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대한민국의 정치인 === https://search.pstatic.net/common?type=a&size=120x150&quality=95&direct=true&src=http%3A%2F%2Fpeople.phinf.naver.net%2F20140602_270%2F1401699543407hVfoL_JPEG%2Fchosun_400020350.jpg 李壽仁(1941~2000) [[대한민국]]의 전 [[교수]], [[정치인]]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으로[* 인터뷰를 들어보면 사투리가 안 느껴지고 오히려 서울 토박이처럼 느껴진다. 아마 어릴 적에 고향을 떠나서 그런 듯.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서울에서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후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임하던 도중 1980년 해직되었다. 이후 해직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약칭 민교협. 전국적인 개혁,진보 성향 교수들의 모임으로 2015년 현재까지도 활동이 이어져 오고 있다.] 창설을 주도했다. 1990년 11월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당시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는 호남에 아무 연고도 없는 영남 출신 이수인 교수를 공천한 것은 지역감정 해소, 동서화합을 위한 조치라고 이야기하였다.[* 다만 이 부분은 당 안팎에서 잡음이 많았다. 일단 지역구 국회의원 자체가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자리인만큼 해당 지역을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이 공천되는게 바람직함에도 김대중 총재의 직권으로 쌩뚱맞게 영남 출신 후보가 공천되자 당내에서 이에 반발해 안평수 등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비롯한 정계에서도 지나치게 작위적인 정치쇼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유세 과정에서는 그 동안 함평.영광 지역에서 투표할 권리도 없었던 사람이 출마하는건 말이 안된다는 비난도 받았고, 심지어 [[민주자유당]] [[조기상]] 후보는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40684_13421.html|경상도 사람이 이 땅의 국회의원이 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라는 지역감정 유발 발언을 대놓고 했다.] 그러나 강남갑 지역구에 도전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중재]]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정계를 은퇴한 [[김대중]]이 1995년 돌연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통합민주당(1995년)|민주당]]에 잔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3번을 배정받아 당선된다. 1년 반 뒤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으나, 성향 자체가 개혁적이다보니 한나라당 지도부의 지시를 어기고 [[김대중]] 정권의 여러 정책에 협조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특히 1998년 12월 29일 [[전교조]] 합법화를 골자로 한 교원노조 법안과 1999년 4월 29일 노사정위원회 법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상임위 회의를 어떻게든 지연시키는가 하면 아예 전원 퇴장으로 의결 정족수 미달을 노렸지만 이수인과 [[이미경(정치인)|이미경]] 의원 둘이서 당론을 어기고 자리를 지키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법안이 상정되었다.[* 참고로 이미경 의원 역시 민주당 출신으로, 이수인 의원보다 1순위가 빠른 2번에 공천되어 당선되었다.] 결국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한나라당 지도부에 의해 1999년 5월 제명이 의결되었고 10월에 출당조치되면서 무소속으로 잔여 임기를 수행했다.[* 앞서 언급한 이미경 의원도 함께 출당되었다. 원래 이수인 의원만 제명이 확정되었고 이미경 의원은 당원권 정지 처분만 받았으나, 출당 직전인 1999년 9월 이미경 의원이 한나라당의 당론을 어기고 [[동티모르]] 파병안에 찬성하면서 함께 징계를 받았다. 당시 뉴스를 보면 전원 퇴장으로 텅 빈 한나라당 의석에 이미경 의원 혼자 앉아있고 동티모르 파병안에 찬성하는 의사진행 발언을 하자 여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압권. 이미경 의원은 제명 이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비례대표 의원을 한 번 더 지내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제18대 국회의원 선거|18대 총선]]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 총선]] [[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울 은평갑에서 당선되어 총 5선을 지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16년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제명 당시 '''"나는 한나라당이 내린 결정을 영광의 훈장으로 생각한다. 당원 자격보다는 국회의원의 자격이 앞서고, 당과 국회의원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이익이 앞서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을 남겼고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당시 여당([[자민련]]) 소속 [[김범명|위원장]]에게 [[http://mn.kbs.co.kr/news/view.do?ncd=3800989|노사정 위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소신도 밝혔는데]] 이를 통해서 어떤 정치 성향이었는가를 짐작 가능. 15대 국회 임기가 끝난지 열흘 남짓만인 2000년 6월 1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정계에서는 이미경처럼 [[새천년민주당]] 창당 때 당연히 참여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채 무소속 전국구 의원으로 남았던 것으로 보면 아마 병세가 심각하다는걸 본인이 인지하고 정계은퇴를 결심했던듯. 형은 [[이수성(정치인)|이수성]] 전 [[국무총리]]이다. 그래서 이수성이 국무총리로 재임하던 1996년 7월 16일 국회 본회의 때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12908_13448.html|"어머님께서 며칠 전 형님을 곤란하게 할만한 질의를 하지 말라고 정치적 압력을 가해오신 것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뜬금포]] 유머를 시전하기도.[* 왜 뜬금포냐 하면, 이 날 [[이양호]] 국방장관이 [[NLL]]에 대해 '''"우리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지 정전협정에 의한게 아니므로 (북한이) 넘어와도 상관없는게 된다."'''라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천용택]], [[김경재]] 등의 [[새정치국민회의]] 의원들조차 비난할만큼 분위기가 험악했기 때문.] [[분류:교수]][[분류:칠곡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