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정보 |이름 = 이 바르바라 |출생일 = [[1825년]] |사망일 = [[1839년]] [[5월 27일]] |축일 = [[9월 20일]]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그림 = |크기 = |설명 = |출생지 = 서울 |사망지 = 서울 |직업 = 순교자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상징 = |수호 = |매장지 = |성당 = |기도 = }} '''이 바르바라'''(李巴巴拉, [[1825년]] ~ [[1839년]] [[5월 27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바르바라'''(Barbara)이다. 그녀는 [[서울특별시|서울]]의 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두 [[wikt:고모|고모]] [[이영희 막달레나]]와 [[이정희 바르바라]]에게 양육되며 [[신심]]을 키워갔다. 그녀가 15세 되던 해에 [[기해박해|1839년 기해년의 박해]]가 일어났고, [[4월 11일]]에 그녀는 두 고모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포도청]]과 [[형조]] 그리고 다시 포도청을 거치면서, 온갖 혹독한 [[고문]]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배교를 거부하며 [[신앙]]을 [[증언]]하다 [[5월 27일]]에 15세의 나이로 굶주림과 목마름, 고문의 상처 그리고 [[장티푸스]]로 인해 옥사하여 [[순교자]]가 되었다. == 시복 · 시성 == 이 바르바라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뉴스 인용 | 제목 = 복자 124위 특집. 124위 시복 후속 조치·현황 | url =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2852&ACID=45 | 출판사 = 가톨릭신문 | 저자 = 박지순 | 날짜 = 2014-09-21 | 확인날짜 = 2014-10-12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1016103332/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2852&ACID=45 | 보존날짜 = 2014-10-16 | 깨진링크 = 예 }}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 이뤄진 103위 [[시성|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 참고 문헌 == *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2834&keyword=%C0%CC%B9%D9%B8%A3%B9%D9%B6%F3&gubun=01 가톨릭 사전: 이바르바라] == 각주 == {{각주}} [[분류:1825년 태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