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창원시/인물]] 禹炳奎 [[1929년]] [[11월 20일]] ~ [[2018년]] [[2월 22일]]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정치인]]이다. 호는 주민(宙民)이다. 1929년 [[경상남도]] [[창원시|마산합포구]]부(현 [[창원시|마산합포구]])에서 태어났다.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및 동 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경희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에서 [[강사]], 부[[교수]]를 역임하였다. [[5.16 군사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문화사회위원회, 내무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부터 [[대한민국 국회]] 전문위원을 겸직하였는데 주로 운영위원회, 내무위원회, 외무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국제정치학회에서 [[이사(직위)|이사]]로 활동하였다. 1980년 7월 대한민국 국회 사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80년 9월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정무제1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박철언]] 전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우병규는 정무제1수석비서관 시절 대통령비서실 내에서 실세인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허삼수]] 사정수석비서관 등의 견제를 받았다. 1981년 말 대한민국 국회 [[국회사무총장|사무총장]]에 임명되어 1984년까지 역임하였다. 1984년 [[조정제]]의 뒤를 이어 [[민주정의당]] 마산시 지구당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강삼재]] 후보와 동반당선되었다. 1986년 대한민국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간사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마산합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백찬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김영삼]] 정권 초기 중앙선거관리위원을 역임하였다. 1995년 김영삼 정권의 [[역사바로세우기]]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검찰청]]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정계은퇴 이후에는 국제미래사회연구소 [[이사장]], 청암회[*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기리는 단체이다.] [[회장]]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가고파문화센터(통합창원시 이전 옛 합포구청사) 한 켠에 보면 뜬금없이 웬 [[피아노]] 한 대가 마치 선반처럼 쓰이고 있는데 거기 희미한 글씨로 '우병규 기증'이라고 되어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마산합포구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