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림'''(尹泰林, 일본식 이름: 伊藤泰林, [[1908년]] ~ [[1991년]])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의 법조인, 행정관료, 교육인이다.
== 생애 ==
본관은 [[파평 윤씨|파평]]이며 [[경성부]] 출신이다를 졸업하고에 입학하여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1935년]]에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라북도]] 군수를 지냈다.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개업하여 법조인으로 잠시 활동하였고, [[1952년]]부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에서 [[1965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한국인의 성격》이다.
[[5·16 군사정변]] 후 [[김종필]]이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중앙정보부]]를 창설하면서 [[최규하]] 등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정책연구팀을 운영했을 때 여기에 합류하여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정권을 준비하였다. [[1963년]]에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 차관으로 발탁되어 재임하였다.
[[1965년]]에는 [[숙명여자대학교]] 총장직을 맡았다. 숙명여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중에는 학내 분규로 인해 횡령죄로 고발된 일이 있다.[{{뉴스 인용
|제목=尹泰林 숙명여대총장 해임을 요청. 「횡령혐의」로 고발
|출판사=조선일보
|날짜=1966-08-09
|쪽=7면
}}]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옮겨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부터 학장을 지내다가 [[1982년]]에 총장에 올랐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각주 ==
{{각주}}
==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KOR_A1908_1_0008735|윤태림|尹泰林}}
* {{행정통계 인물|934|N0648|윤태림}}
{{전임후임|
|전임자 = [[이승우 (1928년)|이승우]]
|후임자 = 윤태림
|대수 = 14
|직책 =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 차관]]
|임기 = [[1963년]] [[3월 28일]] ~ [[1963년]] [[12월 16일]]
}}
{{전임후임|
|전임자 = 윤태림
|후임자 = [[최형규]]
|대수 = 15
|직책 =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 차관]]
|임기 = [[1963년]] [[12월 17일]] ~ [[1964년]] [[2월 9일]]
}}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1991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문교부 차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숙명여자대학교]][[분류:서울특별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