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국영'''(吳國泳, 일본식 이름: 大原國泳, [[1889년]] [[10월 26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출신 기업인으로, [[대한민국]]에서도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 생애 ==
출신지는 [[경상북도]]이다. 경성학당을 졸업하고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함경남도]] 내무부에서 근무하던 중 [[1910년대]] 후반에 총독부 군수로 발탁되었다. [[이원군]] 군수로 수년 동안 재직했다가 병으로 퇴관했다. 이때 정8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이후 [[경성부]]에서 잡지 《천민》을 발행하면서 청년 지도에 뜻을 두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의성양조주식회사 전무취체역과 사장을 지내고 의성군주조조합장을 맡는 등 의성군에서 양조업 기업을 운영했다.
경상북도 평의원, 군농회의원, 금융조합장, 연초경작조합장, 관선 도회의원 등 지역 유지들이 맡는 직함을 두루 맡으며 활동했다. 경상북도 도평의원이던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353명의 공로자 중 한 명으로 기재되어 있다.[{{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url = 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1.html
|출판사 = 일요시사
|날짜 = 2004-03-18
|확인날짜 = 2008-07-31
|확인날짜 = 2008-03-06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627191258/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1.html
|보존날짜 = 2008-06-27
|깨진링크 = 예
}}][{{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url = 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2.html
|출판사 = 일요시사
|날짜 = 2004-03-18
|확인날짜 = 2008-07-31
|확인날짜 = 2008-03-06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627191303/http://www.ilyosisa.co.kr/SUNDAY/SUN_0426/TM_0302.html
|보존날짜 = 2008-06-27
|깨진링크 = 예
}}]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경상북도자동차협회 이사를 지내고 [[남선전기주식회사]] 감사역으로 재직했다. [[1954년]]까지 남선전기 감사로 현직에 있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10163|오국영|吳國泳}}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30191|오국영|吳國泳}}
== 각주 ==
[[분류:1889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