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환'''(李家煥, [[1742년]] ∼ [[1801년]] [[4월 8일]])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천주교 순교자이다. 자는 정조, 호는 금대, 본관은 [[여주 이씨|여주]](驪州)이다.
== 생애 ==
[[조선 정조|정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남인]]에 속하는 [[안정복]]·[[정약용]]·[[권철신]] 등과 가까이 지내면서 새로운 학문연구를 위해 노력하였다. [[1784년]](정조 8년) 조카 [[이승훈 (영세자)|이승훈]]이 [[북경]]에서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오자, 이에 흥미를 느끼고 [[이벽]] 등과 함께 교리를 번역·연구했으나 입교는 하지 않았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게 되자 교리의 연구를 중단했고, [[1791년]](정조 15년) [[신해박해]] 때는 광주 부윤으로 자신이 천주교를 탄압했다. 그 후 형조판서 등 높은 벼슬을 지냈으며, [[1795년]] [[청나라]]의 [[주문모]] 신부가 몰래 입국한 사건으로, 반대당의 모함을 받고 충주 목사로 좌천되어 그 곳에서도 여전히 천주교인에 대한 탄압을 계속했다.
[[1801년]]([[조선 순조|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이승훈 (1756년)|이승훈]] 등과 함께 체포되어 순교했다.
문장에도 능했으며 필법이 뛰어났다.[《[[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근대사회의 태동/종교의 새 기운/천주교의 전파와 교세 확대#이가환|이가환]]〉][[채제공]]을 잇는 [[남인]] 시파계의 대가였으나 당시 정권이 반대파로 기울자 천주교신자로 몰아세워 장살로 정치적인 희생을 당하게 되었다.
평소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하였는데 신유박해 당시“내가 죽으면 이 나라에 수학의 맥이 끊어지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1133]
== 가족 관계 ==
* 증조부 : 이명진(李明鎭) / 친증조부 : 이하진(李夏鎭) = 이침과 이익의 친부
** 할아버지 : 이침(李沈) = 숙부 이명진의 양자로 입양됨 = 성호 이익의 친형
*** 아버지 : [[이용휴]](李用休)
*** 어머니 : 진주유씨, 유헌장(柳憲章)의 딸
**** 매형 : 평창인, 이동욱(李東郁)
***** 외조카 : 이승훈(李承薰)
== 이가환이 등장한 작품 ==
* 《[[소설 목민심서]]》([[KBS]], [[2000년]]~[[2000년]], 배우:[[한인수]])
== 저서 ==
* 《기전고》
* 《금대유고》
== 관련 항목 ==
* [[신유박해]]
* [[남인]]
== 각주 ==
{{각주}}
== 외부 링크 ==
* {{두피디아|101013000721173}}
* {{한민족백과|E0043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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