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선'''(宋學善, [[1897년]] [[2월 19일]] ~ [[1927년]] [[5월 19일]])은 [[일제 강점기]]에 [[금호문 사건]]을 일으키고 사형 당한 독립 운동가이다. == 생애 == [[한성부]] 태생으로 어릴때 가세가 기울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자랐다. 성인이 된 뒤로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기구 가게에 다녔으며, [[1926년]] 거사 무렵에는 병으로 가게를 그만두었다가 완치된 상태였다. 1926년 [[4월 26일]] [[대한제국 순종|순종]]이 사망하자 빈소가 마련된 [[창덕궁]] 앞에서는 호곡을 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모여 들었다. 고종은 망국의 상징이었고 일본인들에게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비통함이 더욱 컸다. [[금호문]](金虎門)은 창덕궁의 서남문으로 빈소의 출입구였으며, 송학선은 [[조선총독부]]의 고관들이 이 곳으로 드나드는 것을 보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처단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26일, 27일 양일간 이 곳에서 칼을 품고 사이토를 기다리다가 사흘째인 [[4월 28일]] 에서 조문을 하고 나오는 일본인 세 명이 탄 [[무개차]] 안에 사이토가 탄 것으로 착각하고 이 차를 습격하여 경성부회 평의원 [[다카야마]], [[사토]], [[이케다]] 등을 죽였고 이중 사이토로 오인한 한 사람을 찔러 중상을 입혔다. 현장에서 달아나던 중 그를 추격하던 조선인 순사 [[오환필]]을 찌른 후 인근에서 일본 경찰과 격투 끝에 붙잡혔으며,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사건 당시 미혼으로 자손은 없었다. ==사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95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에 송학선 의거 터 표석이 설치되었다.{{웹 인용|url=https://www.google.co.kr/maps/place/37%C2%B034'38.5%22N+126%C2%B059'22.1%22E/@37.5773611,126.9872835,17z/data=!3m1!4b1!4m5!3m4!1s0x0:0x0!8m2!3d37.5773611!4d126.9894722?hl=en|제목=송학선 의거 터 표석 위치}} == 참고자료 ==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https://web.archive.org/web/20160409162303/http://narasarang.mpva.go.kr/data/downloadFile.asp?filename=monthhero%5C200205.hwp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송학선], 2002년{{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HIL_A1893_1_0006112|송학선}} == 각주 == {{각주}} {{2002년-이 달의 독립운동가}} [[분류:1897년 태어남]][[분류:1927년 죽음]][[분류:한국의 사형된 사람]][[분류:건국훈장 독립장 수훈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