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정보
| 이름 = 안병길
| 원래 이름 = 安炳吉
| 임기 = [[1927년]] [[6월 3일]] ~ [[1930년]] [[6월 2일]]
| 출생지 = [[조선]] [[경상북도]] [[경산시|경산]]
| 사망지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 거주지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시|경산]]
[[일제 강점기]] [[경성부]]
| 직책 = 前 [[조선총독부]]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참의
(前 朝鮮總督府 中樞院 參議)
| 학력 = 한성관립일어학교
| 사망일= {{사망일과 나이|1936|4|19|1886|11|2}}
| 출생일=[[1886년]] [[11월 2일]]
| 정당 = [[무소속]]
}}
'''안병길'''(安炳吉, [[1886년]] [[11월 2일]] ~ [[1936년]] [[4월 19일]])은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 겸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경산시]] 삼남동이다.
== 생애 ==
어린 시절 한문을 수학했고 [[1906년]] 일어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11월 27일]] 경상북도 관선 도평의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27년]] 경산금융조합장을 역임했다. [[1927년]] [[6월 3일]]부터 [[1930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29년]] [[5월 1일]] 조선박람회 평의원에 촉탁되었으며 [[1930년]] [[4월 1일]] 경상북도 관선 도평의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6월 2일]] 정7위에 서위되었고 [[1931년]] 경산수리조합장과 경산면협의회원을 역임했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경일은행 감사를 역임했으며 [[1934년]] [[4월 9일]] 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준비위원회 증선(增選, 추가 선출)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4년]] [[9월 12일]] 대구세무서 소득조사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1935년]] 대구상업은행 감사와 경산면협의회원을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9|연도=2009
|id=
|출판위치=서울
|쪽=515~520
|장=안병길
|장url=
}}
{{토막글|정치인}}
[[분류:1886년 태어남]][[분류:193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경산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순흥 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