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선'''(宋今璇, 일본식 이름: 福澤玲子('''후쿠자와 레이코'''), [[1905년]] [[1월 15일]] ~ [[1987년]] [[10월 24일]], [[한성부]] 출생)은 [[덕성여자대학교]] 초대 학장을 지낸 [[한국]]의 [[교육]]자이다. 아호는 남해(南海). == 생애 == [[1919년]] [[숙명여자고등학교|숙명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했다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모교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를 거쳐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1937년]]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 가입하여 순회 강연을 다니면서부터 친일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조선총독부]]의 [[방송선전협의회]]에서 친일 강좌를 맡았고, [[조선귀족]] 부인들과 여성계 친일 인사들이 공동 조직한 [[애국금차회]]에도 가담했다. 전시체제 하에서 송금선의 친일 행적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활동하고 친일 잡지 《[[신시대]]》에 기고하는 등으로 계속된다. 친일 단체의 총본산격인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에 가입하였고, 학병으로 지원할 것을 독력하는 연설 활동에도 적극 참가했다. 《[[매일신보]]》에는 “이제 어디를 가든지 정말로 황국신민이 되었다는 자랑과 의무를 느낀다.”라고 하였고 이어 “여학생의 생도들도 어디까지나 군국의 어머니로서 교육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종전 직전 패전이 가시화되자 본토에서 최후의 1인까지 싸울 것을 독려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언론보국회]] 평의원이 되기도 했다. [[1940년]] 총독부의 지지 하에 [[차미리사]]의 뒤를 이어 덕성여자실업학교(현 [[덕성여자고등학교]]의 전신) 교장이 되었고, [[1950년]]에는 현 덕성여대의 전신인 덕성여자초급대학을 세우고 초대 학장에 취임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덕성여대 이사장을 지낸 [[박원국]]이 송금선의 아들이다. == 같이 보기 == * [[조선임전보국단]] == 참고자료 == * {{서적 인용 |저자=김삼웅 |제목=친일파 100인 100문 - 친일의 궤변, 매국의 논리 |날짜=1995-02-01 |출판사=돌베개 |출판위치=서울 |id={{ISBN|9788971990704}} |장=송금선 : "반도 지식여성들 군국어머니로 힘쓰자" (김민철)}} * {{뉴스 인용 |url=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20308153007 |제목=친일파 된 여성 교육선각자들 - <자료입수> 김활란 등 선각 여성 5인의 친일행적 |저자=조병래·임경구·전홍기혜 기자 |출판사=프레시안 |날짜=2002-03-08 |확인날짜=2008-02-06 }} {{전임후임 |전임자 = [[박준섭]] |후임자 = [[박원국]] |대수 = 4 |직책 = [[덕성학원]] 재단 이사장 |임기 = [[1955년]] [[6월 1일]] - [[1977년]] }} {{덕성여자대학교}}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8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덕성여자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