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소'''(安炳昭 또는 安柄玿, [[1908년]] ~ [[1979년]] [[3월 6일]][{{뉴스 인용|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03060032920702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03-06&officeId=00032&pageNo=7&printNo=10284&publishType=00020|제목=바이얼리니스트 安柄玿씨 별세|출판사=[[경향신문]]|날짜=1979-03-06}}])은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
== 생애 ==
서울에서 태어났다. 예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6세 때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옮긴 다음 청년회관에서 데뷔하였다. 1934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음악대학]] 바이올린과를 졸업하고 바이올린 제작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1936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한 [[1936년 하계 올림픽]] 축하연주회에서 제1바이올린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1938년 귀국하여 [[부민관]]에서 제1회 귀국독주회를 가졌다. 이후 만주 신경음악원 교향악단 독주자 및 악장직을 거쳐, 1939년엔 '안병소 현악 4중주단'을 조직했고, 연악원(硏樂院)을 설립하는 등 여러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또 한국 연주가협회 위원장. 한국음협 최고위원을 역임하고, 1961년에 한국현악합주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계정식]]과 함께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많이 배출했다.
== 각주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고전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