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윤'''(李慶胤, [[1545년]] [[6월 10일]] ~ ?)은 [[조선]]중기의 왕족 출신 [[화가]]이다. 자는 수길, 호는 낙파, 봉호(封號)는 학림정(鶴林正) 또는 학림공(鶴林公)[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4/200604140449.html 왕족 화가 이경윤] {{웨이백|url=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4/200604140449.html |date=20160513120839 }} 조선일보 2006.04.14., 본관은 전주이다. == 생애 == 조선 인조 때의 서출 왕족이었다. [[조선 성종]]의 일곱째 서자 [[익양군]] 이회의 증손자로, 청성군 이걸(靑城君 李傑)의 아들이다. [[이중윤]](李仲胤), [[이영윤]](李英胤)의 형이다. 그림에 전념하여 [[산수화]]를 비롯하여 [[인물화|인물]]·소·말 등의 그림에 뛰어났으며, 색감과 정취가 뚜렷하였다. 조선에서 유행했던 화풍 중의 하나가 절강성(浙江省) 출신의 [[대진 (명나라)|대진]](戴進)을 중심으로 이룩된 [[절파]](浙派) 화풍이다. 이는 대경산수인물화(大景山水人物畵)와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가 특징인데, 이경윤이 조선 중기의 절파화풍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동안 이경윤의 작품은 [[호림박물관]] 소장의 〈시주도(詩酒圖)〉만 진품으로 여겨졌으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상화보(洌上畵譜)에는 〈석상분향도(石上焚香圖)〉란 이경윤의 작품 이름이 나오지만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 그밖에 〈수족도〉, 〈고사탁족도〉, 〈관폭도〉, 〈산수도〉 등이 있다. 또한 일제의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 1852~1919)가 가져갔던 작품 중 이경윤 화첩집 《[[낙파필희]](駱坡筆戱)》가 있다. == 가족관계 == * 아버지 : 청성군 이걸(靑城君 李傑, 1525-1593) * 어머니 : 군부인 여산 송씨(1523-1587) * 동생 : [[이영윤]](李英胤, 1561-1611) * 아들 : 이숙(李肅, 1566 - 1637) * 아들 (서자) : [[이징 (화가)|이징]](李澄, 1581- 1674) == 같이 보기 == * [[신윤복]] * [[이징 (화가)|이징]] * [[장승업]] * [[김정희]] * [[김홍도]]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 [https://web.archive.org/web/20160513120839/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4/200604140449.html 왕족 화가 이경윤] 조선일보 2006.04.14. == 각주 == {{각주}} [[분류:1545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16세기 한국 사람]][[분류:조선의 화가]][[분류:조선의 왕족]][[분류:전주 이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