹사이트 =
}}
| 이름 = 이숭인
| 그림 =
| 그림설명 = 조선 후기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이숭인 초상
| 출생일 = 1347년
| 출생지 = 경상북도
| 사망일 = 1392년
| 사망지 =
| 국적 =
| 필명 = 자 자안(子安)<br />호 도은(陶隱)
| 경력 =
| 장르 = 한시, 시조
| 직업 = 학자, 시인, 문신
| 종교 =
| 배우자 =
| 상훈 =
| 웹사이트 =
}}
이숭인(李崇仁, 1347년~1392년 9월 10일(음력 8월 23일))은 고려 말의 시인, 대학자이다. 호는 도은(陶隱), 자는 자안(子安), 본관은 성주이며, 길재 대신 삼은으로 꼽히기도 한다.<ref name="역대">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ref> 포은 정몽주의 문하생이었다. 권신 이인임의 5촌 조카였다.
생애 ¶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예의 산랑(禮儀散郞)·예문 응교(藝文應敎)·문하사인(門下舍人)·숙옹부승 등을 역임했다. 공민왕이 성균관을 개창(改創)한 뒤 정몽주 등과 함께 학관(學館)을 겸했다. 고려 문사(文士)를 뽑아 명나라에 보낼 때 1등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어려 가지 못했다. 정도전 등과 함께 원나라의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가 유배된 적이 있다. 그 후 정몽주와 함께 실록을 편수하고, 1386년(우왕 12)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인임의 인족(姻族)이라 하여 유배되기도 하였다. 1389년 창왕 때에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에도 혼란기를 맞아 유배·감금되었고, 1392년(공양왕 4) 이방원에게 정몽주가 처형되자 그의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평가 ¶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시문(詩文)에 이름이 높았다. 명과의 외교 문제를 맡아 썼으며, 그의 명문장은 명 태조를 탄복시켰다. 저서로는 《도은선생시집》(흔히 《도은집》)이 있다.
각주 ¶
<references/>
{{고려 삼은}}
{{글로벌세계대백과}} <!-- 〈고려 후기의 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