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종'''(李覺鍾, 일본식 이름: 靑山覺鍾, [[1888년]] [[4월 23일]] ~ [[1968년]] [[6월 12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수정(竪町)이며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 생애 ==
[[1904년]] 관립한성고등보통학교, [[1908년]] [[보성전문학교]] 법률과를 졸업하였다. [[1909년]] 대한제국 학부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에 교외생으로 입학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과 속(屬)으로 근무하였으며 [[1912년]]부터 [[1915년]]까지 보성전문학교 법률과 강사로 재직했다. 1917년 [[경기도]] 김포군수로 임명되었으며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 같은 추악한 투쟁과 쓸데없는 희생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뒤부터 이를 막기 위해 나머지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1920년]] 6월 병으로 군수직을 사임하였다. [[1921년]] 병에서 회복된 뒤 조선총독부 내무국 제2과 촉탁으로 부임했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조선총독부 내무국 사회과 촉탁으로 활동하는 한편 강연을 하고 글을 발표하면서 [[황민화 정책|황민화 운동]]에 앞장섰다. [[1912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 병합 기념장, 1928년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으며 [[1937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촉탁으로 있을 때 [[황국신민서사]]의 문안을 만들었다.[{{서적 인용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제목=친일파 99인 2
|날짜=1993-03-01
|출판사=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7199-012-4}}
|장=이각종 : 황국 신민화 운동의 기수 (박준성)
|인용문=이 기획에 따라 학무국 촉탁으로 있던 아오야마(靑山覺鐘), 즉 이각종이 문안을 만들었고,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장이던 김대우가 관련 업무를 집행하였다.}}]
[[1925년]] 6월부터 1930년대 초 중반까지 잡지 《신민(新民)》의 발행 겸 편집인을 맡았다. [[1936년]] 2월 전향자 출신 인사들이 결성한 황국신민화 단체인 백악회(白岳會)를 조직했고 같은 해 7월에는 백악회를 확대 개편한 단체인 대동민우회를 조직했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 촉탁과 경성보호관찰소 촉탁보호사를 겸직하는 한편 1937년 이후부터 시국강연회, 시국대응강연회, 시국유지원탁회의 등에 참석하여 국민정신총동원과 내선일체를 적극 주장했다.
[[1938년]] 조선방공협회 경기도 연합지부 평의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를 역임했으며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 발기인, 참사, [[1940년]] 대동일진회 고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 평의원을 역임했다. [[1941년]] [[8월 25일]]에 열린 [[임전대책협의회]] 좌담회에서 《황도정신과 총력》이라는 주제의 글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9월 7일]] 임전대책협의회가 결성한 채권가두봉공대 남대문대원으로 활동했다. 1941년 10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 평의원을 역임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대동민우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42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방위지도부 참사, 의례개선조사위원, [[1943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 후생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인 [[1949년]]에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서울]]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일본의 패망 이후에 생긴 충격으로 정신이상 상태가 된 것으로 판정이 나면서 풀려났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의 기타 부문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5년]] 고려대학교 교내 단체인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발표한 '고려대 100년 속의 일제잔재 1차 인물' 10인 명단[{{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1875.html
|제목=고대 총학 ‘친일행적’ 10명 발표
|저자=김남일
|출판사=한겨레
|날짜=2005-03-28
|확인날짜=2008-08-20
}}],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 같이 보기 ==
* [[황국신민서사]]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제목=친일파 99인 2
|날짜=1993-03-01
|출판사=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7199-012-4}}
|장=이각종 : 황국 신민화 운동의 기수 (박준성)}}
* {{서적 인용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1|연도=2009
|id=
|출판위치=서울
|쪽=508~567
|장=이각종
|장url=
}}
== 각주 ==
[[분류:1888년 태어남]][[분류:196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