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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1948-12-21
}}</ref> 안광수와 함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계급도 같은 육군 대령이 되었다.
|제목=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날짜=1998-10-01
}}</ref> 안광수와 함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계급도 같은 육군 대령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과 [[대한민국 육군|육군 제103여단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개전 초기에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칼로 자결했다. 안병범의 동생 두 명도 한국 전쟁 중 전사했다.<ref>{{서적 인용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과 [[대한민국 육군|육군 제103여단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개전 초기에 [[서울특별시|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칼로 자결했다. 안병범의 동생 두 명도 한국 전쟁 중 전사했다.<ref>{{서적 인용
|저자=조갑제|제목=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날짜=1998-10-01
{{군인 정보
|이름=안병범
|현지어표기 = 安秉範
|생애=1890년 ~ 1950년 7월 29일 (61세)
|별명=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사망지 = 서울특별시
|복무 = 일본 제국 육군 <br />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 1909년 ~ 1950년
|최종 계급 = 일본군 육군 대좌 <br /> 대한민국 육군 대령 (준장 추증)
|지휘= 여단장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서훈 내역=
|기타 이력=
}}
안병범(安秉範, <small>일본식 이름: </small>亀村貞信, 1890년 ~ 1950년 7월 29일<ref>{{서적 인용
|저자=강만길
|제목=해방전후사의 인식 (2)
|날짜=1995-05-01
|출판사=한길사
|출판위치=서울
|장=제1공화국과 친일세력 - 제1공화국에서의 친일 인맥}}</ref>)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안종인(安鍾寅)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이름=안병범
|현지어표기 = 安秉範
|생애=1890년 ~ 1950년 7월 29일 (61세)
|별명=
죽산]](竹山) |
|사망지 = 서울특별시
|복무 = 일본 제국 육군 <br />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 1909년 ~ 1950년
준장]] 전역)<ref>육사 2기 및 통위부 보병학교·기갑학교·포병학교 졸업을 거쳐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졸업 이후 1992년 7월 2일에 향년 71세로 별세.</ref> <ref>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 위패 목록</ref> <br /> 차남 안광수(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령 전역)<ref>1961년 6월 3일을 기하여 육군 대령 예편 이후, 1975년 1월 29일에 향년 51세로 별세.</ref> |
육군 제103여단]]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서훈 내역=
|기타 이력=
}}
안병범(安秉範, <small>일본식 이름: </small>亀村貞信, 1890년 ~ 1950년 7월 29일<ref>{{서적 인용
|저자=강만길
|제목=해방전후사의 인식 (2)
|날짜=1995-05-01
|출판사=한길사
|출판위치=서울
89-356-0001-6}} |
생애 ¶
한성부 출신이며 대한제국 말기에 무관 생도로 일본에 유학했다.<ref>{{저널 인용
|제목=軍部에 잇는 朝鮮人士官
|저널=삼천리
|연도=1934
|작성월=9
|volume=제6권
|저자=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제목=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날짜=2001-06-01
|출판사=선인
|출판위치=서울
|장=제4부 백남권 - 귀국과 창군 활동}}</ref>
|제목=軍部에 잇는 朝鮮人士官
|저널=삼천리
|연도=1934
|작성월=9
|volume=제6권
안광수]]도 일본육사에 진학시켰다.<ref>{{서적 인용 |
|제목=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날짜=2001-06-01
|출판사=선인
|출판위치=서울
89-89205-15-8}} |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되었고, 안병범은 군사 경력자 기용 방침에 따라 1948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서 1주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제8기 졸업생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국방부, 李俊植·金錫源 등 군사경력자 9명을 고급장교로 기용
|출판사=평화일보
|날짜=1948-12-21
}}</ref> 안광수와 함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계급도 같은 육군 대령이 되었다.
|제목= 국방부, 李俊植·金錫源 등 군사경력자 9명을 고급장교로 기용
|출판사=평화일보
|날짜=1948-12-21
}}</ref> 안광수와 함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계급도 같은 육군 대령이 되었다.
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과 육군 제103여단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개전 초기에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칼로 자결했다. 안병범의 동생 두 명도 한국 전쟁 중 전사했다.<ref>{{서적 인용
|저자=조갑제
|제목=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날짜=1998-10-01
|출판사=조선일보사
|출판위치=서울
|장=제11장 쿠데타 연습 : 李承晩 제거 계획 - 陸本의 深夜 참모회의}}</ref>
|저자=조갑제
|제목=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날짜=1998-10-01
|출판사=조선일보사
|출판위치=서울
89-7365-194-3}} |
사후 ¶
각주 ¶
<references/>
{{토막글|군인|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