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친왕'''(完親王, [[1868년]] [[5월 31일]] ~ [[1880년]] [[1월 12일]])은 [[조선]]의 왕족이자 대한제국의 황자이며 추존 친왕이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서장자로, [[귀인 이씨 (영보당)|영보당 귀인 이씨]] 소생이다. 완화군(完和君)에 봉해졌다. 한때 [[흥선대원군]]은 그를 총애하였으나 일찍 요절하였다. [[영종정경]]부사에 임명됐고, 본명은 '''이선'''(李墡)이다.[http://www.koreanhistory.org/webzine/read.php?pid=18&id=273 고종은 왕도수업을 어떻게 받았나? - 한국역사연구회] 시호는 효헌(孝憲). 따라서 완효헌왕(完孝憲王)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통상 '''완화군'''으로 부른다. == 생애 == [[귀인 이씨 (영보당)|귀인 이씨]]와 [[대한제국 고종|고종]]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완화군(完和君)으로 봉해졌다. 어머니 영보당 이씨는 부왕 고종이 즉위하여 입궁한 직후, 궁녀 중 처음으로 연애를 하였던 여성이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뒤 입궐하면서 경쟁관계가 형성된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아직 [[명성황후]]와 혼인하기 이전에 궁녀 출신이었던 이씨를 총애하고 [[1868년]]에는 영보당 이씨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이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 간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은 첫 손자인 완화군을 총애하였다. 또한 명성황후가 낳은 아들 둘이 연이어 요절한데다, 두 번째 아기는 항문이 없는 기형아로 [[흥선대원군]]이 준 인삼을 달여 먹였다가 아이가 신열을 일으키다 갑자기 사망하면서, 둘의 관계는 묘하게 흐르게 된다. [[영종정경]]부사에 임명되고, 조부 [[흥선대원군]]이 완화군을 매우 총애하여 세자의 자리에 염두에 두고 봉하려 했으나, [[명성황후]] 때문에 실패하였다. [[1880년]]에 병을 얻어 사망했는데, 이때 완친왕을 낳은 귀인 이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실어증이 걸려 병을 앓기 시작했다. 완친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명성황후의 모략이 개입되어있다는 설이 있다.{{출처|날짜=2007-12-9}} == 사후 == 사후 [[서울특별시]]동에 안장되었다가, [[1945년]] 광복 이후 도시계획에 의해 [[경기도]] [[고양시|고양군]](현재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근처에 이장되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완친왕으로 추존되었고, 효헌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가 일찍 죽자 대원군은 그의 장남 [[흥친왕]]의 장남 [[이준용 (1870년)|이준용]]에게 기대를 걸게 되었다. == 관련 항목 == * [[흥선대원군]] * [[명성황후]] * [[흥친왕]] * [[의친왕]] * [[영친왕]] * [[이준용]] == 각주 == == 관련 자료 == * 고종실록 * 순종실록 {{조선의 왕자}} {{고종의 자녀}} [[분류:1868년 태어남]][[분류:1880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자]][[분류:조선의 왕족]][[분류:대한제국의 황자]][[분류:병사한 사람]][[분류:운현궁]][[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유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제국 고종]][[분류:전주 이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