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정치인/목록)] [include(틀:관련 문서3, top1=매국노, top2=친일반민족행위자, top3=을사오적)] [include(틀:매국노)] [include(틀:조선귀족)] |||| https://blogfiles.pstatic.net/MjAxNzA0MjhfMjk4/MDAxNDkzMzM1MDYwMDQ0.CgVBXsUv1jgbAMBvQbZe6alUMrj_R0qYnxXpV_8U8okg.eZVG0eIZ_Hi9gp53wt6zPko5QbaLiBjrwHGZJ1FoXMIg.JPEG.telience92/01.jpg || |||| '''李根澤''' || || '''출생''' ||<(> 1865년 9월 30일, [[충청북도]] [[충주]] || || '''사망''' ||<(> 1919년 12월 7일 || || '''직업''' ||<(> 군인, 관료 || || '''작위''' ||<(> 자작 || [목차] == 개요 == [[조선]]과 [[대한제국]] 후기의 군인이자 [[정치가]]. 그리고 [[을사오적]], [[민족 반역자]], [[매국노]]이다. [[1905년]] 당시 군부대신(지금의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 시절 [[을사조약]]에 지지를 표명했다. == 생애 == === 관료 생활 === 본관이 [[전주 이씨]]다. [[성종(조선)|성종]]의 아들인 경명군의 아주 먼 후손으로, 1865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 출신이며 초명은 근용(根湧)이다. 무신 집안이었지만 출사의 계기는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 민씨]]에게 싱싱한 [[생선]]을 진상함으로써 눈에 들어 발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성 황후가 환궁하면서 벼슬길에 들어섰다. [[1884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입문하였고 병조 참판 등을 역임 한 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당시 친위 연대 제3대대장으로 정부 전복을 꾀하려다가 발각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 친일 행적 ==== 이듬해 돌아와 한성 판윤·의정부 찬정 등을 거쳐 1905년 법부 대신과 군부 대신을 역임하였는데 [[이완용]]이 주도한 을사 조약 체결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서 을사오적이 되었다. --결국 [[을사조약|다른]] [[일제강점기|방]][[경술국치|식]]으로 정부를 [[망국|전]][[전복(동음이의어) #s-2|복]]시켰다.-- --그 [[전복]] 아니다.-- 그 이후로 [[조선]] 민중들과 의사의 표적이 되어서 습격을 받거나 위협을 받았지만 살아남았고 이후로는 [[일본군]]을 호위 대동하여 출퇴근을 하였다. === 사망 === [[1910년]] [[경술국치]]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고, [[1919년]] 자연사 == 여담 ==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한규설]]의 딸이 이근택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사돈]] 관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규설은 을사 조약을 반대한 애국자이다. 그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이근택에게 딸을 따라온 교전비(여종)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 꾸짖기를 >'''"네가 대신까지 되었으니 나라의 은혜가 얼마나 큰데, 나라가 위태로운 판국에 죽지도 못하고 도리어 내가 다행히 살아났다고 하느냐? 너는 참으로 개 돼지보다도 못하다. 내 비록 천한 종이지만 어찌 개, 돼지의 종이 되고 싶겠느냐? 내가 힘이 약해서 너를 만 토막으로 참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라고 말하고 옛 주인 한규설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그의 고기 베던 머슴과 침모가 집을 나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걸 보니 자기 집 머슴, 노비들에게도 경멸받으며 주인 대접을 받지 못했던 듯. == 만인보에서 == [[고은(시인)|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그를 다룬 시를 여러 편 썼다. 한 편은 그 자신을 다룬 <이근택>이고, 한 편은 그를 죽이려던 사람 중 한 명인 의병장의 자손 기산도를 다룬 아래의 작품이다. ||<절름발이 떠돌이> 남도땅 절룩절룩 떠돌다가 죽은 사람 기산도 의병장 [[기삼연]]의 종손자에다가 의병장 [[고광순]]의 사위인 기산도 오적 군부대신 [[이근택]]을 찌르고 나서 담 넘어 달아났으나 그가 쓴 가발이 벗겨저 가발 주인 이근철이 검거되니 기산도도 체포되었다 모진 고문 받고 옥살이하다가 풀려나 다시 [[독립군]] 군자금 모금으로 옥살이하다가 다리병신 되어서 여기저기 떠돌며 오늘은 [[영암]]땅 내일은 [[강진]] [[광산]] [[담양]] [[화순]] [[나주]]땅 떠돌며 연명하다가 나이 쉰살 먹고 [[장흥]]땅에서 꺼꾸러져 죽었다 객줏집 신세도 못 지고 길거리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죽었다 [[노래기|노낙각시]] 기어다니는 처마 밑에서 ||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한제국의 군인]][[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을사오적]] [[분류:1865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 [[분류:조선의 반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