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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호(야구선수)


KIA 타이거즈 No.25
이범호 (李杋浩 / Lee Bum-ho)
생년월일 1981년 11월 25일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3cm, 93kg
출신지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학교 수창초-경운중-대구고-목원대
포지션 3루수, 1루수[1], 유격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0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 한화)
소속 팀 한화 이글스 (2000~2009) br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0) br KIA 타이거즈 (2011~)
등장곡 리쌍 - YES OK
응원가 한화 시절 : 클론 - '발로차'[3] br 현재 : 유정석 - '질풍가도'[4] br - '열혈남아'[5][6]brGipsy Kings 'Volare'[7]
병역 병역특례
종교 불교
연봉 6억 5000만원 (FA,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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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기록
2005, 200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보유 기록
통산 최다 만루홈런 17개[8]

타이거즈 주장)

소개

KIA 타이거즈3루수. 등번호는 25번으로, 2000년대엔 김동주, 2010년대엔 최정박석민에게 밀려서 원톱이었던 적은 없지만 역대 3루수 중 레전드라 불리기에도 손색없는 성적을 쌓았다.

한화 시절 별명은 '꽃보다 아름다운 범호(줄여서 꽃범호)', '한화의 매력남', '월드추남'[9], 기아 시절에 나온 별명으로는 2017년 6월 14일 마이데일리 이후광 기자의 오타에서 나온 별명인 "이봄허"[10], 기아의 주장을 3년간 역임한 탓에 꽃주장, 듀당, 그 외에 두더지등이 있다. 개그 콘서트오지헌을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붙은 별명들. 본인도 컴플렉스를 느끼는 듯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꽃범호'라는 별명은 이범호를 놀리는 것이 아닌 팬의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화의 매력남이라는 별명은 이범호 전용 응원문구에서 따 온 별명이다.(한화의 매력남은 누구? 이범호!) 웬만한 야빠들 사이에선 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듣는다.

등번호는 56번 - 31번 - 7번(이상 한화) - 8번(소프트뱅크 호크스) - 25번(KIA). 1회 WBC 때는 55번을, 2회 WBC에서는 6번[11]을 달았다. 2011년에 KIA 타이거즈와 계약하면서 KBO에 복귀하여 수많은 한화 팬이 이범호 안티로 돌변했다.[12]

한화 이글스에 있을 당시에는 <발로 차>를 개사해서 이범호! 이범호! 한화의 이범호! 로 불렀다. 또,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방영할 당시에는 이범호가 타석에 서면 '꽃보다 남자'의 주제곡을 틀기도 했다.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2011년부터는 전용 응원가로 Volare와 질풍가도를 개사, 총 2개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여태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해외 진출을 했을 시 진출 이전 소속팀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범호가 그런 경우를 깬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13][14] 게다가 이적생 출신으론 최초로 타이거즈 주장을 맡았다.[15]

2019년 시즌 개막 시점을 기준으로 328개의 홈런을 터뜨려 심정수와 함께 KBO 리그 개인 통산 최다 홈런 순위 5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이는 현역 선수로서 최다 기록이다.

플레이 스타일

잡아당기는 타격을 장기로 구사하며 공격적인 스윙을 하기 때문에 타율은 약간 낮고 특히 병살타가 많은 편이지만[16] 평균 수치를 월등히 상회하는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4 시즌 이후에 꾸준히 20홈런 이상을 찍어주는 활약을 보이고 있다. 다만 2008 시즌에 19홈런을 기록하면서 5년 연속 20홈런에는 실패하였다. 그래도 특별히 큰 부상만 없다면 한 시즌 20홈런 안팎은 보장할 수 있는 강타자로 김태균과 함께 통산 300홈런 달성이 가능한 타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36살 시즌에 맞은 제2의 전성기로 결국 2016 시즌에 KBO리그 통산홈런에서 김태균을 역전한데 이어서 2017년 통산 300홈런도 먼저 달성해냈다[* 다만, 애초에 김태균과 이범호는 스타일이 다른 타자라서 홈런수만으로 둘을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NPB의 기록까지 합산하면 김태균이 이범호를 앞서기는 한다.]

특히 2017 한국시리즈에서도 만루홈런을 치는 등, 중요한 경기에서 한방 쳐줄 수 있는 클러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많은 투수들이 두려워하는 선수다. 통산 준플레이오프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7개).

수비는 본래 평범했지만 유승안 감독 시절 유격수로 구르면서 경험을 쌓아[17][18] 일취월장, 어느 팀에서든 주전하기에는 손색이 없다.[19] 30대 후반 접어들면서 슬슬 노쇠화 기미가 보이는지 3루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송구는 여전히 안정적이지만 기본적으로 발이 느려 수비범위가 좁았는데 타구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평범한 땅볼이나 직선타가 될 타구가 3루수 옆을 빠져나가는 안타로 연결되는 장면이 2017년 들어 많이 보이고 있다.[20]

연속출장을 이어가면서 의 최다연속 출장기록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KIA 타이거즈/2008년/6월/4일전에서 선발 명단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교체출장할 틈도 없이 강우콜드 선언, 결국 어이없게도 615경기에서 연속출장을 마감해야 했다. 그래도 이 기록은 최태원, 에 이은 역대 4위 기록이다.

다만 연속출장을 이어갈 정도로 튼튼한 몸은 그 연속출장의 여파로 잔부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2011년 8월 7일 SK전에서 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고질적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옛말이 되었다. 또한 이 때문에 한화 시절에는 나쁘지는 않던 주루도 망해버려서 KBO 리그의 대표적인 발이 느린 주자이기도 하다.[21]

대구고 시절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당시 한화 스카우트였던 정영기의 안목으로 발굴된 선수. 정영기가 와서 2차 1라운드 지명을 할거라고 이범호에게 알려줬는데, 당시에 이범호는 안 믿고 있었다가 진짜로 지명받자 놀랐다고 한다. 한편, 한화 이글스 구단 관계자들은 "대구 이씨가 왔다!" 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대를 표시했는데, 이는 이글스에서 맹활약 했던 대구 출신이었기 때문. 별 인지도가 없었고, 연고지역 선수도 아니었던 이범호가 이런 이유로 지명되었다는 카더라 썰이 존재한다.

입단 이후 2루수, 3루수로 출전하면서 2001년을 기점으로 재능을 꽃피웠다. 2004년 유승안 감독은 이범호를 공격형 유격수로 키우기 위해 유격수로 내보내며 타율 0.308, 23홈런을 기록하며 타격은 나쁘지 않았으나[22] 문제는 실책이 30개(...) 지금도 딱히 다를게 없지만 당시 한화의 내야는 정말 개판 수준이라고 봐야 할 정도의 상태였고, 유승안 감독이 물러나고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2005년부터 3루수로 완전히 정착하며 그 해 골든글러브를 수상, 차세대 대표 3루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1회 WBC에 참가했고, 2년 연속으로 3루수 골든글러브를 받으며 2000년대 중후반 리그의 공격형 3루수로 자리잡았다.

2007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때 오승환에게 홈런을 때렸는데 그 때 MBC ESPN에서 화면에 꽃장식을 하여 꽃범호의 이미지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수뇌부가 야갤러임을 공공연히 알리기도 했다.

WBC와 2009 시즌

WBC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김동주최정에게 밀려 대표에서 제외되었지만, 김동주가 일본 진출 시도와 그 실패 후유증 등으로 대표팀을 고사하면서 다시 내야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타율이 높은 최정, 수비가 안정적인 이범호가 3루를 놓고 다툴 것으로 보였는데 박진만의 엔트리 하차로 결국 모두 올라갔으며, 2회 대회에서는 이대호의 수비 불안 및 빈타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거기다 이범호가 소위 말하는 단기전 크레이지 모드에 들어섰는지 홈런 3방을 포함한 불방망이까지 휘두르며 명실상부한 공격의 핵이 되었다.

홈런 말고도 2라운드 일본과의 승자전에서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고르는 모습과 결승 일본전에서 9회말 2사 1,2루에서 다르빗슈 유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동점타를 쳐내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줬다. 그러나 이후 고영민의 삽질, 임창용의 2실점, 이용규의 플라이아웃, 최정정근우의 삽질 등으로 인해 그의 드라마틱했던 동점타는 아쉽게도 묻히고 말았다.

정규 시즌에서는 부상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한화의 추락의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어쨋든 1년 스탯은 매년 찍어주던 성적을 찍는데 성공했다.

4월 30일, '한국의 쿠어스 필드' 청주구장에서 펼쳐진 LG와의 경기에서 2회 만루홈런, 6회 1점홈런, 7회 3점홈런을 터뜨리며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었으나, 8회 2사 1루 상황에서 대타 오선진으로 교체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다리가 좀 불편하다는 이유였지만,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김인식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듯하다. 이범호도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였다.

소프트뱅크 시절

2009년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렸다.

본인은 적정한 수준만 해주면 한화 이글스에 남겠다고 했지만 결국 우선 협상기간인 12일을 넘기고, 일주일 뒤인 11월 19일 일본 프로 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1년에 최대 5억 엔에 달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의 언론 플레이에 실망한 한화팬들은 새로운 별명 월추(월드추남)라고 부른다.[23]

입단 이후 경미한 어깨 부상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스프링캠프에서 아키야마 코지 소프트뱅크 감독에게 수비 능력을 계속해서 지적받았고 결국 개막전부터 원래 주전 3루수였던 마쓰다 노부히로에 밀려 대타 혹은 지명타자 땜빵으로 뛰었다.[24] 그 와중에 마쓰다의 부상으로 3루 수비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는 이범호의 몸 상태도 몸 상태지만 소프트뱅크 고위층에서 아키야마 감독에게 영입 의사를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아키야마 감독이 원치 않은 선수였기에 처음부터 잡음이 많았으며 주전자리 확보도 힘들었다.

그리고 팀 내에서 장타력이 부족함을 느꼈는지 고향 베네수엘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를 전격적으로 영입했는데, 이는 이범호에게 직격탄으로 날아왔다. 다행히도 페타지니가 몸 상태를 끌어올리느라 2군에서 유예기간을 갖는 동안까지는 1군에 붙어 있었으나, 페타지니의 1군 승격과 함께 곧바로 2군으로 추락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페타지니는 내일 모레 마흔이라는 나이 + 6년간의 일본리그 공백을 상큼하게 씹어먹고 맹활약했다. 허나 소프트뱅크의 중심타자인 호세 오티즈가 무릎부상을 당하며 외국인 슬롯이 하나 비게 되자 8월 5일 오랜만에 1군에 등록되어 두 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아키야마 감독은 원래 3루수인 마쓰다를 오티즈의 포지션인 좌익수로 돌리고 이범호를 3루수로 잠시 기용했었다.

팀에서 홀대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최악의 수비력 때문이다. 타격만 따지면 2군에서 타율 .277, 출루율 395, 장타율 .535, OPS.929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수비에 대해서는 기본기가 안 되어 있다는 혹평을 받았다. 참고로 2군에서 필딩률이 .907다.[25]

때문에 이범호가 1군에서 2경기 연속 홈런 등으로 활약하자 주전 3루수인 마츠다를 좌익수로 컨버젼시키면서까지 자리를 마련해주었을 때도 불안한 수비와(1군 필딩률 .930) 침묵한 타격으로 팀에게 제대로 찍히면서 사실상 일본생활이 끝이 났다. 사실 수비력만 준수했어도 기회를 더 부여받았겠지만 9할 초반대의 수비력으론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26]

하지만 오로지 '돈'만 본다면 일본 진출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서 2년 동안 벤치만 뎁혀도 고연봉이 보장되며, 국내 복귀시 또 상당한 연봉거품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2010 시즌 성적은 48경기/타율 .226/28안타(4홈런) / 1도루.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우선 보류명단에는 포함 되었었으나 구단측에서 보유 의지가 약하다는 기사가 연이어 터지는 등 시즌 종료 후의 거취가 불안정했다. 소프트뱅크 스프링캠프에는 참가하였으나 이후에도 국내 복귀로 교섭이 계속 되었던 듯 하다.

결국 소프트뱅크 측의 양해를 얻어 원 소속 팀이였던 한화와 수차례 교섭을 하였으나, 서로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여온 끝에 교섭이 결렬되었다. 이 과정에 설레발 기자의 찌라시와, 팬, 구단 간의 신경전으로 제법 큰 병림픽으로 발전하는 등, 영 좋지 못한 전개가 근 2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래도 나름 기억에 남을 플레이도 했었다. 바로 2010년 5월 7일 홈 경기에서 와쿠이 히데아키의 노히트 노런을 코앞에서 저지한 것. 아웃카운트가 3개 남은 9회 말 무사에 올라와서 안타를 쳤다. 그 안타가 그날 소프트뱅크의 유일한 안타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범호가 입단할 때 팀에 이(李)씨가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에 이범호가 LEE로 유니폼을 마킹하면서 리두쉬엔은 유니폼 마킹을 T.LEE로 강제로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이범호가 1년만에 소프트뱅크를 떠나면서 다시 LEE로 회귀.

한국 복귀

2011년 1월 27일, 뜬금없이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소프트뱅크 측에서는 남은 계약 기간에 해당하는 2011년 연봉 1억 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을 종료했지만,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당장 KIA 타이거즈의 포지션 이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한화 이글스 팬들은 이범호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능한 한화 프런트를 까는 데 혈안이 되었다.

계약 기간 1년에 계약금 8억, 연봉 4억 등 총 12억 원에 계약하기로 합의하고 1월 29일 KIA 타이거즈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여 시즌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이범호 본인은 KIA 입단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끼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울 때 KIA가 손을 내밀었다."]라고 말한 대목을 봐서는 한화와의 협상이 실제로도 매우 험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화의 보상선수 지명권에 대해 신인이 자동보호 되는지의 여부로 인해 시끄러웠지만 KBO가 신인선수는 1년 이내에 트레이드를 제외하고는 이적을 금지한다는 야구 규약 109조를 인용해 자동보호된다는 유권해석을 하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화에서 장고 끝에 지명한 보상선수는 안영명. 이로써 안영명은 트레이드 8개월 만에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였다.

2012 시즌

3월 17일 SK 와이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손목 통증을 호소하여 팬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후 좋아지나 싶더니 왼쪽 허벅지 통증이 일어나며 전력 이탈. 별다른 3루수 대체 자원도 없었던 데다 김상현(1980)마저 손바닥 골절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 때문에 4월 기아의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팬들은 이러다 먹튀가 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였다. 심지어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며 두더지라고 까였다. 뜬금없이 태국 마사지 기사까지 뜨면서 팬들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27]

5월 초부터 퓨처스리그에서 몸을 가다듬으며 복귀를 준비하였다. 그간 지명타자로만 출장하다가 5월 13일에는 시즌 첫 3루수 선발 출장을 하였다.

5월 17일 오랜만에 1군 선발 출장을 하였다. 5타석 4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을 기록, 아직은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5월 19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 1홈런 1득점을 기록, 이어서 5월 20일에는 3타수 3안타 3타점 1홈런 1득점 1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으나, 팀이 연패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그나마 이범호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팀에게는 위안이 될 듯.

복귀 후 클린업의 한 축을 담당하며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다만 햄스트링 부상이 워낙 재발성이 높고 위험한 부위이다보니 무리한 베이스러닝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부상 여파로 인해 타격폼이 불안해져 시간이 갈수록 방망이도 시들해지는 상태.

결국 햄스트링 부상을 완치하지 못한 탓인지 7월 9일 다시 2군행.

담당의사의 말에 따르면 부상부위는 완쾌되어 운동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이 '다시 다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제대로 뛸 수가 없다고. 햄스트링 부위 자체가 한 번 부상을 입으면 회복된 후로도 심심찮게 재발하는 부위긴 하지만, 하필 팀이 타선의 침체로 4강의 문턱에서 꼴깍꼴깍하던 와중이라 순전히 본인의 '느낌' 때문에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팬들로부터 먹튀라며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결국 이 부상 때문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더 이상 경기를 뛰지 못했고, 마무리 캠프 합류도 늦어지게 되었다.# 11월 21일 늦게나마 캠프에 합류. #

태업하며 놀러다니기만 한다는 일부 팬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즌 내내 재활을 게을리하지는 않은 듯하다. 12월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와 재활에 전념한다고. 한 달동안 처가살이하면서 재활

2014 시즌

3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1회초 2루 주자 김주찬을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쳐 2014년 프로야구 1호 타점을 기록했다.

5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정현욱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치며 부상에서 복귀한 후 첫 안타를 만루홈런으로 장식하였다.[28]

5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앞선 수비실책을 만회하는 투런홈런을 쳤다. 실책이 호투하던 임준섭의 실점으로 이어졌기에 더 가치있는 홈런이었다.

6월 26일에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김광현을 상대로 시즌 9호 홈런을 때리는 등 3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5경기 406타석 350타수 94안타 19홈런 82타점 47득점 2도루 52사사구 타율 0.269 출루율 0.360 장타율 0.497 OPS 0.857으로 마무리하였다.

2015 시즌

전반기에는 부진했으나 후반기부터 엄청난 각성 모드를 보여주며 팀 내 타자 WAR 1위를 달성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FA
2015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고 우선협상 기간 마지막 날인 11월 28일 오후에 원소속팀 KIA와 3+1년 최대 36억(계약금 10억, 연봉 6억 5000만)에 계약을 맺고 잔류하게 되었다. 본인도 KIA에 남길 강력하게 원했으며 다만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있던 게 계약기간이었다고. 팬들은 거품 낀 시장에서 싼 가격에 잘 잡았다며 좋아했다.

2018 시즌

2월 21일, 한신과의 연습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쳤다.

3월 25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1회말 1,2루에서 홈런을 쏘아올렸고, 8회말 2사 1루에서도 홈런을 쏘아올리며 한 경기에 홈런 2개를 기록했다. 이 날 성적은 5타수 2홈런 5타점 2득점.

이후 좁은 수비, 형편없는 타격으로 경기를 망치고 있다. 4월 3일 SK전에서 2사 만루의 찬스때 2루수 뜬 공을 쳐버렸다. 4월 4일 SK전에서도 6회 1사 1, 2루에서 뜬공, 8회초 무사 1, 2루에서 뜬공을 치며 욕을 먹었다. 하지만 10회초 전유수로부터 결승홈런을 때려 9:6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홈런을 친 이후 울컥한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타격 부진으로 꽤 힘들었던 듯.

4월 6일 넥센 전 첫 타석에서 손에 공을 맞았다. 정밀검진을 해보니 전치 4주 골절이란 결과가 나와 당분간 3루수는 정성훈-최원준 체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배트스피드도 굉장히 느려지는 등의 노쇠화의 징조가 급격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부상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실전감각을 찾는 것 까지 계산해봤을때 올스타전 즈음 복귀가 예상될 줄 알았는데 4월21일 티 배팅을 하고있다고 한다.

4월 30일 2주 전에 사구를 맞았던 안치홍과 함께 1군에 복귀했다.

5월 6일 광주 NC전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도 홈런을 치며 백투백 홈런이 되었다.

5월 8일 광주 두산전 1회말 3점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다음 타자 김민식이 홈런을 때려내며 2경기 연속 이범호-김민식 백투백 홈런이 나왔다.

5월 22일 광주 kt전 2대1 상황에서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부활의 신호탄일지 아님 우연의 일치일지

5월 25일 마산 NC전에서 또 포수와 백투백 홈런을 쳤다. 다만 포수는 김민식에서 한승택으로 바뀌었다.

5월 31일 광주 넥센전에서 한경기 두홈런으로 승리의 도움이되었다. 최근 올라온 타격감으로 타율은 어느새 3할 근처까지 도달했다.

6월 10일 사직 롯데전에서 4회말 우천 중단이 되자, 롯데 덕아읏을 향해 누군가를 놀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3년 전 두산전 우취 때랑 표정이 똑같다. 우취범호

6월 16일 엘지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 헨리 소사를 상대로 선제 투런을 때려냈으나 팀은 끝내기 패배.

6월 17일 엘지전에서 유강남의 평범한 땅볼 타구를 못 잡아서 실점의 원인이 되었다.

6월 20일 NC전에서 8회말 1루에서 역전 투런을 때려냈고 팀은 승리했다.

6월 29일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여 1군에서 말소되고 3루수 유망주 자원인 류승현이 올라왔다. 이제 진짜 3루 수비를 보기에는 몸이 안 따라주고 있다.

부상이 괜찮아졌는지 7월 25일부터 퓨처스 경기에서 3루수와 지명타자를 번갈아 보면서 출전하고 있다.

1군에 복귀했는데 타격감이 많이 죽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반기 타율이 0.133으로 끔찍한 수준이다.

8월 8일 넥센전에 여전히 빠른공에 배트가 늦는 모습을 보였다. 만루 상황에서 유격수 키를 넘기는 2타점 적시타를 쳐냈으나 이후 무안타를 기록, 수비에서도 여전히 안일한 모습을 보여 팬들의 분노를 샀다.

우익수의 송구가 조금 부정확하긴 했으나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고 놓친 후에도 걷는 모습을 보인 탓에 팬들이 굉장히 분노하는 중이다.

8월 12일, 9년만에 자신의 한경기 3홈런과 함께 5타점을 기록하며 대활약을 펼쳤다.

9월 이후의 모습은 제발 은퇴하라는 소리가 절로 나는 수준이다.

하지만, 9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5위 싸움을 하는 중요한 경기에서 정찬헌을 상대로 8회 1사 만루에서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통산 17호[30] 만루홈런을 쳤다.

최근 경기를 보면 노쇠화가 완연하다. 보통 내야수의 경우 30대 중반 이후면 수비 범위가 좁아지거나 공을 글러브에서 빼서 송구하는 순발력이 느려지는 등 노쇠화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이범호의 경우 1981년생, 즉 현재 38세로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다. 타격은 힘껏 쳐도 외야플라이가 되고 145km/h 이상의 공에는 여지없이 헛스윙이 나오는 등 느려진 배트 스피드가 보이며, 수비에서는 수비범위가 굉장히 좁아 기대를 접게 된다.

사실 이미 역대 KBO 주전 3루수 중 최고령이고 타팀이면 지명타자나 대타로 나설 입장인데 지명타자로 간다고 해도 3루수 자리에 공격 구멍이 생기는데다가 어떤 놈이 자리를 틀어막고 안나오면서 버티고 있고, 3루수 후계자의 군입대가 1년 늦춰지면서 2018년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전 3루수를 하고 있다.

그나마 그 후계자가 전역을 해서 내년에는 3루 수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상무에서도 수비력이 별로 안늘었다고 하는데...- 감독의 똥행정신으로 주전이 보장되어 있기에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3루수 대체자가 수비가 불안한 신인, 이전 팀에서 3루 접고 1루로 전향한 1년선배, 2루수라고 국대보냈더니 3루수 본 선수 아니면 십잡스인 상황. KIA 타이거즈의 3루수 교통정리가 올해는 다 끝나서 늦었지만 내년에라도 시급하다.

그러나 와일드카드전에서는 혼자 야구했다.

2019 시즌

2018 시즌이 종료된 후, 3+1의 1년 옵션이 발동되었다는 소식에 수많은 팬들이 뒷목을 잡았다. 특히 구단 관계자의 인터뷰 중 "이범호가 옵션발동의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알고있다" 라는 충격적인 말은 이 구단의 모랄이 어느 지경인지 보여주는 대목. 타격의 한방은 인정하지만 배트 스피드가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느려졌고 수비범위야 말할 것도 없는 수준인지라 팬들은 또다시 범땅범안[31]을 봐야되냐며 대환장파티를 예상했다. 게다가 리빌딩을 목적으로 염두에 두는 3루수 유망주 후보로 황대인, 류승현, 이창진[32] 3루 후보는 많아보이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는 황대인 뿐인데 아파서 드러누워버린데다가 아픈 부위가 하필 어깨인지라 걱정되는 상황.

그리고 허벅지 부상으로 스프링캠프 탈락인 줄 알았으나... 햄스트링 통증으로 결론이 난 듯 하다. 오랫동안 야구를 본 팬들 중에선 2012년, 2013년의 이범호가 떠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던 올 시즌 이범호 외의 3루수 옵션들을 확실하게 준비해야될 상황이고, 후보자들에게는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주전 3루수의 기회가 온 셈이다.

2월 22일 햄스트링이 손상된것으로 확정났다. 은퇴가능성까지 열려버린 상황.

~기아 타선이 식물이 되면서 많은 팬들이 그리워하고 있다...~

그 후로 2군 경기에 나와 주로 지명타자 또는 3루수로 나오다 4월 9일부터 다시 1군에 콜업되었다. 또한 콜업과 동시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시사했다. #

기타

  • 유독 다르빗슈 유에게 상당히 강했다. WBC 결승에서 연장까지 승부를 끌고 간 것도 이범호였고, 2010 시즌 중에서는 멀티히트까지 때려낸 적이 있었다.나보다 잘생긴 놈은 용서할 수 없다
  • 햄스트링 부상 이후 주력이 크게 떨어져 굉장히 느리지만 고교 시절에는 100m를 11초대에 끊는 준족이었다.[33] 지명 당시 같은 팀 동료이자 친구인 김주찬과 유격수 최대어로 꼽혔다.
  •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그에게 반한 조교가 등장한다. #
  • 인터뷰에서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전두환 대통령 덕분에 프로야구가 만들어졌잖아요. 야구선수들이 큰 은혜를 입은 거죠. 누군가 나서 돔구장을 짓는다면 선수들이나 팬들은 그분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화장품 광고를 찍은게 아닌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범호는 2008년에 강민호, 이용규와 함께 왁스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
  • 그 외에도 는 소속팀 모기업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2012년 기아자동차희생번트편에서 번트를 대는 선수로 나왔다. 목소리로 나오는 사람은 출연한 광고와 마찬가지로 베어스의 레전드 박철순. 그런데 이범호는 실제로 번트를 잘 대지 않는 선수라는게 에러 .[34] 번트? 저 이범혼데요
  • 2013년 마구마구에서 파워 79의 스페셜 카드를 부여 받았다. 그보다 적게 홈런을 친 강정호나지완이 레어를 받았는데 문제는 이들보다도 파워가 낮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할4푼의 낮은 타율인 것 같다. 그러나 기올유저들은 환영하는 입장. 구름 속의 존재인 김상현(1980)과 플래툰이 가능하므로..
  • 2015년 10월 4일 두산전에 뛰고있어야 할 이범호가 사직구장 관람석에서 나타났다 카더라.. 사직에 간 이범호
  • 2016년부터 티웨이항공 홍보모델이 되었는데 여기서도 꽃범호는 여전하다(...)[35]
  • 국카스텐하현우와 생년월일이 같다.
  • 타고다니는 차는 기아 K7이다.
  • 경기장에서 화를 잘 내지 않는 선수 중 하나인데 어느 정도냐면 화낸 순간을 팬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일례로 2017년 6월 18일 경기서 임찬규가 전타석에 안치홍에게 사구를 낼뻔한 것도 모자라 결국 헤드샷을 맞자 화를 냈다. 그것마저 득달같이 달려들 정도로 화내는 것은 아니고 심판의 제지에 문제는 크게 없었다. 임찬규는 규정에 따라 결국 퇴장당했다.
  • 선수 생활을 위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등 자기관리 면에서 철저한 면을 보이고 있다. 주장이 되어 선수들을 독려하는 자리가 되면서 술은 입에 대기 시작은 했지만 잘 못 마신다고.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뷰이로서 능력도 준수한 편이다. 박용택만큼의 달변은 아니지만 언변이 뛰어난 편이고 재치도 상당하다.
  • 빠던을 하지 않는다.
  • 팀내에서 나지완, 김민식과 더불어 팬서비스가 안좋기로 유명한 선수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팬서비스가 좋아 평이 갈린다. 대표적으로 오키나와에서 김민식 싸인 받을려다 거절당해서 보다못해 이범호가 자기가 대신 싸인 해줬다.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한화 69 74 .162 12 7 0 1 3 11 1 11 .297 .267
2001 71 138 .196 27 7 1 3 16 22 2 13 .326 .263
2002 111 296 .260 77 20 2 11 35 41 5 27 .453 .320
2003 107 323 .238 77 19 1 11 38 46 2 52 .406 .343
2004 133 481 .308 148 35br(1위) 3 23 74 80 6 51 .536br(4위) .371
2005 126 444 .273 121 27br(3위) 1 26br(3위) 68 69 6 62 .514br(4위) .357
2006 126 421 .257 108 25 1 20br(4위) 73 53 0 72 .463 .363
2007 126 418 .246 103 14 0 21 63 57 2 77 .431 .361
2008 125 434 .276 120 21 3 19br(5위) 77 80 12 70 .470 .374
2009 126 436 .284 124 21 0 25 79 64 3 60 .505 .369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0 소프트뱅크 48 124 .226 28 4 0 4 8 11 1 12 .355 .294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1 KIA 101 318 .302 96 21 0 17 77 63 2 82br(2위) .528 .440
2012 42 140 .293 41 7 0 2 19 17 1 28 .386 .404
2013 122 436 .248 108 17 0 24br(4위) 73 56 0 71br(5위) .452 .350
2014 105 350 .269 94 23 0 19 82 47 2 52 .497 .360
2015 138 437 .270 118 25 0 28 79 60 3 73 .519 .372
2016 138 484 .310 150 23 0 33br(4위) 108 93 1 69 .562 .391
2017 115 382 .272 104 14 0 25 89 57 0 59 .505 .365
2018 101 332 .280 93 7 0 20 69 41 1 46 .482 .366
KBO 통산(18시즌) 1982 6344 .271 1721 333 12 328 1122 953 49 975 .483 .365
NPB 통산(1시즌) 48 124 .226 28 4 0 4 8 11 1 12 .355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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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아 이적 이후 2015 시즌부터 가끔씩 1루수를 보고 있다.
  • [2] 프로 초년기때는 유격수였다. 2004년 기록한 23홈런으로 한시즌에 유격수로 이범호보다 더 많은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장종훈, 이종범, 틸슨 브리또, 강정호가 전부다. 그러나 유격수 수비는 불안한편이라 3루수로 포지션 변경. 때문에 유격수 자원이 고갈되면 종종 유격수로 선다. 2011년 8월 4일이나 2015년 6월 18일 경기에서 유격수로 출장한 바 있었다.
  • [3] 이범호~ 이범호~ 한화의 이범호~
  • [4] 기아의~! 이범호~ 한화 있던 파워히터 이범호~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잘!생!겼!다!이!범!호!) 기아의~! 이범호~ 파워히터 이범호~ 꽃보다 멋진 너~ 이범호~
  • [5] 기아 이범호 뜨거운 힘이 솟아나 두려울 게 없어 기아 이범호 기아의 승리를 위해 파워히터 기아 이범호~
  • [6] 질풍가도와 열혈남아 모두 쾌걸 근육맨 2세 오프닝으로 쓰였던 음악이다. 나윤승 응원단장 때 잠시 쓰이고 바로 폐지됐다.
  • [7] 이범호! 오오~ 이범호! 오오오오~ 파워히터 이범호~x4 오재일 응원가와 원곡이 같다. 이후 열혈남아 응원가가 나오면서 공식 폐기.
  • [8]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하면 18개.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만루홈런을 쏘아 올렸다. 최근 만루홈런은 2018년 9월 28일 LG전.
  • [9] 소프트뱅크 입단 당시 언플에 실망한 한화팬이 지어준 별명.
  • [10] 라인업 기사
  • [11]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서 뛰고 있는 양동근과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국가대표 한정으로 이 둘의 번호를 서로 바꿔 달았다. 이범호는 2009년 WBC 때 6번을, 양동근은 국가대표에서 7번을 달고 뛰었다.
  • [12] 그냥 안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적대시하는 사람도 생겼다. 지나친 언플 이후 한화와 안 좋게 결별한 탓에 팬들의 기대가 한순간에 배신감으로 바뀐 게 크다. 심지어 2011시즌 첫 대전 한화전에서 한화팬들이 이범호 욕하는 소리가 중계에 다 들렸을 정도.
  • [13] 이는 대체로 한국의 프로야구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에는 원 소속구단의 동의 하에 진출한 뒤 임의탈퇴 신분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고, FA 자격으로 진출했을 경우에도 원 소속구단과의 관계가 좋았을 경우에는 별 탈 없이 원 구단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여담으로 FA로 해외에 진출한 뒤 복귀한 팀이 원 소속구단이 아닌 다른 구단일 경우에는 원 소속구단이었던 선수와 계약한 것이 되어 외부 FA 영입과 같은 조약을 적용받는다.
  • [14] 이런 경우는 2017년까지 이범호가 유일했지만, 황재균이 롯데가 아닌 kt로 이적하고 김현수가 두산이 아닌 LG로 가면서 유일한 사례라는 타이틀은 사라졌다.
  • [15] 2014 시즌부터 2016 시즌까지 3년간 주장을 맡았다. 3년차인 2016 시즌에는 후배들에게 넘겨주려 했으나, 김기태 감독의 요청으로 주장을 1년 더 하게 되었다.
  • [16] 2008 시즌은 18개로 병살 1위.
  • [17] 2004년에 유격수로 출전, 3할을 찍긴 했으나 실책이 무려 30개. 이는 1986년 유지훤의 31개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 [18] 이는 몇 안되는 명백한 유승안의 공이고, 김인식 시절에 2군이 황폐화되면서 오늘날의 암흑기를 잉태한 것도 사실인지라 한화 팬덤들은 암흑기의 시작을 놓고서 유승안 시절이 시작인지, 김인식 임기말년이 시작인지를 놓고서 종종 내전을 벌이곤 한다.
  • [19] 2009년 WBC나 일본 진출을 통해 수비가 성장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대체 단기전으로 숨가쁘게 치뤄지는 국제전에서 무슨 실력 향상을 이룬다는 걸까? 이때 이범호는 이미 완성된 선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 진출했다가 실패해서 1년만에 리턴한게 다다.
  • [20] 이걸 감안해서 2017 한국시리즈 5차전에는 양현종을 마무리로 올렸을 때 이범호를 빼고 대수비로 교체했는데 들어온 놈이... 이범호였다면 안정적으로 송구해 아웃시킬 상황이었다.
  • [21] 단 원래는 덩치에 비해 꽤 빨랐다.무릎,햄스트링,종아리 등을 다 다치는 통에 주루툴이 감소한 것.2008년 12개로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 [22] 이 해 35개의 2루타로 이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23] 이 때의 언론플레이에서 한화팬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한화에 남기 싫다는 티를 냈다. 인터뷰에서 '우승 할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거나 '롯데도 좋다.'라거나 FA기한이 다 되어가고 김태균이 '돌아올 땐 한화로 돌아오겠다'는 인터뷰를 하자 급하게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면 한화에 남겠다.'고 인터뷰를 한 뒤 다음날 에이전트를 교체한다거나... 그리고 결국 한화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한화 팬들과는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 [24] 그 이전에 아키야마 감독은 3루수 영입 의사가 없었다. 기존 3루수 마쓰다 노부히로가 기복이 심하고 출루율이 낮은 약점이 있지만, 주루 능력과 장타력을 겸비한 인재고 실제로 2010년엔 19홈런 71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팀의 간판타자인 고쿠보 히로키마쓰나카 노부히코가 나이와 부상 문제로 기량이 떨어지자 대체 전력으로 쓸 거포 1루수를 필요로 했던 것을 이범호가 1루를 볼 줄 안다는 말에 영입했던 것이다.
  • [25] 이게 얼마나 심각한 수비율이냐면, 데뷔 초창기 타격은 천재, 수비는 둔재 소리 듣던 밀워키 브루어스라이언 브론이 112경기 나와 26개의 에러를 기록하며 기록한 필딩률이 .895였다. 3루수로서 저 에러개수 자체가 경악할 만한 숫자인데 문제는 이범호는 1군도 아니고 2군에서 저 실력이라는 것. 보통 수비 평균적으로 못한다고 보는 선수들 필딩률이 .950이하인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이다.
  • [26] 사실 타격이 매우 좋았으면 어찌어찌 됐을수도 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주전 3루수 젤러스 휠러는 3년 동안 필딩률 .929 .942 .936이라는 눈 뜨고 보지 못할 수비력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왕 경쟁을 할 정도의 맹타격(3시즌 373경기 72홈런)을 보여주며 3루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소프트뱅크는 라쿠텐과 달리 이미 확고한 주전 3루수가 있던게 더 큰 문제였겠지만...
  • [27]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태업하고 있다는 비난을 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몸이 다 낫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장하여 부상 재발로 골골대느니 완벽히 몸상태를 갖추고 나오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 [28] 이 홈런은 이범호의 개인 통산 8호 만루홈런이기도 하다.
  • [29] 사진은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쐐기 만루포를 날린 직후.
  • [30] 포스트 시즌 기록은 만루홈런 1개
  • [31] "호가 친 볼은 호쪽으로 치면 타다" 라는 말로, 호사방에서 나온 말인데 갸갤에서 아주 크게 공감했다.
  • [32] 넓게보면 황윤호, 노관현, 최원준(...) 등도 포함할 수 있다.
  • [33] 2008년에도 12도루로 두 자리 수 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다.
  • [34]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이범호는 기아 입단 후 2013년 4월 21일에 처음으로 번트를 댔다. 근 6년만에 댄 번트라고.
  • [35] 이는 티웨이항공이 광주공항에 취항한 기념으로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선수 중 이범호를 홍보모델로 채택했고 비슷한 시기 대구국제공항에 취항하자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구자욱을 홍보모델로 채택한 바 있다. 참고로 이범호와 구자욱은 둘 다 대구고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