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완종'''(劉玩鍾, [[1877년]] [[음력 11월 21일]] ~ ?)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초기의 관료이다. 본관은 [[청주 유씨|청주]]이다. == 생애 == [[한성부]]에서 태어나 [[1894년]]부터 한성부의 사립 학교인 [[을미의숙]]에서 [[일본어]]를 공부했다. 을미의숙이 폐교되자 [[관립한성일어학교]]로 전학하여 이 학교를 [[1898년]]에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1899년]]에 [[양지아문]] 견습생으로 들어가면서 대한제국 시기 동안 관리로 일했다. [[1901년]]에는 모교의 부교관으로 임명되었고, [[1905년]]에 판임관 6등의 [[농상공부]] 기수가 되었다. 농상공부 산림국에서 기수로 근무하던 중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총독부]] 체제가 출범했다. 유완종은 총독부 농상공부 식산국 산림과로 소속이 이동되었다. 총독부 기수로 잠시 근무하다가 [[1911년]] 7월에 총독부 군수로 발탁되어, 당시 [[충청남도]]에 속해 있던 [[평택시|평택군]] 군수로 발령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2월에 군수직을 사직하였기 때문에 총독부 군수로는 약 7개월 동안만 근무했다. [[1912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수여받았고, 퇴직 당시 종7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01211|유완종|劉玩鍾}}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01220|유완종|劉玩鍾}} [[분류:187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