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조인/목록]]. [[창원시/인물]] [Include(틀:역대 검찰총장)] |||| http://imgnews.naver.net/image/020/2005/05/12/200505120333.jpg || || '''이름''' || 송광수(宋光洙) || || '''출생일''' || [[1950년]] [[1월 4일]] ([age(1950-01-04)]세) ||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마산합포구]] [* 현 [[창원시|마산합포구]]] || || '''종교''' || [[가톨릭]] ([[세례명]]: [[토마스 데 아퀴노|토마스 아퀴나스]]) || ||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 || '''현직''' || [[변호사]] || || '''임기''' || [[2003년]] [[4월 3일]] ~ [[2005년]] [[4월 2일]] || || '''경력''' || 33대 [[검찰총장]][br]33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br][[대한민국 법무부]] 검찰국장[br]44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br]43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br]제 3기 사법연수원 [* [[서석구]]가 연수원 동기다] || [목차] == 개요 == 제33대 검찰총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법조인 (사법시험 13회. 사법연수원 3기). == 생애 == 1950년 [[경상남도]] [[창원시|마산합포구]] 에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77년 검찰 임관 이후 검찰과 법무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울지검 형사3부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엔 입시 부정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이후 대구지검장, 부산지검장, 대구고검장을 역임했다. [[2003년]] 3월 김각영 검찰총장이 [[참여정부]]와의 갈등으로 물러나자 후임으로 임명됐다. 인사청문회를 받은 최초의 검찰총장이기도 하다. [* 임명 직전인 2003년 2월, 국회법과 검찰청법,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통해 검찰총장이 인사청문회 대상으로 추가됐다.] 그러나 송광수 역시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과 갈등을 겪었다. 인사 문제가 도화선이 됐다. 송광수의 측근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검찰의 갈등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과 맞물려 더욱 증폭됐다. 이때 송광수는 "차라리 내 목을 쳐라"며 개혁에 맞섰다. 때마침 대선자금 문제가 터진 것은 송광수에게 행운이었다. 송광수와 중수부장 [[안대희]]가 이끄는 검찰 수사팀은 [[안희정]], [[이광재]] 등 정권 실세까지 성역 없이 수사하여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검찰 개혁은 힘을 잃었다. 검찰 개혁 문제 외에도 송광수가 이끄는 탄핵 반대 촛불집회 주동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주동자 수배 해제, 송도율 교수 처벌 문제 등으로 정권과 각을 세웠다. 싸움은 [[2004년]] 7월 강금실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됨으로써 끝났다. 송광수는 그 1년 후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한다. 퇴임 후 2년 간 개인법률사무소를 운영했다. 이때 [[주수도]]의 변호를 맡아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2007년부터 [[김앤장]]의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 평가 == [[문재인]], [[천정배]] 등 참여정부의 검찰 개혁을 기획했던 인사들은 송광수에 대해 개혁 의지가 부족한 인물을 참여정부의 첫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이 검찰 개혁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 여담 == [[바둑|바둑광]]으로 아마 6단이다. [[이창호]]의 팬이라고 한다. [[분류:검찰]][[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1950년 출생]][[분류:마산합포구 출신 인물]]